제주 한 면세점에서 중국인 관광객들이 쇼핑을 하고 있다. [연합] |
‘어제는 564만원, 오늘은 143만원’. 재작년 11월과 작년 11월 외국인 관광객의 1인당 면세품 소비 금액이다. 70% 이상이 줄었다. 가파르게 치솟은 국내 물가에 환율 경쟁력 약화가 엎친 데 덮치며 외국 관광객마저 지갑을 닫았다.
12일 한국면세점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한 달간 국내 면세점을 찾은 외국인은 2022년 같은 기간(23만1000명)보다 2배 이상 증가한 64만6000명이었다. 그러나 면세 매출액은 전년(1조3010억원)보다 급감한 9213억원에 불과했다.
물가와 환율이 면세 소비 감소의 배경으로 꼽힌다. 일본과 중국 관광객이 최근 한국을 많이 찾는 가운데 고가의 면세품보다 체험형 관광이 주를 이루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실제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지난해 11월까지 방한한 외국인 가운데 일본인(212만 명)과 중국인(177만 명)이 많았다.
한·중·일 가운데 물가 상승폭은 한국이 가장 크다. 지난해 한국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전년 대비 2~6% 등락했다. 같은 기간 일본은 2.5~4%, 중국은 1~-1% 사이였다. 특히 일본인 관광객은 식음료 위주의 합리적인 소비에 ‘엔저(엔화 가치 하락)’로 인한 씀씀이까지 줄었다.
실제 K-관광 플랫폼 크리에이트립에 따르면 지난해 10월까지 일본 관광객 전체 거래액의 40%가 식음료 부문에서 이뤄졌다. 원·엔 환율은 3년 전 100엔당 1050원 수준에서 최근 900원 초반대로 떨어졌다. 국내 물가상승률을 고려하면 일본 관광객이 체감하는 부담은 더 올랐다.
중국 관광객은 경기 침체 여파에 소비 여력까지 감소한 상황이다. 현대경제연구원 보고서를 살펴보면 중국 소비자의 경제 상황에 대한 인식을 나타내는 ‘소비자신뢰지수’는 지난 2022년 4월 86.7p(포인트)로 떨어진 이후 작년 9월까지 기준선(100p)을 밑돌고 있다. 소비자의 1인당 가처분소득(소비나 저축에 쓸 수 있는 돈) 증가율도 둔화세다.
한국의 환율 경쟁력도 영향을 미쳤다. 2019년부터 2023년까지 위안화 대비 원화 가격은 9.7% 올랐지만, 같은 기간 일본 엔화는 24.3% 올랐다. 예컨대 한국에서 1000원이 5.9위안에서 5.4위안으로 떨어지는 동안 일본 100엔은 6.3위안에서 5.1위안이 됐다. 중국인이 한국에서 소비할 여유가 줄었다는 의미다.
한 면세점 관계자는 “새해 명품 가격이 일제히 오르면서 면세품 가격도 올라 환율의 영향이 크다”며 “여기에 중국의 경기 침체 장기화와 싼커(개별 관광객) 위주로 변하는 관광 문화가 외국인 면세 소비 회복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면세 소비가 줄어든 가장 큰 이유는 환율이나 물가의 영향도 있지만, 중국인들이 한국이 아니라 일본으로 많이 가기 때문”이라며 “중국 관광객이 한국에서 소비할 때를 대비해 면세점이 브랜드와 상품을 발굴하고, 상품 경쟁력을 키우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김벼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