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깎고 또 깎고’ 쉼 없는 전기차 가격 인하 경쟁…“수익성보다 점유율”

서울 강남구의 한 전기차 주차장에서 차량들이 충전을 하고 있다. [연합]

[헤럴드경제=김지윤 기자] 지난해 촉발한 전기차 가격 인하 전쟁이 새해에도 고스란히 이어지고 있다. 세계 전기차 시장 1·2위인 미국 테슬라와 중국 BYD가 잇달아 몸값을 낮추면서, 기존 레거시(Legacy) 완성차 업체들의 고민이 깊어지는 모양새다.

미국 완성차 업체 스텔란티스의 카를로스 타바레스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현실적인 비용을 무시하고, 가격 인하를 지속하는 것은 바닥으로 가는 경쟁이고, 결국 끝은 ‘피바다’가 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나섰다.

23일 업계에 따르면 테슬라는 올해 초 중국에서 모델3, 모델Y 등 주력 차량의 가격 인하한 데 이어 독일, 프랑스, 노르웨이 등 유럽 전역에서도 차량 가격을 내렸다. 독일에서 모델Y 롱레인지 가격을 8.1% 낮춘 4만9990유로(약 7300만원)에 판매 중이다.

프랑스에서는 모델Y 가격을 최대 6.7%, 네덜란드에서는 7.7%, 노르웨이에서는 7.1% 정도 인하했다. 지난해 4분기 BYD가 세계 전기차 시장에서 테슬라를 꺾고 왕좌에 오르자, 시장 점유율을 방어하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앞서 올해 초 BYD는 메르세데스-벤츠, BMW 등 기존 주력 완성차 업체들의 본거지인 독일에서 아토3 등 주력 전기차 가격을 최대 15% 인하하는 파격 행보를 보였다.

전기차 빅2의 가격 인하 움직임에 기존 완성차 업체들도 따라가는 분위기다. 현대차·기아는 미국에서 전기차를 구매하는 고객에게 최대 7500달러(약 1000만원)의 현금 보너스를 제공하고 있다. 현대차 아이오닉5·6, 코나 일렉트릭을 비롯해, 기아 EV6, 니로EV 등에 적용된다. 양사의 주력 전기차들이 미국의 ‘인플레이션감축법(IRA)’ 보조금 혜택에서 제외되자,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보조금과 동일한 액수를 자체적으로 고객에게 제공하는 것이다.

폭스바겐은 최근 유럽 시장에서 ID.3, ID.4, ID.5 등 전기차 라인업의 가격 인하를 단행하고 있다. 특히 아일랜드에서는 ID.4를 지난해보다 약 1만2365유로(약 1800만원)나 저렴한 4만1565유로(약 6000만원)에 판매한다.

미국 캘리포니아 버뱅크의 테슬라 전기차 충전소 모습. [AFP]

업계에서는 이같은 가격 전쟁이 전기차 대중화로 가기 위한 일종의 관문으로 보고 있다. 세계 각국이 전기차 촉진을 위해 내세웠던 전기차 구매 보조금을 폐지 또는 축소하는 과정에서 전기차 시장 정체가 예상되는 만큼, 완성차 업체들 입장에서는 공격적인 가격 정책으로 돌파구를 마련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스테판 브랏첼 독일자동차경영센터(CAM) 대표는 “2024년은 전기차의 전환기가 될 것”이라며 “가치사슬에서의 비용 절감은 아직 원하는 수준에 도달하지 못했지만, 적절한 할인이 없으면 완성차 기업이 전기차를 판매하기가 매우 어렵다”고 분석했다.

양진수 현대차그룹 산업연구실장은 최근 진행된 ‘자동차 시장 전망 세미나’에서 “선두 업체들은 수익성을 희생하더라도 점유율을 확대하겠다는 목표로 움직이고 있다”며 “지난해부터 나타난 가격 경쟁 국면은 향후 누가 대중화를 주도할 것인지를 두고 벌이는 싸움의 단초”라고 했다.

반면 일각에서는 수익성을 잃고, 단순히 점유율만 확대하는 것에 대한 경계의 목소리도 나온다. 타바레스 CEO는 “전 세계적으로 전기차 수요가 둔화하는 것은 높은 가격 때문”이라면서 “이미 전기차로 거의 돈을 벌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테슬라가 계속해서 가격 인하책을 쓸 경우 업계가 공멸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완성차 업체들은 과감한 가격 정책으로 대중화를 주도하는 한편, 수익성 방어를 위한 대책 마련에도 집중하고 있다. 포드는 최근 전기트럭 생산라인의 노동자 1400명을 해고하겠다고 밝혔다. 폭스바겐은 2026년까지 100억 유로(약 14조6000억원)의 비용절감 계획을 내놨고, 제너럴모터스(GM)는 혼다와의 저가 전기차 공동 개발 계획을 철회했다. 테슬라는 2025년 완공을 목표로 했던 멕시코 공장 건설을 연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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