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수사심의위원회가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 부실 대응 책임을 물어 김광호 서울경찰청장을 재판에 넘길 것을 권고했지만, 검찰은 기소 여부를 놓고 고민을 이어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검찰 관계자는 16일 헤럴드경제에 “서부지검 수사팀이 위원회에서 제시한 의견(불기소 취지)은 최종 의견이 아니라 다양한 의견을 종합한 잠정 의견”이라면서도 “서울청장에 대해서는 위원 15명 중 6명이 불기소 의견을 주장할 만큼 쉽지 않은 사건”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서부지검은 그간 확립된 법리와 조사된 사실관계, 수심위 의견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입장을 정리할 것이고, 총장은 그 입장을 들어보고 대검찰청 참모의 의견도 들어본 후 신중하게 결정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덧붙였다.
앞서 수사심의위 현안위원들은 15일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로 수사를 받아온 김 청장에 대해 9(기소)대 6(불기소) 의견으로 기소하도록 검찰에 권고했다.
수사심의위는 외부 전문가 위원에게 검찰이 수사 결과를 설명한 뒤 안건에 대한 의견을 구하는 절차다. 국민적 의혹이 제기되거나 사회적 이목이 집중되는 사건을 대상으로 하며, 150∼300명의 외부 전문가 위원 중 무작위 15명으로 현안위원회를 구성해 심의한다.
대검 예규인 심의위 운영지침에 따르면 주임 검사는 수사심의위의 심의 의견을 존중해야 한다. 반드시 따라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번 사안은 이원석 검찰총장이 고심 끝에 직권으로 소집한 데다 여론의 이목이 집중된 만큼 수사심의위 권고를 따를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다만 검찰 측은 수심위 결정을 ‘존중’하되, 불기소 의견도 전체의 40%에 달하는 만큼 신중하게 판단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검찰 관계자는 “총장 직권으로 소집한 것과 수심위 의견을 따를 지 여부가 직접적인 관련은 없지만, 수심위 결론을 기본적으로 존중한다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수사심의위에 직접 참석한 유족 측에 따르면 서부지검 수사팀은 이날 현안위원회에서 두 사람에 대한 수사 결과를 설명하며 ‘주의 의무가 없다’는 의견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업무상 과실죄는 업무상 요구되는 주의를 태만히 한 것을 처벌하는 조항이다. 생명·신체 등에 위험이 따르는 업무에 종사하는 사람이 주의 의무를 게을리해 사람을 다치거나 사망하게 했을 때 적용한다. 경찰관과 소방관 등이 대표적이다. 위험 발생이 뒤따르는 업무에 종사하는 이에게 법적으로 고도의 주의 의무를 부과했고, 이를 어길 경우 처벌한다는 의미가 있다.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가 성립하려면 업무자가 어떤 행위를 함에 있어서 일정한 주의를 기울일 의무가 있는데도 이를 지키지 않았음이 입증돼야 한다.
검찰이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 수심위를 소집한 것은 인명피해가 컸던 사고 관련 책임자들이 잇따라 무죄 판결을 받았다는 고민이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죄 판결을 이끌어낼 수 있을지 불분명한 상황에서 검찰로서는 경찰 서열 2위로 평가받는 서울경찰청장에 대한 기소에 신중을 기할 수밖에 없다. 무죄가 확정되면 무리한 기소를 했다는 비판도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과 윤희근 경찰청장이 이미 경찰 단계에서 무혐의 처분을 받았는데, 검찰이 김광호 청장까지 불기소 결정을 내리면 이른바 ‘윗선’은 사실상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게 돼 비판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점은 부담스러운 대목이다.
경찰 특별수사본부는 지난해 1월 13일 김 청장 등을 검찰에 불구속 송치했지만 사건을 넘겨받은 서울서부지검은 1년 넘게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수사를 이어왔다. 같은 날 수사심의위에 회부된 최성범 전 용산소방서장에 대해서는 1(기소)대 14(불기소) 의견으로 불기소 권고안이 의결됐다.
윤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