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처법 D-3’ 제조·건설업 “기어코 강행?”…카페에선 “공장만 적용 아녜요?”

오는 27일부터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해서도 중대재해처벌법이 적용될 예정이다. 제조업, 건설업, 요식업을 가리지 않고 영세업체들에 비상이 걸렸다. 사진은 기사와 직접적 연관 없음 [연합]

[헤럴드경제=이민경·김용재 기자] 오는 27일부터 근로자 5인 이상 50인 미만 사업장 83만7000여곳에 중대재해처벌법(중처법)이 확대 적용된다. 이미 3년의 유예 기간을 뒀지만 대다수 사업장에선 준비가 미흡했다. 현장에선 아예 법 적용대상이 되는지조차 모르고 있었던 곳도 다수다. 법 시행으로 비교적 큰 사회적 혼란상이 예견되는 이유다.

24일 헤럴드경제가 중처법 대상 확대로 인해 오는 27일부터 법 적용을 새롭게 받게되는 사업주들을 취재한 결과, 제조업과 중소 건설업계에선 중처법이 결국 사업 위축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아우성이 쏟아졌다. 안전관리에 대한 투자 역시 사업규모 축소로 인해 줄어들 것이란 우려가 나왔다. 음식점 등 소상공인 다수는 자신의 사업장이 중처법 적용 대상이란 것조차 모르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특히 ‘부동산 한파’를 겪는 건설업계는 “알고도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호소했다. 수도권의 한 중소건설사 관계자는 ‘유예 기간 동안 중처법 시행을 잘 준비했느냐’는 질문에 “여전히 대비가 안된 상태”라고 했다. 특히 그는 “안전 전문가를 1명 이상 채용하라는 게 정부 방침인데 인건비가 추가로 6000만원 이상 든다”며 “알다시피 건설업 업황이 매우 안 좋아서 사람을 줄이려고 하는 판에 그렇게 비싼 인력을 채용하기 쉽지 않다. 차라리 모든 공사장에 폐쇄회로(CC)TV 설치를 하는 편이 낫겠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법의 취지를 모르는 것은 아니나 현장에서 작업자가 실수로 다칠 수 있고, 건설 현장 특성상 그 실수가 큰 부상과 사망사고 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그럴 때 몇 억원의 벌금 또는 대표가 구속되는 일이 벌어지면 회사는 바로 폐업 위기에 처하게 된다”고 주장했다.

경기도 이천에서 필름(호일) 공장을 운영하는 용강호 아이앤티 대표는 “유예가 아닌 폐지만이 근본적인 대책”이라고 강조했다. 용 대표는 “이 법을 시행한다고 해서 중대재해가 줄어들지 않을 것”이라며 “중기는 지금 사람 하나라도 덜 쓰려고 하고, 산업 경쟁력과도 직결되는 설비 투자마저 줄이고 있다. 이런 현실에 과연 정말로 현장에서 안전관리에 힘을 쏟을 수 있을까. 법으로 옥죄면 옥죌수록 안전관리는 더욱 부실해진다는 현실을 탁상공론 입법으론 알 수가 없을 것”이라며 지적했다.

이어 “우리 회사는 주력 제품이 필름이다보니 화학 약품이 많아 기존에도 화재 사고에 매우 신경쓰고 있었다. 소방법, 산업안전보건법 등을 엄격하게 적용받고 있어서 직원들이 거의 ‘준소방관’”이라며 “그런데 여기에 대표를 처벌하는게 목적인 중처법까지 더해지면 심리적으로 위축될 수 밖에 없다. 진짜로 이제 한국에서 공장 접고 해외로 나가라고 정부가 등 떠미는 격”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파주에서 지난 2010년부터 인쇄업 공장을 운영하는 김모 씨는 “저희는 크게 사망사고가 날만한 업종이 아니지만 손끼임 등 산재는 있었다. 안 그래도 인쇄업이 사양산업이라 규모가 영세한데 안전관리자는 제가 겸임해야 할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50인 미만 사업장을 일률적으로 법 적용 대상에 포함시킨 것 자체가 문제가 있다고 했다. 김씨는 “그래도 40인 규모가 되는 회사면 대표가 부재해도 중간관리자들이 회사 운영을 이끌어 나갈 수 있을 것 같다”며 “저희처럼 10~20명대인 대부분 영세업체들은 중간관리자가 있더라도 대표를 대직할 만한 급이 아니라서 대표가 사실상 모든 일을 책임진다. 이럴 때 대표가 구속되면 동시에 그 회사가 문 닫고 직원들도 일자리를 잃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국적으로 30만명에 달하는 자영업자들 역시 중처법 확대 적용 대상이다. 이중 5~9인 영세업자 비율이 80.1%(2021년 기준 ·21만2212명)로 압도적으로 높다. 하지만 대다수 음식점, 카페 주인들은 ‘중대재해처벌법’의 명칭을 인지하고 있지도 못했다.

영등포구에서 20년째 참치집을 운영하는 A씨는 “정직원 한 명에 점심·저녁 각각 아르바이트 두 명씩, 저까지 해서 딱 6명이다. 제가 직접 계산과 설거지를 맡고 있는 이런 ‘구멍가게’에 무슨 수억 원대 벌금에 대표 구속인 법이 적용되느냐”며 깜짝 놀라는 반응을 보였다.

그는 “해산물을 다루고 있지만 지금까지 한 번도 식중독 사고나 산재가 일어난 적이 없다. 하지만 이런 법이 시행되면 안 그래도 힘들게 이어가는 장사에 더욱 부담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파티셰와 바리스타, 홀 직원 등 총 8명을 고용하고 있는 강남구의 C베이커리 사장도 “중처법은 제조업 공장 이런 데만 적용되는 줄 알았다”며 “우리 정도 규모의 베이커리 카페만해도 고용인원이 다섯 명은 무조건 넘기게 돼 있다. 저희뿐 아니라 다른 카페에서도 모르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큰 사고가 아니더라도 손님들이 식중독이라도 걸리면 내가 구속될 수 있다는 게 충격적”이라며 “하지만 공무원들이 직접 가게에 방문해서 알려주지 않으니 오늘 처음 듣게 됐다”고 밝혔다.

이처럼 중소기업들이 인력과 재정난으로 중처법 시행을 준비하지 못한 상황을 고려해 경영자단체 등은 2년 추가 유예를 호소한다.

대한상공회의소와 한국경제인협회, 한국경영자총협회, 한국무역협회, 한국중견기업연합회는 지난 23일 국회에 모여 “인력과 재정난으로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을 준비하지 못한 상황을 고려해 법률의 적용 유예를 수차례 촉구했지만, 법 시행 나흘을 앞두고 국회에서 법안의 논의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참담하고 안타까운 심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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