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헤럴드경제DB] |
[헤럴드경제=안세연 기자] 피고인이 법정구속 직후 대기실에서 도주를 시도했더라도 도주미수죄가 성립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하급심(1·2심)은 임시로 들어간 대기실에서 도주한 피고인을 아직 ‘체포된 자’로 볼 수 없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했지만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19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3부(주심 대법관 이흥구)는 도주미수 혐의를 받은 A씨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2심) 판결을 깨고, 사건을 서울남부지법에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사안을 유죄 취지로 판단했다.
A씨는 2018년 5월, 서울남부지법 법정에서 준강제추행죄 등으로 징역 1년 6개월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다. 사건은 그 직후 발생했다. A씨는 대기실에서 구치소 직원들이 인적사항을 확인하던 중 도주를 시도했다. 다행히 A씨는 법정 내에서 다른 수용자를 지키고 있던 구치소 직원들에게 곧장 붙잡혔다.
결국 A씨는 도주미수 혐의로 다시 재판에 넘겨졌다. 형법상 도주죄는 ‘법률에 의해 체포 또는 구금된 자’가 도주했을 때 1년 이하의 징역으로 처벌한다. 미수범도 처벌 대상이다. 일상에서 흔히 이야기하는 ‘탈옥’이 법적으로 도주죄로 처벌되는 행위다.
1심과 2심은 A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A씨를 도주죄의 구성요건인 ‘법률에 의해 체포된 자’로 볼 수 없다는 이유였다. 사법경찰관이 A씨의 구속영장을 집행하기도 전에 A씨가 대기실에서 도주를 시도한 점을 고려한 판단이었다.
1심을 맡은 서울남부지방법원 형사9단독 류승우 판사는 2019년 2월, 무죄를 선고했다. 1심 재판부는 “A씨가 도주 행위를 한 것은 사법경찰관을 대면하기 전에 이뤄졌다”며 “구속영장이 집행되기 전이므로 A씨는 형법상 ‘법률에 의해 체포된 자’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검사가 불복해 2심이 열렸지만 2심의 판단도 같았다. 2심을 맡은 서울남부지법 1형사부(부장 변성환)는 “교도관의 안내에 따라 임시적으로 대기실에 들어간 A씨를 ‘적법하게 체포된 자’에 포함시키는 것은 형사소송법 규정을 지나치게 확대해석하는 것”이라며 무죄 판단을 유지했다.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유죄 취지로 원심(2심) 판결을 뒤집었다.
대법원은 “법정구속된 피고인이 대기실에서 신병이 확보됐다면 도주죄의 주체에 해당한다”며 “검사가 피고인을 대기실에 끌어들이도록 지휘했다면 집행절차는 적법하게 개시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고 했다.
이어 “구속영장 집행 과정이 공개된 법정에서 이뤄졌다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피고인의 방어권, 절차적 권리를 침해할 만한 위법이 있다고 평가하기 어렵다”며 원심(2심) 판결을 깼다.
대법원 판결 취지에 따라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A씨는 향후 4번째 재판에서 도주미수죄에 대해 유죄를 선고받을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 관계자는 “법정구속된 피고인에 대한 신병확보가 적법하게 이뤄졌다면 그 피고인은 형법상 도주죄의 주체가 될 수 있음을 최초로 명시적으로 보인 판결”이라고 의의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