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당선되면 한국 반도체, 중국서 다시 위기”

SK하이닉스의 다롄 낸드 플래시 공장 [인텔 제공]

[헤럴드경제=원호연 기자]11월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할 경우 한국 반도체 산업이 또다른 위기에 처할 것이라는 경고가 나왔다.

블룸버그통신은 22일(현지시간)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되면 바이든 행정부가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의 중국 공장에 부여했던 미국산 반도체 장비의 수출통제 무제한 유예조치를 번복할 수 있다며 이같이 전망했다.

한미 양국 정부는 지난해 10월 국가안전보장회의(NSC) 경제안보대화 채널을 통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중국 내 반도체 공장을 ‘검증된 최종 사용자(VEU)’로 지정하는데 합의한 바 있다. VEU로 지정되면 별도 허가를 받을 필요 없이 미국 반도체 장비를 중국 공장에 도입할 수 있다.

블룸버그 통신은 당시 합의에 대해 “윤석열 대통령이 조 바이든 대통령에게 미국에 대한 투자를 약속한 결과인 동시에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알파벳 등 미국의 주요 기술업체에 반도체를 게속 공급해야 할 필요성이 만난 결과일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도 “공화당의 선두로 나선 트럼프 전 대통령이 11월 대선에서 승리하고 백악관에 복귀할 경우 이러한 면제 조항이 유지될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고 지적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바이든 지우기’에 나설 경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부여된 VEU 자격을 철회할 수 있다는 얘기다.

블룸버그 인텔리전스는 “반도체 주요 공정 중 에칭·플라즈마 증착 등은 미국이 주도권을 잡고 있고 웨이퍼 세정과 노광 공정은 일본과 네덜란드 장비가 주도하고 있다”면서 “한국의 반도체 제조업체라면 미국과 그 동맹국이 제공하는 기술, 재료 및 전문성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며 VEU 자격 유지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블룸버그는 이 경우 SK 하이닉스가 인텔로부터 인수한 중국 다롄(大連)의 낸드 플래시 신공장이 당장 타격을 입을 것으로 예상했다. 반도체 산업을 둘러싼 미중 갈등이 격화됐을 당시 재매각설까지 나왔던 공장이다.

SK하이닉스는 1차 인수 대금으로 70억달러를 지급해 낸드 플래시메모리 기반 SSD 사업과 관련 공장 자산을 넘겨 받았다. 오는 2025년 3월께 나머지 20억달러를 지급하고 낸드플래시 웨이퍼 연구개발(R&D)과 다롄 공장 운영 인력을 비롯한 유·무형 자산을 이전 받을 예정이다.

트럼프 제 2기 행정부가 2025년 3월께 출범한 뒤 VEU 자격을 번복할 경우 SK하이닉스 입장에서는 공장 운영에 필요한 장비 반입에 차질을 빚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다롄 공장에서 생산하는 낸드 플래시 메모리는 SK하이닉스 매출에서 점차 비중이 커지는 제품이다. 문제는 낸드 플래시 메모리 매출의 27%가 중국에서 나오고 있다는 점이다.

마사히로 와카스기 블룸버그 인텔리전스 연구원은 “SK하이닉스 다롄 공장의 사례는 미국의 규제로 인해 한국의 반도체 제조업체들이 겪는 어려운 상황을 잘 보여준다”며 “최근 미국의 양보에도 불구하고 미국 재선과 그 이후 미국 정책에 대한 불확실성을 감안하면 다롄 공장의 생산 능력을 확대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은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중국의 반도체 가치사슬이 확대되고 있는 점도 한국 반도체 기업 입장에선 위협이 될 수 밖에 없다. 블룸버그는 “한국의 스마트폰과 자동차는 중국 업체와의 경쟁이 심화되고 사드 분쟁이 발생하면서 중국에서 대거 철수해야 했다”면서 “반도체 분야에서도 같은 상황이 반복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미국무역대표부(USTR) 대표로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을 주도했던 웬디 커틀러 아시아소사이어티정책연구소 부소장은 “한국 기업들은 미국과 중국으로부터 동시에 오는 위험과 압력, 기회를 저울질하며 어려운 결정을 내려야 하는 상황”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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