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2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 출근하며 취재진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한 위원장은 전날 대통령실의 사퇴를 요구에 “국민 보고 나선 길, 할 일을 하겠다”며 사퇴를 거부했다. 이상섭 기자 |
[헤럴드경제=신현주 기자] 윤석열 대통령의 국민의힘 당무개입 논란이 재점화된 가운데 국민의힘 내에서는 ‘침묵이 답’이라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김기현 지도부 때부터 일부 친윤계 의원들이 윤 대통령을 엄호하며 입단속 해왔던 것과 비교되는 모습이다. 오는 25일까지 예정된 현역의원 대상 여론조사를 의식했다는 평가다. 이번 여론조사는 공천 교체지수에 반영되며 전체 지수에서 40%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
23일 여권에 따르면 윤-한 갈등은 ‘일단락’ 된 것으로 알려졌다. 근본 원인으로 꼽힌 ‘김건희 리스크’와 ‘김경률 밀어주기’ 논란에 대한 이견이 좁혀지지는 않았지만, 총선을 앞두고 대통령실에서 당을 찍어 누르려는 모양새는 좋지 않다는 공통된 의견이 형성됐다고 한다.
이번 갈등은 ‘어차피 한동훈이 이기는 게임’이라는 인식도 작용했다고 복수의 지도부 관계자는 전했다. 지도부 관계자는 “한 위원장이 잘못해서 생긴 일이 아니라 대통령실의 부주의함이 여기까지 지속됐고, 이 꼬인 상태를 한 위원장이 풀려고 하다보니 생긴 일”이라며 “한 위원장 입장에서는 지금껏 지도부 중 유일하게 ‘수직적 당정관계에 맞서려는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얻을 수 있는 기회”라고 평가했다. 또 다른 지도부는 “이번 갈등으로 한 위원장이 본격 자기 정치에 나섰다고 봐야 한다”며 “길어질수록 대통령실이 불리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당내에서는 ‘당무개입’에 대한 직접 언급은 자제하고 있다. 지금까지 대통령실에서 지도부 거취에 대한 의견을 지속적으로 개진해온 것은 사실이지만, 두 권력 중 하나의 편을 드는 것은 조심스럽다는 분위기다.
현역의원 대상 여론조사가 영향을 미쳤다는 시각도 있다.
국민의힘은 지난 22일부터 오는 25일까지 공천 교체지수에 반영될 여론조사를 진행 중이다. 현재 지역구에 나가려고 하는 현역의원 대상으로 실시되는 이번 여론조사에서 하위 10% 평가를 받은 의원들은 ‘컷오프’된다. 하위 10% 초과 30% 이하인 의원들은 감점 20%가 부과된다. 약 18명이 감점 대상이다. 동일 지역구 3선 이상 중진 국회의원은 경선 득표율의 15% 감점이 부여돼 이번 여론조사가 현역의원 물갈이의 큰 변수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친윤계가 포진한 TK-PK 지역의 경우 말을 더 아끼는 모습이다. 대구 지역 의원은 “TK 지역에서는 정부 비판적 발언을 하는 것을 윤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에 대한 ‘불경죄’로 보는 분위기가 적지 않다”며 “분위기를 살필 수밖에 없다”고 했다. PK 지역 의원은 “최근 텔레그램 방에 이용 의원이 기사를 공유했지만 하태경 의원 외에 별다른 반응을 하지 않아 해프닝으로 끝나지 않았냐. 공천을 앞둔 상황에서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반면 수도권-비윤계 의원들의 목소리는 커지고 있다. 중도 표심을 얻어야 하는 입장에서 여론적 반감이 큰 ‘김건희 리스크’를 지적할 수 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수도권 의원은 “윤-한 갈등이 지속되면 수도권 선거를 정말 망칠 수 밖에 없다”며 “김기현 전 대표도 몰아내고 한 위원장의 대체제가 우리당에 더 있냐. ‘한동훈 체제’로 총선을 치를 수 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여론조사를 앞두고 중도층을 공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도부에서는 더불어민주당이 윤 대통령의 ‘정치 중립 의무 위반’을 이유로 법적 조치를 예고한 데 대해 불편함을 드러내고 있다.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은 제17대 총선을 앞둔 2004년 열린우리당을 지지해달라고 발언했다가 선거 중립 위반으로 탄핵소추를 당했다. 2016년에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총선을 앞두고 당무에 개입해 처벌 받았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전날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대통령이 특정 정당의 선거, 총선과 관련해서 이렇게 노골적으로 깊숙이 개입한 사례가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원내지도부 관계자는 “당무개입을 했다고 무조건 위법한 사실은 아니고 공천에 대해 어느정도 관여를 했는지가 중요하다”며 “법적 조치는 불가능하다”고 반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