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DB] |
[헤럴드경제=배문숙 기자]윤석열 대통령이 24년간 굳어진 상속세 체제에 대해 완화 방침을 시사하면서 개편 방향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정부는 이미 유산취득세로의 전환을 추진 중인데 공제 확대, 최대주주 할증 폐지, 최고세율 조정 등 전방위적 개편이 이뤄진다면 감세 규모는 수조원에 이를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그러나 최근 금융투자소득세 폐지, 주식 양도소득세 대주주 요건 완화, 임시투자세액공제 연장 등 감세 정책이 잇따르고 있어 재원 대책이 없다면 건전재정 기조가 흔들릴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1일 관가에 따르면 기존에 알려진 상속세 주요 개편 골격은 유산취득세 도입이다.
유산 전체에 세금을 매기는 현행 유산세 방식에서 물려받은 재산에 매기는 유산취득세로 전환하는 것이다. 예컨대 100억원의 재산을 자녀 4명이 상속받는다면 현재는 100억원에 세금을 매긴 뒤 4명이 나눠 낸다. 유산취득세 방식이라면 4명이 각각 물려받은 25억원에 대해 과세하므로 누진세 체계에서 세 부담이 낮아진다.
기획재정부는 2022년부터 '상속세 유산취득 과세체계 도입을 위한 법제화 방안 연구' 용역을 발주하고 조세개혁추진단을 설립, 전문가 간담회를 여는 등 다양한 논의를 해왔다. 아직 뚜렷한 방안은 마련되지 않았다.
기재부 관계자는 "연구 용역은 내달 마무리될 예정"이라며 "개편 방안에 대해서는 아직 결정된 바 없다"고 말했다.
상속 공제가 확대될 여지도 있다. 물가상승률 등을 고려해 상속세 인적공제 확대를 추진하겠다는 추경호 전 부총리의 의견이 있다.
현재 상속 공제는 기초공제(2억원)와 성인 자녀 1인당 5000만원 등의 인적공제가 있다. 배우자 공제는 5억원부터 상속분에 따라 최대 30억원까지다.
관건은 세수 감소다. 정의당 장혜영 의원이 국회예산정책처(이하 예정처)에 의뢰한 결과에 따르면 유산취득세를 도입하면 상속인 수(2∼4명)에 따라 세수가 2021년 기준 5조6707억원에서 6379억∼1조2582억원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됐다.
공제 확대 시에도 재정 수입 감소는 불가피하다. 예정처가 외부 연구진에 용역을 맡긴 '상속세제 과세방식별 공제제도 비교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기초공제 2억원을 적용하고 배우자 공제를 2배로 확대하는 경우 전체 상속세는 약 6천364억원 감소할 것으로 추정됐다.
특히 세 부담이 높은 부유층을 대상으로 한 개편이 이뤄질 가능성도 있다. 상속세는 현행 과세표준 5구간으로 30억원 초과 시 최고세율 50%를 적용한다. 대기업의 경우 최대주주가 보유한 주식은 20%를 할증해 평가하므로 실질적 최고세율은 60%다.
윤 대통령은 지난 17일 “상속세가 과도한 할증 과세라고 하는 데 대해 국민적인 공감대가 필요하다”며 대주주 입장에서는 주가가 너무 올라가면 상속세를 어마어마하게 물게 된다. 거기다 할증세까지 있다”고 말했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도 할증을 폐지하는 내용의 상속세 및 증여세 개정안이 작년 발의돼 계류 중이다.
예정처는 이 법안의 비용추계서 미첨부 사유서에서 "개정안에 따라 최대주주 등이 보유한 상속·증여 주식에 대한 할증평가제도를 폐지하면 상속세·증여세의 세수 감소가 발생할 수 있다"고 했다. 최대주주 등이 보유한 상속(증여) 주식에 대한 할증평가 자료의 부재로 세수 효과는 추계하지 않았다.
재계를 중심으로 최고세율을 낮춰야 한다는 주장도 꾸준히 제기돼왔다. 최대주주에 적용되는 할증제도나 상속받는 금액이 많을수록 세율이 높아지는 누진 구조를 고려하면 이러한 조정 시 세수 충격이 클 수밖에 없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 때문에 상속세 개편에 공감대가 생기더라도 재원 대책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힘을 받기 어려울 수 있다.
지난해 8월 한국조세연구포럼 학술대회에서 백경엽 예정처 세제분석2과장은 "단순한 상속세 세 부담 비교 시 우리나라의 상속세 부담이 높은 수준으로 나타났지만 소득세와 상속세를 모두 운영하는 OECD 국가를 비교할 경우 우리나라는 세 부담 수준이 상대적으로 낮다"고 밝혔다.
이어 "상속세를 인하하는 방향으로 개편할 수 있지만 이에 상응해 소득세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개정해야 향후 안정적인 재정 운용이 가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연합뉴스 통화에서 "상속세는 높은 세율로 경영의 안정적인 승계를 어렵게 한다"며 "큰 폭의 세수 변화는 정부로서 부담될 수 있으나 일정 정도의 충격은 감수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큰 세제가 동시다발적으로 세수가 주는 방향으로 개편된다면 시스템적인 세수 감소는 우려스럽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