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미국 콩코드에서 뉴햄프셔 주민들이 투표를 하고 있는 모습. [AFP] |
[헤럴드경제=김영철 기자]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공화당 대선 후보로 입지를 굳혔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지만 본선에서도 그런 기세가 통할지는 미지수라는 관측이 나온다. 공화당 내 콘크리트 지지자들 덕분에 경선에서 선전하고 있지만 본선 때 접전에서 승부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당내 일부 계층의 표심이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불리하게 돌아간다는 게 전문가들의 얘기다.
24일(현지시간) 치러진 공화당의 뉴햄프셔주 프라이머리(예비경선)에서는 실제로 트럼프 전 대통령과 조 바이든 현 대통령의 재대결이 유력한 본선의 판세를 내다볼 특징적인 표심이 다수 관측됐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뉴햄프셔 프라이머리에서 54% 정도의 지지를 얻어 43% 정도에 그친 유일한 경쟁자 니키 헤일리 전 유엔 대사를 꺾었다. 수치로는 11%포인트 앞선 압승이자 상승세가 확실하지만 세부 하위 항목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불안감을 품을 수 있는 사실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미국 주요 언론과 조사전문업체 에디슨리서치가 실시한 유권자 출구조사에서는 중도층, 고학력층, 고소득층에서 헤일리 전 대사가 선전했다는 점이 공통으로 나타난다. 조사 결과 뉴햄프셔 프라이머리 유권자 가운데 44%가 무당층인데 이들 중 58%가 헤일리 전 대사를 선택했다. 헤일리 전 대사를 찍었다는 이들의 40% 정도는 트럼프 전 대통령에 대한 비호감을 가장 큰 사유로 들었다. 아울러 뉴햄프셔 프라이머리 유권자의 35%가 중도를 자처했는데 이들 중 20%만 트럼프 전 대통령을 찍었다.
이 같은 현상은 일반 투표인 프라이머리보다 당원 영향력을 더 강조해 폐쇄적 성격을 지닌 첫 경선 아이오와 코커스(당원대회)에서도 두드러졌다. 지난 15일 아이오와 코커스에서 무소속 성향을 지닌 것으로 자평하는 유권자 55%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아닌 다른 후보들에게 표를 던졌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전 대통령. [로이터] |
무소속 성향을 지닌 이들을 떠나 공화당의 전통적 뼈대 가운데 하나인 고학력자, 고소득자의 동향도 트럼프 전 대통령의 취약점으로 지목된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뉴햄프셔 프라이머리에서 이들 계층만 따질 때 헤일리 전 대사에게 패배한 셈이다. 헤일리 전 대사가 압승을 거둔 지역은 다트머스대학 근처 고학력 고소득자들이 거주하는 하노버, 라임, 레바논 등 부촌으로 나타났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열성 지지자가 더 집중된 아이오와 코커스에서도 고학력 고소득자들이 많은 지역에서 부진을 노출했다.
문제는 트럼프 전 대통령에 대한 이들 계층의 비호감이 본선에서 적극적 행동으로 이어질 수준으로 강력할 수 있다는 점이다. 뉴욕타임스(NYT)는 헤일리 전 대사 지지자의 40% 정도가 본선에서 바이든 대통령을 선택할 것이라는 주, 전국 단위 여론조사 결과를 소개했다.
무려 91개 혐의에 달하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형사사건도 약점으로 거론된다. 특히 2020년 대선 결과를 뒤집기 위해 의회 폭동을 선동했다는 반란 의혹에 대한 법원 판단은 미국 민주주의의 존립과 직결된 사안이다.
미국 연방대법원은 공직자 반란을 사유로 트럼프 전 대통령의 피선거권을 박탈한 콜로라도주 대법원의 결정을 2월 8일부터 심리하기로 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민주주의 파괴 논란에 비슷한 문제의식을 품은 주들은 연방대법원의 결정을 판단의 준거로 삼기 위해 주시하고 있다.
그는 지난 대선 직전에 성추문을 덮으려고 포르노 배우에서 회삿돈을 준 혐의, 기밀정보를 자택에 빼돌려 유출하고 이에 대한 수사를 방해한 혐의 등으로도 기소됐다. 일부는 대선 전에 유무죄 평결이 나올 수도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전 대통령. [로이터] |
이번 출구조사에서 응답자 가운데 절반 정도가 트럼프 전 대통령이 유죄 평결을 받으면 대통령직이 부적절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미국 현지 언론들은 이 같은 사유를 종합해 트럼프 전 대통령이 본선에서는 비호감의 벽 때문에 경선처럼 승리하기 어려울 수 있다고 내다본다. 공화당의 선거전략가인 척 쿠글린은 로이터 인터뷰에서 “트럼프의 연합세력은 굳어져 예측 가능하지만 대선을 이기기에는 너무 작다”고 지적했다.
미국 대선은 줄곧 민주당과 공화당을 지지하는 주가 대다수 고정된 가운데 양당을 오가는 ‘스윙스테이트’(경합주)에서 승패가 갈린다. 여론조사를 보면 트럼프 전 대통령은 올해 대선에서 경합주가 될 것으로 예상되는 주들에서 바이든 대통령에게 근소하게 앞선다. 이런 상황에서 공화당 내 중도층, 고학력층, 고소득층 등의 반감, 형사사건 판결에 따른 표심 변화 가능성 등은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악재다.
경선을 포기하고 트럼프 전 대통령 지지를 선언한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는 미국 보수 매체 블레이즈TV 인터뷰에서 “레이건(공화당 출신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을 찍던, 평생 보수로 살아온 이들이 트럼프를 다시 못 찍겠다고 한다”며 “이 문제를 해결할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