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1일 국회 본회의에서 2024년도 예산안이 통과되고 있다. [연합] |
[헤럴드경제=배문숙 기자]오는 4월 총선을 앞둔 21대 국회에서 입법으로 예비타당성조사(예타)를 면제해 추진하는 사업 규모가 22조원을 웃도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업타당성 분석 없이 강행하는 사업들로, 결국 미래 재정에 상당한 부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예타는 예산 낭비를 막기 위해 기획재정부 장관 주관으로 신규 사업의 타당성을 검증하는 절차다. 예타 면제는 이러한 절차를 건너뛰고 사업의 무조건적인 시행을 담보한 것이다.
28일 정부와 국회 등에 따르면 21대 국회가 예타 면제 조항을 넣어 통과시킨 주요 법안은 '달빛철도 건설을 위한 특별법안'과 '대구경북통합신공항 건설을 위한 특별법안', '가덕도신공항 건설을 위한 특별법안' 등이다.
이들 3개 사업에만 최소 22조1000억원의 국가재정이 투입된다. 가덕도 신공항 사업은 동남권 신공항을 부산 가덕도에 짓는 사업으로 2021년 2월 당시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국회 문턱을 넘었다. 현재 책정된 사업비는 13조4900억원 규모로 정부 재정이 투입될 예정이다. 공항 접근도로와 철도건설에 들어가는 비용 등은 추후 협의를 거쳐 결정된다.
지난주 의결된 달빛철도 특별법은 대구와 광주를 연결하는 철도 사업이다. 헌정사상 최다인 261명이 공동 발의자로 참여하는 등 여야가 합심했다. 단선 기준으로 6조원이 투입될 것으로 보이지만, 수요 조사 등에 따라 사업비가 늘어날 여지도 있다.
지난해 4월 통과된 대구경북신공항 특별법은 대구에 있는 군공항(K2)과 민간공항을 이전해 이른바 TK신공항을 건립하는 사업이다. 재정이 투입되는 부문은 민간공항 이전으로 규모는 2조6000억원이다.
이들 법안은 모두 '사업의 신속하고 원활한 추진을 위해 필요한 경우 예타를 면제한다'는 내용의 특례를 규정했다. 단서를 달아 예타 면제 권한을 기획재정부 장관 등에 뒀지만, '국가가 사업을 시행해야 한다'는 조항 등으로 미뤄볼 때 실질적으로는 예타 면제를 담은 것으로 풀이된다.
그 외에도 예타 면제 조항을 담은 법안들이 줄줄이 대기하는 상황이어서 재정부담은 갈수록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김포·파주 등 인구 50만명 이상인 접경 지역의 교통 건설 사업에 대해 예타를 면제하는 법안(국가재정법 일부개정안)이 대표적이다. 지하철 5호선을 김포까지 연장하는 것 등을 목적으로 한 법안으로 현재 기획재정위원회 경제재정소위에서 가결된 상황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연내에 노선을 확정하고 내년에 즉시 행정절차에 돌입할 수 있도록 '5호선 예타 면제 법안'을 반드시 처리해야 한다"고 밝혔다. 수원군공항 이전 사업 법안도 예타를 면제하는 특례를 규정했다.
재정당국인 기재부는 달빛철도 법안 등을 입법하는 과정에서 예타 면제 조항은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한 바 있다. 사업의 타당성 검증이 필요하고 타 사업과의 형평성을 고려해야 하며 지역균형발전 목적의 사업이라면 현행 규정으로도 면제가 가능하다는 이유였다.
국가재정법에 따르면 공공청사, 교정시설이거나 국가 안보와 관계된 사업, 지역균형발전을 위해 국가 정책적으로 추진이 필요한 사업 등은 예타가 면제된다.
이렇게 적정성 고려 없이 추진되는 사업은 결국 재정에 부담이 된다. 재원이 한정된 상황에서 예타를 건너뛴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다른 사업과 우선 배분 순위를 조정해야 한다.
재원확보를 위해 국채를 발행한다면 고스란히 나랏빚 증가로 이어진다. 올해 말 기준 국가채무는 1195조8000억원으로 국내총생산(GDP) 대비 51.0%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국회 예산정책처는 저출생·고령화 등으로 약 50년 뒤인 2070년에 국가채무가 GDP의 192.6%에 달할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국회 기재위는 검토보고서에서 접경 지역 교통 건설 사업에 대한 예타 면제를 담은 국가재정법 일부개정안에 대해 "예비타당성조사는 예산 낭비를 사전에 방지하고 재정 운용의 효율성을 제고한다는 점에서 예타 면제 범위 확대는 재정건전성에 영향을 끼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