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송학중 폐교를 막기 위해 지역 주민이 꾸린 발전위원회가 송학중에서 회의를 하고 있다. [송학중 발전위원회 제공] |
[헤럴드경제=박혜원 기자] #.“예비 중1 학부모들을 일일이 찾아 (진학을) 홍보하고, 교육감도 수없이 찾아가 설득했습니다. 극복 사례를 배우려고 제주도에 있는 학교까지 찾아갔어요. 수천만 원을 쓰고 1년 벼농사도 망쳤지만… 학교를 살려 기쁩니다.” 충북 제천에 위치한 송학중이 폐교한단 소식을 갑작스레 접한 졸업생 김태원(64)씨가 이같이 말했다. 김씨는 졸업 후 제천에서 공무원 생활 등을 거쳐 현재는 농사를 지으며 50년째 지역에 머물고 있다.
송학중 신입생은 2020년부터 3년간 ‘0명’이었다. 결국 충북교육청은 전교생 6명인 송학중을 폐교 대상으로 지정했다. 이 직후 지역 주민 40여명이 모여 김씨를 위원장으로 하는 발전위원회를 꾸렸다. 1970년대에 개교해 지역에 상징적 역할을 해왔던 학교를 살리자는 취지였다. 김씨는 당시의 심정에 대해 “그야말로 낙담, 지역이 서서히 망가져간다는 생각에 두려웠다”고 했다. 10년 사이 이미 인근 초등학교 2곳이 사라진 상황이었다.
김씨는 지역 내 예비 중1 학부모를 수소문해 일일이 설득하는 일부터 시작했다. 김씨는 “처음 학부모들은 ‘시골학교에 뭐하러 보내냐’는 달갑지 않은 반응을 보였다”며 “작은 학교이니 왕따 걱정도, 학교폭력 우려도 없지 않겠느냐는 점을 주로 학부모들에게 이야기했다”고 했다. 지역 소재 기업을 직접 찾아, “학생들이 연필이라도 살 수 있게 해달라”며 기부금을 모으기도 했다. 이렇게 모인 기부금은 총 1억4000만원이다.
송학중 교사들 역시 뜻을 모았다. 학교 홍보를 위해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꾸렸다. 의약학계열 진학 희망 학생을 위해선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단체견학을, 웹툰 작가 지망 학생에겐 팝아트 체험 프로그램을 꾸렸다. 전미영 송학중 교무부장은 “교사들이 그야말로 인맥을 총동원하고, 예산이 넉넉하지 않다보니 교사들이 무료로 나와서 수업을 하기도 한다”고 했다.
이같은 노력 끝에 송학중은 지난해 신입생 6명, 올해는 12명을 모았다. 당초 교육청이 폐교 방침 철회 조건으로 내건 ‘신입생 2명’을 3배나 넘어선 수치다. 신학기가 되면 송학중 전교생은 18명이 된다.
청주 행정초등학교 측에서 신입생 유치를 위해 인근 아파트 단지 엘리베이터에 부착한 홍보문. [행정초 제공] |
저출생 여파로 폐교 위기 학교가 속출하면서 지역에 위치한 학교들에선 신입생을 한 명이라도 더 모으기 위한 ‘유치전’이 펼쳐지고 있다. 교사뿐 아니라 지역주민까지 나서 학부모들을 설득하고, 장학금이나 교육 프로그램 등 각종 혜택을 내걸기도 한다.
한때 전교생이 1000명에 달했던 청주 행정초등학교도 지난해 전교생이 43명으로 줄면서 자구책 마련에 나섰다. 입학 시 30만원, 전학해 입학하면 20만원, 졸업생은 30만~40만원인 장학금 등을 홍보하는 현수막을 인근 아파트 단지 엘리베이터마다 부착해 홍보에 나섰다. 복지시설로 학교 내 글램핑장을 마련하기도 했다. 물론 예산이 넉넉한 상황은 아니다. 행정초 관계자는 “학교 시설 투자에 쓸 돈을 교육활동에 투자하고 있다”며 “이밖에도 교육청 예산을 받고, 동문회와 인근 군부대에서도 장학금을 지원해 줬다”고 했다.
대구 동곡초등학교는 전교생 대상 무료 화상 영어, 무료 현장 체험 학습 등 교육프로그램에 더해 통학 스쿨버스도 마련했다. 동곡초 관계자는 “영어 원어민 학원을 섭외해 무료 학습을 제공하고, 주변에 현수막을 걸었다”며 “방과 후 학습 프로그램은 무료로 전환한지 오래”라고 전했다.
[연합] |
다만 이같은 노력마저도 소수 학교에만 허락된 사치다. 초·중등교육법에 따라 의무교육 진학은 학군마다 지정된 학교로만 가능하다. 그러나 교육청마다 ‘공동 일방 학구제’ 등 이름으로 개별 운영하는 제도에 따라 선정된 소규모 학교는 다른 학군으로부터 입학생을 받을 수 있다. 공동 일방 학구제는 큰 학교 주변의 작은 학교를 공동 학구로 묶어 폐교 위기를 맞은 작은 학교에 학생을 수혈하는 제도다. 충청북도교육청은 올해 공동일방학구제를 확대해 소규모 학교 통학차량 노선을 확대하고, 공동 행사나 용역 관련 예산 일부를 교육지원청에서 편성할 계획이다.
이 제도를 둘러싼 학교들 경쟁도 치열하다. ‘서울형 작은학교’를 운영해 학교마다 2500만원의 예산을 지원하는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내실 있는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학교를 선정하고 있다”며 “지난해 8개 학교 선정에 22곳이 지원을 했다”고 했다.
한편 저출생이 가속화하면서 전국에 폐교 위기 학교도 늘고 있다. 김병욱 국민의힘 의원이 17개 시·도교육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신입생이 한 명도 없는 초등학교는 145곳에 달했다. 2022년(114곳) 대비 27% 늘어난 규모다.
지역별로 보면 경북교육청이 32곳으로 가장 많았으며 다음으로 전남교육청(30곳), 강원·전북교육청(20곳) 등 대부분이 지방이었다. 충북 소재 한 초등학교 관계자는 “안 그래도 지역 인프라가 부족한 상황에서, 폐교 시 지역 전체가 도미노처럼 무너질 수 있다는 위기감이 크다”고 털어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