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개 선사 똑같은 운임인데…” 법원, 공정위 처분에 제동 건 이유는? [비즈360]

에버그린의 선박이 운항중인 모습. [에버그린라인 홈페이지 갈무리]

[헤럴드경제=김성우 기자] 국내·외 선사 23개사의 공동행위에 총 962억원의 과징금 처분을 내린 공정거래위원회의 결정에 법원이 제동을 걸고 나섰다. 선사들의 공동행위는 우리 ‘해운법 29조’에 따라서 시장경쟁을 해치는 담합행위로 볼 수 없다는 게 법원의 판단이다.

2일 해운업계에 따르면 전날 서울고등법원 제7행정부는 대만 선사 에버그린이 공정위를 상대로 낸 시정명령 등 취소소송에서 시정명령과 함께 과징금 33억9900만원을 취소하라면서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법원의 1심 재판과 같은 효력을 갖는 공정위 결정의 특성상, 불복 소송 재판은 고등법원에서 진행됐다.

앞서 공정위는 12개 국적선사와 11개 외국적 선사가 한-동남아 수출입항로에서 2003년 12월부터 2018년 12월까지 총 120차례에 걸쳐서 운임을 합의하는 담합행위를 벌였다며, 시정명령과 함께 과징금 총 962억원을 부과했다.

이 가운데 국적선사는▷고려해운(296억4500만원) ▷흥아라인 (180억5600만원) ▷장금상선 (86억2300만원) ▷HMM (36억7000만원) 외국적선사는 ▷완하이 (115억1000만원) ▷TSL (39억9600만원) ▷에버그린 (33억9900만원) ▷양밍 (24억1900만원) 등이다.

이에 에버그린은 단독으로, 12개 국적선사는 총 4개 그룹으로 나뉘어 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총 5건에 달하는 과징금 관련 소송에서 첫 번째 판결에 해당하는 셈이다.

선사들은 해양수산부 지도·감독에 따라 해운법을 준수했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내세웠다. 우리 해운법 29조가 해운사가 ‘화주단체와의 협의, 해양수산부 장관 신고, 자유로운 입·탈퇴 등 요건을 충족할 경우’ 공동행위를 허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에만 부당공동행위로 공정거래법이 적용된다.

여기에 공정위 측은 선사들이 120차례의 운임합의를 하는 과정에서 해수부 장관에게 이를 신고하지 않았고 화주단체와의 사전 협의도 충분히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에 이를 불법적 공동행위라고 주장했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에버그린에 내려진 판결은 이번 5건의 과징금 처분의 판결 중 대표적인 판결에 해당한다”면서 “이후 이와 관련된 재판에서도 해운업계의 입장을 반영한 결과가 나왔으면 한다”고 희망했다.

양창호 한국해운협회 상근부회장도 “해운업계는 그동안 해운법에 의거 지난 40년 동안 위법 사항 없이 공동행위를 이행해 왔는데, 공정위가 이를 무시하고 단지 절차상 흠결을 이유로 부당 공동행위라는 판단을 내렸다”면서 “이번 판결을 계기로 해운업계는 건전한 해운시장 확립과 해운산업 경쟁력 강화를 통해 우리나라 수출입 물류 개선에 더욱 매진하겠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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