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헤럴드경제DB} |
[헤럴드경제=안세연 기자] 대법원이 경기도의 ‘다주택자 승진 배제’ 원칙에 제동을 걸었다. 이 원칙은 전임인 이재명 도지사 시절에 도입된 것으로 지금도 일부 완화돼 유지되고 있다. 하지만 대법원은 “투기가 아닌 주택보유현황 자체는 공무원의 청렴성을 실증하는 지표라고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28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2부(주심 대법관 천대엽)는 5급 공무원 A씨가 경기도지사를 상대로 “강등 처분을 취소해달라”며 낸 소송에서 A씨 측 승소 취지로 판단했다. 원심(2심)은 강등 처분이 적법하다고 봤지만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다시 판단하라”며 사건을 수원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
경기도는 2020년 12월, 4급 이상 공무원과 승진 대상자를 상대로 주택보유 현황을 조사했다. 주거용 외 다주택 처분을 권고하고, 인사에 반영하기 위해서였다. 당시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정부의 부동산 정책 불신을 막기 위한 것”이라고 배경을 밝혔다. 실제 다주택을 처분하지 않은 공직자들은 승진하지 못했다.
A씨도 4급 승진 후보자였다. 그는 주택 2채와 오피스텔 분양권 2개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조사에선 주택 2채만 소유하고 있다고 신고했고, 다음해 4급으로 승진했다. A씨의 신고 누락을 뒤늦게 알게 된 경기도는 2021년 8월, A씨를 5급으로 강등했다. 지방공무원법상 성실의무를 위반했다는 이유였다.
강등 조치에 대해 A씨는 반발했다. 소청심사 청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아 법원에 소송을 냈다. A씨 측은 “강등 처분을 취소해달라"며 “주택 투기를 통해 불로소득을 얻는 부정한 행위를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단순히 다주택을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로 징계를 받는 건 위법하다는 취지다.
1심은 A씨의 손을 들어줬다. 1심을 맡은 수원지방법원 4행정부(부장 공현진)는 2022년 4월, A씨의 강등 처분을 취소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1심 재판부는 “강등은 중징계 중 하나로 당사자가 입게 되는 불이익이 커 심각한 비위행위가 있었는지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며 “A씨가 저지른 비위 행위에 대해 강등 처분을 하는 것은 현저히 합리성과 타당성을 잃어 위법하다”고 밝혔다.
2심은 반대로 경기도의 손을 들어줬다. 2심을 맡은 수원고등법원 2행정부(부장 노경필)는 2022년 11월, 강등 처분은 적법하다고 판결했다.
2심 재판부는 “경기도는 고위공직자가 다주택을 보유하는 것을 해소해 부동산 정책에 관한 도민 신뢰를 확보하고자 했다”며 “해당 조치가 관련 법규에 위배되거나, 사회통념상 합리성을 갖추지 못했다고 보기 어려운 이상 A씨는 주택보유 현황을 제대로 밝힐 의무가 있다고 볼 수 있다”고 했다.
이어 “그럼에도 A씨가 주택보유 현황을 거짓으로 진술한 것은 고위공직자로서 준법정신, 도덕성 등을 판단하는 데 영향을 미치는 사항”이라고 판단했다.
판결은 대법원에서 다시 뒤집혔다. 대법원은 A씨의 강등 처분은 위법하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공무원의 주택보유현황 자체는 공무원의 도덕성·청령성 등을 실증하는 지표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며 “법령상 근거 없이 이를 승진임용 싱사에서 일률적인 배제사유로 반영할 수 없다”고 최초로 판단했다.
이어 “경기도가 법령상 근거 없는 주택보유조사를 한 이상 사실과 다르게 답변서를 제출했다는 사정만으로 A씨를 징계한 것은 재량권을 일탈한 것”이라고 판시했다.
아울러 대법원은 4급 공무원으로 승진임용 심사에 반영할 수 있는 요소에 대한 기준을 제시했다.
대법원은 “공무원이 거주와 무관하게 시세차익만을 목적으로 투기행위를 했거나, 부정한 자금으로 부동산을 매수했다면 도덕성·청렴성을 부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지만 단순한 다주택 보유 여부는 이렇게 판단할 수 없다”고 천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