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O아 가게 공과금이 부족한데…100만원만 빌려줄 수 없을까”
서울 성동구 한 카페에서 만난 29살 강모 씨는 3년 전 이같은 어머니의 부탁을 “모든 게 처음 시작된 순간”이라고 회상했다. 당시 강씨의 수중에는 여유 자금이 없었다. 하지만 그 사실을 인지한 건 “내가 구해볼게”라며 어머니를 안심시킨 뒤였다. 그는 평소 친구들이 현금을 구하던 모습이 떠올랐고, 금세 100만원을 손에 쥐었다. 19% 금리의 카드론 100만원. 강씨의 첫 대출이었다.
지방에 거주하던 강씨는 이후 어머니가 카페를 운영하던 서울로 이사해 가게를 도왔다. 3평 남짓 가게에 코로나19 여파는 강했고, 순이익은 월 60만원 선에 그쳤다. 강씨는 가족들의 생활자금 마련을 위해 은행을 찾았다. 그러나 소득이 없었다.
강씨는 “부끄럽지만 카드론이 2금융권이고, 이용하면 신용점수가 떨어진다는 사실을 몰랐다”고 말했다. 그는 결국 은행 대출을 거절당하고, 한도가 남은 카드론을 통해 2000만원을 빌렸다. 역시 금리는 19%였다. ▶관련기사 3면
이후 강씨는 햇살론을 통해 1500만원을 추가 대출했다. 이때부터는 가게 수입으로 이자도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결국 불법 사채에 손을 댔다. ‘20만원 빌리면 일주일 후 38만원으로 상환’ 이자율은 수천%에 달했지만, 대안이 떠오르지 않았다. 하지만 사채 이자를 갚기 위해서는 또 다른 사채에 손을 댈 수밖에 없었다.
그는 가게 일에 손을 떼고 일용직 노동을 시작했다. 주간·야간을 닥치는 대로 일하며 월 400만원을 벌었다. 물론 이자를 떼고 나면 손에 쥐는 돈은 없었다. 남은 건 상환 독촉 전화와 수북한 고지서뿐이었다. 강씨는 “탈출구가 없는 상황, 매일 죽음을 생각했다”며 “이런 사실을 모르는 가족들이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버텼다”고 말했다.
▶‘쉬운 대출’의 함정…단돈 수백만원에 ‘신용불량’된 청년들=20대 채무 불이행자(구 신용불량자)의 수가 2022년을 기점으로 급증하고 있다. 심지어 증가 속도는 점차 가속화되고 있다.
23일 더불어민주당 김성주 의원실이 NICE평가정보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8년 8만명 수준이었던 20대 채무 불이행자는 2021년 말 6만8651명까지 줄곧 감소세를 기록했다. 그러나 2022년에만 2744명, 지난해에는 11월까지 1만234명이 늘어나며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코로나19 확산과 고금리·고물가에 이은 경기둔화의 여파가 청년층에 더 매섭게 불어닥친 결과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한 해 전체 취업자 수(2841만명)는 32만7000명 늘었다. 하지만 20대 청년 취업자는 1년 새 8만2000명가량 줄었다. 이처럼 소득 기반이 약해질수록, 적은 채무에도 부실 위험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실제 20대 채무 불이행자의 평균 채무액은 1970만원으로 여타 연령대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경기도 성남에 거주하는 30살 김모 씨는 총 1200만원의 채무액으로 채무 불이행자에 등록됐다. 3년 전 생산직으로 근무하던 김씨의 월급은 200만원 남짓. 아픈 어머니의 병원비와 함께 두 식구의 생활자금을 감당하기에는 턱없이 모자랐다. 결국 김씨는 인터넷 대출중개사이트를 통해 저축은행 2곳에서 각각 1000만원, 200만원의 대출을 받았다. 그는 “시중은행들의 경우 대출을 원하는 만큼 받을 수 있는 조건이 안 돼 별다른 선택지가 없었다”고 말했다.
이후 매월 30만원가량을 원리금으로 납부하는 김씨는 한계에 부닥쳤다. 생활비가 모자라 한 번 원리금 납부 기일을 놓친 게 시작이었다. 이후 독촉 전화는 쏟아졌고, 미납금은 금세 불어났다. 집에 사람들이 들이닥쳐 “빨간 딱지를 붙이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연체가 1년이 넘어가자 채권은 신용정보사로 팔렸다. 그들은 “법적조치를 통해 강제로 가져가겠다”고 압박했다.
김씨는 신용정보사에 원리금 분할 납부를 수차례 요청했다. 하지만 그들은 “우선 밀린 금액 절반 이상인 400만원을 납부하라”는 말을 반복했다. 김씨는 “쌓여있는 우편물을 보지 않기 위해 수시로 우편함을 확인했다”며 “내가 빌린 빚이기에 어떻게든 갚으려고 노력했지만 현실적인 방법이 없어 막막했다”고 말했다.
▶연체 막으려 사채 ‘돌려막기’도…“벗어나려 할수록 더 깊이 빠져”=독촉을 해결하기 위해 지인 빚이나 불법 사채로 ‘돌려막기’를 하는 경우도 빈번하다. 서울에 거주하는 28살 A씨는 돌아가신 아버지가 지인으로부터 빌린 돈을 갚으려 처음 대출에 손을 댔다. 인터넷은행 비상금대출 300만원으로 시작한 빚은 카드론과 저축은행 등을 이용하면서 3000만원으로 불어났다.
이후 아르바이트를 통해 이자를 갚던 A씨는 “더 큰 돈을 벌 수 있다”는 지인의 말에 투자 알선 사업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기대했던 수익은 없었다. 되레 소득도 없이 연체를 막으려다 보니, 지인들에 손을 벌리기를 반복했다. 사업을 정리할 무렵에는 불법 사채도 이용했다. 채무액은 6000만원에 달했고, 월 상환금은 200만원을 넘어섰다. 그렇게 A씨는 채무 불이행자로 전락했다.
그는 “당연히 갚을 수 있다는 생각으로 빌렸지만, 연체가 시작된 후부터는 돈을 구할 수 있다면 조건도 보지 않고 달려들고 있었다”며 “문자와 전화가 끊임없이 오다 보니, 불 꺼진 집에 숨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숨만 쉬고 있었다”고 말했다.
잘못된 선택으로 빚더미에 앉는 사례도 있었다. 서울 성북구에 거주하는 29살 이모 씨는 지난해 초 한 중소기업에서 사무직 일자리를 얻었다. 문제는 선배들에 이끌려 접하게 된 불법 도박이었다. 이씨는 “도박으로 쉽게 버는 돈에 빠져, 알트코인 투자나 사다리(인터넷 사행성 게임) 등에 빠져 살았다”며 “230만원 정도 월급으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에 이자가 얼마인지도 보지 않고 돈을 빌렸다”고 설명했다.
입사 1년이 안 된 시기에는 직장도 그만뒀다. 200만원도 채 되지 않는 퇴직금을 받기 위해서였다. 당시 이씨의 금융권 채무액은 3700만원, 연체는 6개월을 넘어선 상황이었다. 이씨는 “일을 그만둔 뒤로는 통장도 막히고 ‘돌려막기’에도 한계가 왔다”며 “생각없이 빌린 돈의 대가가 너무 컸다”고 말했다.
무료 채무상담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시민단체 주빌리은행의 유순덕 이사는 “직업이나 소득이 불안정한 경우가 많은 청년의 경우 카드론 등 고금리 상품에 쉽게 노출되고, 또 연체에 빠질 위험이 크다”며 “심각성을 알게 된 순간, 대처하는 방법을 몰라 단돈 수백만원에 채무 불이행자가 되는 사례가 빈번하다”고 말했다.
전영훈 서울시복지재단 청년동행센터 상담관은 “최근 경제 상황이 악화되며, 경제적 지지 기반을 가지지 못한 금융 취약 청년들이 먼저 한계로 내몰리고 있다”며 “어려운 상황에 처한 청년들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도록 두 번째 기회를 주고, 사회에서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고 말했다. 김광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