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 난민기구, 이스라엘과 해묵은 갈등…“난민 생명줄”, “분쟁해결 방해”

27일(현지시간) 이집트 라파에서 하마스와 이스라엘 간의 임시 휴전 기간 동안 유엔 구호활동기구(UNRWA) 로고가 표시된 트럭이 가자에서 이집트와 가자 지구 사이의 라파 국경을 넘어 이집트로 건너고 있다. [로이터]

[헤럴드경제=김영철 기자] 가자지구 등지에서 팔레스타인인 난민들을 돕는 유엔 팔레스타인 난민구호기구(UNRWA)의 일부 직원이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에 연루됐다는 의혹에 휩싸이면서 UNRWA의 역사와 이스라엘과의 해묵은 갈등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앞서 이스라엘은 지난해 10월 7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기습 과정에 이 기구의 직원 일부가 연루됐다는 의혹을 제기하며 전쟁 후 활동을 금지하겠다고 밝혔다. 이스라엘의 주요 우방인 미국과 호주·캐나다·영국·독일·이탈리아·네덜란드·스위스·핀란드 등 서방국들은 UNRWA에 대한 지원을 잠정 중단했다.

이에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UNRWA 인력 수만명이 절박한 처지에 몰린 팔레스타인인들을 위해 위험한 분쟁지에서 구호활동을 한다며 극소수 하마스 연루자를 이유로 지원을 중단하는 일은 부당하다고 항변했다.

27일(현지시간) 이스라엘군이 칸유니스 수용소 주민들에게 집을 떠나 남부 가자지구 인근 라파 수용소로 향하라고 말한 후 팔레스타인인들이 이스라엘 탱크를 지나 이동하고 있다. [EPA]

▶UNRWA, 1차 중동전쟁으로 고향 떠난 팔 난민 지원…“필수 생명선”=UNRWA는 1948년 5월14일 유대인들의 이스라엘 건국 선포와 함께 촉발된 1차 중동 전쟁으로 고향을 잃은 팔레스타인인을 지원하기 위해 1949년 설립됐다.

이 기구는 팔레스타인 난민을 “1946년 6월 1일~1948년 5월 15일 팔레스타인을 주거지로 삼다가 1948년 전쟁의 결과로 집과 생계 수단을 모두 잃은 사람”으로 규정하고 있다. UNRWA가 활동을 시작한 1950년에 이 같은 정의에 부합하는 사람은 75만 명이었으며, 현재는 그들의 후손 등 590만 명으로 집계된다.

UNRWA는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와 요르단강 서안, 요르단, 시리아, 레바논 등지에서 1차 의료와 인도적 구호 활동, 교육 업무 등을 수행해왔다. 특히 가자지구에서 가장 큰 고용을 창출하는 시설로 직원 1만3천명 중 대부분은 팔레스타인인이다.

이와 관련, 27일(현지시간)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팔레스타인인과 그 지지자들에게 이 기구는 미래가 결정되지 않은 수백만 명의 난민 후손들에게 남아있는 필수적인 생명선”이라고 설명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 [로이터]

▶이, UNRWA-하마스 연루 의혹으로 연결=UNRWA의 인도적 지원에도 이스라엘은 해당 기구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쟁을 해결하는 데 걸림돌이 된다고 주장한다. 특히 UNRWA가 지원하는 많은 팔레스타인인이 현재 이스라엘 영토에 있는 고향으로 돌아가길 바라지만, 이스라엘은 자국의 유대적 성격이 훼손될 것이라고 우려하며 이를 거부해왔다.

이스라엘은 유엔의 난민 보호 시스템과 별도로 운영되는 UNRWA가 존재한다는 점이 팔레스타인인 난민들이 중동의 다른 지역에 정착하는 것을 방해한다고 보고 있다. UNRWA에 관한 책을 쓴 에이나트 윌프 이스라엘 전 의원은 “UNRWA는 유대인 국가의 존재에 대한 의문을 지속시키는 중심 메커니즘이 됐다”며 UNRWA가 ‘귀환과 복수라는 생각에만 초점을 맞춘 민족주의’를 조성한다고 주장했다.

이스라엘 정부 역시 이 기구가 교육 커리큘럼이 이스라엘 국가의 존재에 대한 반대를 조장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는 UNRWA와 하마스의 관계를 둘러싼 논쟁으로 이어지곤 했다.

그러나 UNRWA는 이 같은 주장을 부인하며 중립성을 유지하고 있음을 강조해왔다. 부적절한 정치 활동을 한 직원을 징계·해고하고, 이스라엘 정부와 직원 목록을 공유하는 등 노력을 한다는 설명이다.

지난해 말에는 하마스가 가자시티에 있는 UNRWA 건물의 연료와 의료장비를 없앴다고 비난했다 반발이 일자 해당 게시물을 내린 바 있다.

유엔법정이 ‘이스라엘 제노사이드’ 경고한 날 의혹 제기=일각에선 이번 의혹 제기와 관련해 지난해 10월 7일 전쟁 발발 이후 악화 일로를 걸은 이스라엘과 유엔의 관계에 주목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이 “하마스의 공격은 진공 상태에서 발생한 것이 아니다. 팔레스타인인들은 56년간 숨 막히는 점령에 시달려왔다”고 언급하자, 이스라엘은 자국 내 유엔 대표부 직원의 비자를 거부하겠다며 강력하게 반발했다.

이 외에도 같은 해 12월 구테흐스 사무총장이 유엔 헌장 99조를 발동해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휴전을 촉구하면서 이스라엘과 다시 충돌했다.

지난 26일에는 이스라엘의 제노사이드(genocide·특정집단 말살) 혐의를 심리 중인 유엔 국제사법재판소(ICJ)가 이스라엘에 제노사이드 방지를 위해 조치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미국 CNN 방송은 “ICJ의 임시조치 명령이 있던 날 UNRWA에 관한 의혹이 나왔다”며 그 시점의 공교로움을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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