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초구의 한 반려동물용품점에서 판매 중인 강아지 전용 대화형 TV. 김희량 기자 |
[헤럴드경제=김희량·전새날 기자] “혼자 남아있을 반려견의 정서안정을 생각하셔야죠. 그래서 독플릭스(강아지 전용 채널), 영상통화, 펫캠 기능이 있는 대화형 TV도 구비했습니다.”
서울시 서초구 신세계 센트럴시티에 있는 한 반려동물용품점. 반려견 전용 가전제품인 대화형 TV의 가격은 무려 99만원이다. 반려동물을 위한 사료와 유모차를 비롯해 앙증맞은 기저귀, 장난감, 치약·칫솔도 보였다. 미용과 스파, 호텔, 돌봄 서비스 등 사람 못지않은 서비스 안내를 보니 다른 세상에 와있는 것 같았다.
반려동물 1000만 시대. 이들의 평균 수명은 10~12세로, 국내 550만 가구의 가족이다. 패션·의료는 물론, 각종 돌봄서비스와 장례까지 4조원대에 달하는 이른바 ‘펫코노미(Petconomy)’는 저출산이라는 사회적 관심사의 뒤에서 조용하게 성장하고 있다. 이미 전국의 동물병원 수는 소아과의 2배가 넘었고, 관련 시장 규모는 조만간 육아용품 시장을 추월할 것이란 전망까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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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과·유치원·유모차·수영…‘댕냥의 세계’=반려용품 시장은 10마리 중 7마리의 비중을 차지하는 반려견이 견인하고 있다. 식비 외에도 일용품 구입비, 미용비, 패션·잡화, 장난감, 돌봄서비스, 교육·훈련비 등 다양한 영역에서 소비가 이뤄진다. 사료와 의료비 중심이었던 과거와 대비된다.
거대해진 반려동물 시장은 전문화되고, 더 세분됐다. 대표적으로 식품은 영양제, 건강기능식품, 펫우유, 펫아이스크림, 멍소주·멍맥주, 케이크, 멍마카세 등 종류와 형태가 계속 진화하고 있다. 패션은 패딩, 우비, 코트에서 시작해 신발, 구명조끼 등 ‘사람의 것’과 다르지 않다. 심지어 작명 서비스와 1대 1 PT수업, 행동치료 등 견주들만 아는 전에 없던 새로운 형태의 시장도 활성화된 지 오래다.
소비의 영역이 넓어지면서 월평균 양육비의 지출 규모는 자연스레 커졌다. KB금융지주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반려동물 월평균 양육비(치료비 월 3만2791원 포함)는 약 18만6791원이었다. 2년 전 월평균 양육비(15만9500원)보다 17% 증가했다. 물가 상승을 고려하면 양육비는 계속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반려견의 평균 수명 12년을 고려하면 동물 한 마리의 평생 양육비는 약 2448만원 수준이지만, 입양비부터 100만원이 넘는 장례비를 더하면 비용은 더 커진다.
한 애견카페의 반려견 전용 메뉴. 아이들이 먹는 메뉴 못지 않게 비싸고 고급스럽다. 김희량 기자 |
▶장난감·패션은 기본, 노령견은 의료비까지=숫자로 집계되는 육아 비용은 평균적인 수치다. 이보다 더 많이 지출하는 이들이 많다. 실제 치료비를 제외하고 반려동물 월평균 양육비를 20만원 이상 지출한 가구의 비중은 2021년 25.1%에서 지난해 29.8%로 늘었다. 이 비중 역시 5년 전(13.4%)보다 2배 증가했다.
반려견의 특성과 생애주기, 또 견주의 관심사에 따라 지갑은 더 얇아진다. 경기도에 사는 ‘시루(2세)’를 키우는 견주 김모 씨는 “유치원비과 병원비는 물론, 장남감·영양제에 아낌없이 지출한다”며 “사회화 교육을 중시해 별도 교육까지 맡기고 있다”고 말했다. 반려동물용품점에서 만난 ‘쿠니(3세)’는 한눈에 봐도 멋쟁이였다. 견주가 패션·미용 용품에 관심이 많아서다. 강아지 모델로도 활동해 스파도 등록하고, 액세서리도 애용한다.
노령견을 키우는 경우엔 미용비보다 병원비 부담이 압도적이었다. 서울 동대문구에 사는 ‘구름이(19살, 몰티즈)’ 견주 지모 씨는 “의료비와 약값으로 월평균 35만원을 쓴다”면서 “여기에 구름이를 위한 강아지 적금도 월 5만원씩 내고 있다”고 설명했다.
육아용품 시장과 반려동물 시장 비교 [헤럴드경제DB] |
반려견과 반려묘를 가족이라고 인식하는 경향이 강해지면서, 소비 규모는 더 커지고 있다. 김정현 칼빈대 반려동물과 교수는 “펫테크(Pet-tech) 시장이 성장하면서 털 청소기나 정수기가 나오고, 수제간식 등 일종의 휴먼그레이드(사람이 먹을 수 있는 재료로 식품을 만드는 것)도 이뤄지고 있다”며 “반려동물을 집에 혼자 두기보다 유치원, 호텔에 맡기는 시대로 바뀐 지 오래”라고 했다.
‘댕냥이(강아지와 고양이)’의 문화가 사람으로 환산된다는 점도 주목할 대목이다. 체험형 공간이 대표적이다. 예컨대 반려견을 데리고 들어갈 수 있는 ‘메가박스 퍼피시네마(수원 영통점)’의 1회 입장료는 4만원(주말, 성인 2명, 반려견 1마리 기준)이다. 반려동물 동반이 가능한 소노호텔앤리조트 일부 객실의 주중 이용요금(스위트 스탠다드, 무기명 기준)은 22만6000원이다. 같은 일반 객실(16만6000원)보다 36% 비싸다.
서울의 한 반려견 유치원의 원생 모집 안내. 사람이 다니는 유치원 못지않다. 김희량 기자 |
▶개집에 수백만원을? “프리미엄도 안 아까워”=양극화 현상은 육아시장을 닮았다. 유통업계가 반려동물과 관련한 프리미엄 제품을 계속 선보이는 이유다. 이제 수입만원짜리 의류부터 수백만원짜리 애견하우스도 낯설지 않다. 미우미우, 고야드, 구찌, 루이비통 등 명품 브랜드에서도 고가의 강아지 의류나 하네스를 선보이고 있다. 반면 다이소에서는 경제적인 소비를 지향하는 견주들을 위한 5000원 이하 반려견 의류를 볼 수 있다.
전문가들은 일상에 부담이 되지 않는 수준에서 지출하라고 조언한다. 과소비를 넘어 관련 상품의 인플레를 소비자가 견인할 수도 있다는 일종의 경고다. 허경옥 성신여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소비가 선택적이라는 점에서 옳고 그름을 말할 수는 없지만, 일상에 지장이 생긴다면 현명한 소비라고 볼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영애 인천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반려동물 시장이 커지면서 전에 없던 서비스나 제품은 계속 등장할 것”이라며 “무분별한 소비는 시장에 잘못된 시그널을 줄 수 있고, 이는 경제성을 우선하는 소비자의 부담을 키울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