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CI+한미약품…진짜 승부처는 가처분소송보다 주총 [홍길용의 화식열전]

한미약품그룹이 경영권 분쟁에 돌입했다. 지주사인 한미사이언스 이사회가 OCI그룹을 대상으로 결정한 제3자 배정 증자를 막아달라는 가처분신청이 법원에 이뤄지면서다. 증자를 추진하는 주체는 한미약품그룹 창업자의 부인인 송영숙 한미사이언스 회장과 딸인 임주현 사장이다. 가처분신청을 낸 이는 송 회장의 두 아들인 임종윤·임종훈 한미약품 사장이다. ‘골육상쟁’이다. 승부는 어떻게 될까?

지난 1월 12일 OCI홀딩스와 한미사이언스의 기업결합 계획이 발표됐다. 제3자 배정 증자를 통한 상호 지분교환이다. OCI홀딩스는 현금 매수로, 한미사이언스는 최대주주인 모녀가 보유한 지분을 현물 출자하는 방식으로 각각 상대 회사의 단일 최대주주가 되는 방식이다. 같은 날 송영숙 회장과 가현문화재단이 보유한 주식 744만주를 OCI홀딩스에 매각하는 계약도 체결됐다.

결합이 이뤄지면 OCI홀딩스는 OCI그룹과 한미약품 그룹을 동시에 지배하는 지주회사가 된다. 임 사장이 단독 최대주주가 되지만 송 회장과 합한 OCI홀딩스 지분율(10.36%)는 이우현 OCI회장의 직계 보유분(11.18%)에 못 미친다. 이 회장은 17% 이상 지분을 가진 숙부 일가와 우호적이다. 의결권만 따진자면 OCI그룹이 한미약품 그룹을 삼키는 모양새다.

주목할 대목은 19.36%의 지분을 가진 최대주주 모녀가 이사회 결정만으로 지배주주를 변경하려 시도한 점이다. 이 방식에 아무 법적 문제가 없다면 이사회가 대규모 신주를 발행해 지배구조를 바꿀 수 있게 된다. 그런데 뭔가 좀 이상하다. 이사는 주주가 선임한다. 그런데 주주를 이사 마음대로 바꿀 수 있다면 과연 회사의 주인은 주주일까 이사회일까?

신주를 발행할 때에는 기존 주주 전부에 동일하게 인수 권한을 부여하는 게 상법의 기본 원칙이다. 신주 발행이 기존 주주의 ‘비례적 이익’을 해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신기술의 도입, 재무구조의 개선 등 회사의 경영상 목적 달성을 위한 경우에만 주주가 아닌 자에게 신주를 배정할 수 있도록 제한한 이유다. 회사가 법이나 정관에 어기거나 현저하게 불공정한 방법으로 주식을 발행해 주주가 불이익을 받을 염려가 있는 경우에는 그 주주는 회사에 대하여 이를 막을 것을 청구할 수 있다.

증자를 결정한 두 회사의 이사회 회의록을 보자. 한미사이언스가 밝힌 증자 목적은 재무구조 개선 및 운영자금 확보다. OCI홀딩스는 한미약품그룹의 OCI그룹 편입이 증자 목적이라고 밝히면서 이번 증자로 두 그룹이 하나로 통합되는 효과가 있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증자 참여 주체가 경영권 획득 효과를 인정했는데 과연 법원이 한미사이언스 증자 이유를 ‘재무구조 개선’으로만 이해할까?

다시 상법을 보자. 상법은 경영권이 걸린 사안(영업의 전부 또는 중요한 일부의 양도, 경영위임, 타인과 영업의 손익 전부를 같이 하는 계약 등이 체결)은 주주총회 특별결의를 거치도록 정하고 있다. 이사회의 판단으로 지배구조에 중대한 변경을 시도할 때는 주주 대다수의 동의가 필요하다는 뜻이다.특히 주총 특별결의를 할 때는 반대주주에게 매수청구권을 부여해야 한다.

마침 지난 해에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비슷한 사례가 있었다. 2023년 2월 7일 에스엠 이사회는 제3자인 카카오를 대상으로 123만주의 신주와 114만주로 바꿀 수 있는 전환사채(CB)를 발행하기로 의결한다. 에스엠 이사회는 사업협력을 제3자 배정의 이유로 내세웠지만 이 결정이 실행되면 카카오가 에스엠 2대 주주가 돼 지배구조가 달라진다는 것은 너무나 분명한 상황이었다.

2월 9일 이수만 씨가 보유한 주식 매수해 새로 최대주주가 된 하이브는 법원에 신주와 CB 발행을 막아달라는 소송을 낸다. 하이브가 경영권 경쟁인 공개매수를 선언한 것은 2월 10일이다. 법원은 경영권 분쟁에 돌입하기 전에 이뤄진 결정임에도 에스엠에 신주 및 CB 발행금지를 명령한다. 제3자에 대한 신주와 CB 발행이 법에서 정한 목적에 어긋나고 주주의 비례적 이익을 훼손한다는 판단에서다.

긴급한 경영상의 이유로 제3자 배정 증자를 법원이 인정한 최근 사례는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위해 한진칼의 산업은행을 2대주주로 영입한 것이 유일하다. 증자 결정을 한 한미사이언스 이사회 회의록을 보면 각각 검사와 판사 출신인 신유철, 김용덕 한미사이언스 사외이사가 도장을 찍었다. 법률 전문가인 두 사외이사가 법원에서 신주 발행을 막을 가능성을 인지하지 못했을까?

한미사이언스 이사회는 지배구조 변경이 제3자 배정 증자가 아닌 송 회장 모녀의 주식 양도와 현물 출자로 이뤄진다고 주장할 수 있다. 송 회장 모녀 등이 OCI홀딩스에 넘긴 주식은 한미사이언스 발행 주식의 20.3%에 달한다. 신주발행 없이도 OCI홀딩스는 단독 최대주주가 된다. 신주발행까지 이뤄지면 OCI홀딩스 지분율은 27%로 높아지고 두 형제의 지분율은 19.3%에서 17.7%로 낮아진다.

증자의 목적이 지배구조 변경에 있지 않다는 점이 인정된다면 쟁점은 한미사이언스의 경영 상황이 될 가능성이 크다. 제3자 배정 증자를 해서라도 재무구조 개선을 할 정도의 상황인지에 대한 판단이다. 즉 긴급한 경영의 필요가 주주들의 비례적 이익 보다 더 크다면 제3자 배정 증자는 허용될 수 있다.

증자가 이뤄지면 OCI홀딩스가 유리한 고지에 서게 된다. 하지만 법원이 증자를 막더라도 송 회장 측에서 이를 주총까지 가져가 관철시키려할 가능성은 낮다. 설령 주총을 통과해도 두 형제가 매수청구권을 행사하면 규모가 5000억원에 달해 한미사이언스가 감당할 수 없다. 증자 대신 자사주(2.8%)나 송 회장 모녀의 잔여지분을 OCI홀딩스에 매각해도 지분율을 28%까지 끌어올릴 수 있다.

증자 여부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올해 정기주총이다. 이사회 장악을 위해 양측이 표 대결이 벌일 가능성이 크다. 송 회장과 3명의 사외이사 임기는 2025년 또는 2026년이다. 특별 결의가 필요한 해임은 어렵지만 두 형제가 이사의 수를 정관상 한도인 10명까지 늘릴 수 있다면 이사회 과반을 차지할 수 있다. 이사회를 장악하면 아직 향배가 정해지지 않은 자사주에 대한 통제권도 확보하게 된다.

정기 주총 의결권은 2023년 말 기준이다. 두 형제의 지분율은 각자의 자녀 보유분까지 합쳐도 23.3%다. 송 회장과 임 사장, 가현문화재단의 지분율은 25.84% 이상이다. 각각 12.15%, 7.4%를 가진 신동국 한양정밀화학 회장과 국민연금 표심이 가장 중요하다. 가족 등 특수관계인 지분율이 56%를 넘는 만큼 모녀와 형제 외 다른 가족들의 의결권 향배도 변수다.

OCI홀딩스는 한미사이언스와 결합이후 공동경영을 위해 중간 지주사를 설립하겠다고 예고했다. 기존 OCI부분은 이 회장이, 한미사이언스 부분은 송 회장 모녀가 경영을 맡는 형태가 예상된다. 하지만 전혀 다른 가문 간의 동업이 얼마나 유지될 지는 알 수 없다. 후계를 위해서 향후 재분할될 가능성 도 배제할 수 없다. 여전히 단독으로는 안정적 지배력을 확보하지 못한 이 회장과 송 회장 모녀가 재분할 과정에서 지분율을 높이는 길을 모색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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