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지난 18일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에서 진행된 신격호 창업주 4주기 임직원 추도행사에 참석하고 있다. 임세준 기자 |
[헤럴드경제=김벼리 기자]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바이오 테크놀로지, 메타버스, 수소에너지, 이차전지 소재 등 신성장 영역으로 사업 교체를 추진하고, 부진한 사업은 매각하는 ‘선택과 집중’ 전략을 펼치겠다고 밝혔다.
신 회장은 30일 일본 요미우리신문과 진행한 인터뷰에서 “(예전에는) 호남석유화학(롯데케미칼의 전신) 상장 등 주식 상장과 편의점과 타사 주류 사업 매수 등 인수·합병(M&A)을 통해 사업을 확대했지만, 지금은 방침을 바꿨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그동안 크고 작은 회사 60곳 정도를 매수했지만, 지금은 매수뿐만 아니라 매각도 일부 진행하고 있다”면서 “몇 년을 해도 잘되지 않는 사업은 타사에 부탁하는 것이 종업원에게도 좋지 않을까 생각하며 앞으로도 몇 개를 매각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번 신 회장의 발언은 사업 성과에 따라 부진한 사업을 과감하게 포기하고, 성장 가능성이 높은 사업에 집중하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앞서 롯데그룹은 외식 브랜드 TGIF와 롯데알미늄의 보일러 사업에 이어 일본 롯데리아를 매각했다. 앞으로 글로벌 시장 변화에 따라 사업 효율화를 높이는 작업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업계는 롯데그룹이 전개하는 화학 부문에서 일부 사업을 추가로 정리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지난 15일 파키스탄 PTA(Purified Terephthalic Acid, 고순도테레프탈산) 생산 판매 자회사를 1924억원에 매각하려다가 무산된 사례가 대표적이라는 시각이다.
신 회장은 구체적으로 “4개의 신성장 영역을 정해 신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며 “바이오 테크놀로지와 메타버스, 수소에너지, 이차 전지 소재 등 성장할 것으로 예상되는 사업으로 (사업 방향을) 계속 바꾸고 있다”고 소개했다.
롯데그룹은 미래형 사업 포트폴리오 전환에 속도를 내고 있다. 롯데바이오로직스는 2030년까지 글로벌 톱10 바이오 위탁개발생산(CDMO) 기업으로 성장하는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롯데헬스케어는 건강관리 헬스케어 플랫폼 ‘캐즐’을 확대하고 있다. 롯데정보통신은 최근 미국 CES에서 초실감형 메타버스 플랫폼 ‘칼리버스’ 서비스를 공개했다. 자회사 이브이시스(EVSIS)도 일본에서 완속부터 초급속까지 모든 유형에 대한 인증을 상반기 중 마칠 예정이다.
화학군에서는 배터리 소재 사업에 무게를 싣고 있다. 롯데케미칼은 2030년 매출 7조원을 목표로 삼고 관련 사업을 추진 중이다.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는 글로벌 거점 확대에 속도를 내고 있다. 유통군에서는 국내 저성장 한계를 딛고 글로벌 진출을 확대하고 있다.
AI(인공지능)도 신 회장이 공을 들이는 사업 부문으로 꼽힌다. 신 회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AI 트랜스포메이션을 한발 앞서 준비한다면 새로운 게임체인저가 될 수 있을 것”이라며 “업무 전반에서 AI 수용성을 높이고, ‘생성형 AI’를 비롯해 다양한 부문에 기술 투자를 강화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지난 18일 열린 상반기 VCM(Value Creation Meeting, 옛 사장단회의)에서도 “AI를 단순히 업무 효율화 수단으로 생각하지 말고, 혁신의 관점에서 본원적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방안으로 여겨 달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날 인터뷰에서 롯데의 수장으로 한국과 일본의 사업 환경 차이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신 회장은 “일본과 한국의 비즈니스 환경의 큰 차이는 인재의 유동성에 있다고 생각한다”며 “일본에서 ‘바이오 테크놀로지를 하겠다’고 말해도 타사에서 에이스급 인재를 끌어오기가 매우 어렵지만 한국에서는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동안 일본적 경영을 하고 있어 외부 인재가 적었지만, 지금은 새로운 분야에서 새로운 인재로 해야 한다고 판단해 전문 인재를 적극적으로 채용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신 회장은 지난 2016년 주한미군 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THAAD·사드) 배치에 따른 중국의 롯데 보복과 경영 방침에 대한 입장도 밝혔다. 그는 “중국에 백화점과 슈퍼마켓, 음료와 제과 등 공장이 있었으나 한국 정부 요청으로 주한미군에 용지를 제공했다가 중국이 반발해 철수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아시아 신흥국 중심이었던 해외 사업은 지정학적 문제를 포함해 검토할 예정”이라고 했다.
신 회장은 마지막으로 “과거 매출액으로 ‘아시아 톱10’을 내걸었던 때도 있었지만 조금 문제가 있었다고 생각한다”며 “앞으로는 이익과 고객 만족도도 포함해 생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전했다. 또 “웰빙을 관철해 물질적인 것뿐 아니라 정신적인 것도 포함해 행복을 추구해 나가겠다”며 “이런 방향성으로 롯데를 진정한 글로벌 기업으로 만들고 싶다”는 포부를 내비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