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인신고한 게 죄?”…결혼 페널티에 두 번 운다 [인구정책, ‘가시규제’가 문제]

[헤럴드경제=양영경 기자] #. 올가을 결혼을 앞둔 A(35)씨는 결혼과 동시에 혼인신고할지 아니면 이를 미룰지 고민에 빠졌다. 부모님께 지원받을 결혼자금(증여)과 세금 공제를 생각하면 혼인신고가 필수지만, 청약은 신고가 늦으면 늦을수록 좋다는 얘길 들었기 때문이다. A씨는 “혼인신고하고 애 낳으면 혜택을 보게끔 해야 하는데, 제도상 그렇지가 않다”면서 “오히려 받던 혜택도 끊길 수 있어 조심스럽다”고 했다.

최근 국가적 위기로 떠오른 인구 소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각종 대책이 쏟아지고 있지만, 인구위기 대응의 핵심 격인 ‘결혼’과 ‘출산’을 유도하는데 발목을 잡는 제도 역시 여전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신혼부부 사이에서는 결혼 자체가 ‘메리트’가 아닌, ‘페널티’가 될까 노심초사하는 분위기도 읽힌다.

[헤럴드경제DB]

21일 정부에 따르면 올해 경제정책방향과 각 부처 업무보고 등에서는 인구 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결혼·출산·육아지원 확대책이 다수 담겼다.

혼인과 자녀 출생 전후로 2년간 직계존속의 증여재산 공제한도를 확대하고, 부모급여와 첫만남이용권 확대 등 재정·세제 지원을 늘리는 내용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여기에 부모 모두 6개월 이상 육아휴직을 사용하면 6개월간 최대 3900만원을 받을 수 있는 제도와 육아휴직 수당 지급방식을 ‘휴가기간 중 완전 지급’으로 전환하는 정책도 육아친화적인 사회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한 방안으로 언급됐다.

이렇듯 전 부처가 결혼·출산 정책을 ‘영끌’하고 있지만, 오히려 기존 정책 속 가시 규제 탓에 저출산 해소를 위해 장려해야 할 결혼조차 하기 쉽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표적인 걸림돌로 거론되는 건 소득합산 조건이다. 특히 미혼과 맞벌이 부부의 조건에 큰 차이를 두지 않다 보니, 결혼과 동시에 정책 대출 대상에서 밀려날 수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

지난 10월 주택구입용 ‘디딤돌대출’과 전세자금용 ‘버팀목대출’의 부부합산 소득 요건이 각각 8500만원, 7500만원 이하로 이전보다 1500만원씩 늘어나긴 했지만, 부부의 연소득을 합산하면 여전히 조건에 부합하기 어려울 수 있다. 가령 연소득이 6000만원인 직장인은 미혼일 때 디딤돌대출 대상이지만, 연소득으로 3000만원을 버는 배우자를 만나면 대상에서 제외된다.

이달 29일 접수를 시작하는 신생아 특례 구입·전세자금 대출도 마찬가지다. 정부는 2년 내 출생한 무주택 가구나 1주택자 중, 연소득 1억3000만원 이하 등을 조건으로 최저 연 1.6% 금리의 대출(구입 기준)을 제공한다. 정책의 목적이 ‘출산’에 맞춰져 있음에도, 소득 제한이 걸려 있다 보니 위장 미혼도 함께 양산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된다.

여기에 ‘대출신청일 기준 2년 내 출산’이라는 조건을 내걸고도, 정작 2022년생은 제외하면서 논란도 일고 있다. 국회 국민동의청원에는 “태어난 지 24개월이 안 된 아기는 대상에 포함해야 논란의 여지가 없다”, “저출산 대책이라고 내놨지만 중장기적인 출산계획을 잡기 더 어려워졌다”는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정부는 하나 더 낳아서 혜택을 보라는 입장이지만, 일부 가정은 “주거 안정이 체감돼야 둘째나 셋째도 생각할 수 있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예비 신혼부부가 청약을 위해 혼인신고를 미루는 건 ‘재테크 공식’처럼 자리 잡았다. 특별공급 제도상 신혼부부는 ‘혼인신고한 날로부터 7년 이내’로 보기 때문에 자금이 마련되거나 자녀를 낳아 청약가점을 추가할 수 있을 때까지 혼인신고를 미루는 것이다. 민영주택의 생애최초 특공에 부부가 각각 도전하기 위해 신고를 늦추는 경우도 있다.

지난해 정부는 부부가 당첨자 발표일이 같은 청약에 각각 신청해 당첨됐을 때, 이전과는 달리 ‘유효’로 처리하는 방안을 내놨다. 다만, 이 역시 먼저 신청한 1채에 대해서만 인정을 해주기 때문에 나머지 1채는 포기해야 한다.

부부는 소득 지원에서도 미혼보다 유리할 게 없다는 불만도 높다. 근로장려금은 소득이 적은 가구에 지급하는데, 총소득 기준금액이 1인가구와 홑벌이·맞벌이가구 기준으로 각각 2200만원, 3200만원, 3800만원 미만이다. 혼인신고를 하지 않은 경우, 남편의 연봉이 1억원이어도 아내가 벌어들인 소득이 2200만원 미만이라면 최대 165만원을 받을 수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출생아 중 혼인 중인 부모에게서 출생한 자녀 비중은 최근 10년 평균 98%에 달할 정도로, 우리나라에서 결혼은 출산의 중요한 전제조건이다. 이 때문에 정부도 결혼이 불이익으로 이어지는 일명 ‘결혼 페널티’를 막고자 부랴부랴 제도 개선에 나서고 있지만, 부처·사안별로 제각각 나오는 탓에 당장 결혼을 앞둔 이들이 유불리를 따져봐야 하는 상황은 변하지 않고 있다.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개인들이 결혼할 때 경제적인 사항들만 고려하는 것은 아니지만, 결혼에 대해 지나치게 부정적인 인식을 심어줄 만한 규정은 개선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Print Friend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