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단 한반도에 영구 평화를 확립하는 것은 통일이다. 분단체제에서는 통치권과 군사력이 따로이 갖춰져 있기 때문에 무력 대결의 위험성이 상존한다. 분단체제 극복이나 통일보다 평화 공존이 궁극적 목표라는 둔사는 기득권 유지와 현실 안주의 주장일 뿐이다.
남북한의 통일방안이 가장 수렴된 것은 2000년 6·15남북공동선언이었다. 당시 김대중(DJ) 대통령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은 “남한의 연합제와 북한의 낮은 단계 연방제가 공통성이 있다고 보고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시켜 나가기로 하였다”고 공표했다.
DJ가 대북 포용정책을 처음 펴기 시작한 1998년 한 해 동안 북한은 동해안 잠수정 침투 등 무장간첩 도발을 네차례나 감행해 왔다. 광명성 1호 장거리 로켓을 발사했고 제네바 핵협상이 타결된 후에도 금창리 지하핵시설 의혹을 불러일으켰다. 북한이 실망스런 태도를 보이는데도 DJ는 참을성 있게 일관된 정책 논리를 다듬어 나갔다. 정치군사 면에서 북측의 도발행위가 있어도 정부의 인도주의적 지원과 민간 경제협력을 계속한다는 정경분리 원칙을 세웠다. 동시에 무력도발 불용, 흡수통일 배제, 화해와 교류협력이라는 3대기조를 천명했다.
국내 학계와 언론에서 대북정책도 상호주의와 호혜적 반응에 바탕해야 합리적 정책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이에 DJ는 주는 만큼 반드시 같은 대가를 받아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비대칭적 상호주의’를 내세웠다. 또한 주는 동시에 받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나중에 효과를 볼 수도 있다는 선공후득(先供後得)이리는 정책논리를 제시했다. DJ는 1999년 2월12일 미국 유력지 로스앤젤레스 타임스와 가진 인터뷰에서 대북포용정책을 상세히 설명했다. 그는 “북한이 이중적 행동을 보일 때도 있다”면서 “그러나 북한이 부정적인 행동뿐 아니라 긍정적인 신호도 보이기 때문에 두가지 측면에 대해 분리 대처해야 한다”고 밝혔다. 북한의 긍정적인 태도를 최대한 끌어내면서 포용정책을 시행하겠다는 의지였다.
이같은 바탕 위에서 성사된 6.15 남북정상회담과 공동선언은 국민여론조사에서 해방 후 최고의 국정 지지율을 기록했다. 3대 보수신문 중 하나가 실시한 여론조사도 지지율 86.7%였고 진보신문의 경우 무려 95.7%로 나타났으며 정부당국이 6월19일 실시한 여론조사는 지지율 93.7%였다.
DJ에 앞서 남북정상회담에 합의를 이뤄 낸 지도자는 김영삼(YS) 대통령이었다. YS는 1993년 대통령 취임사와 94년 취임 1주년 기자회견에서 “김일성 주석과 언제 어디서라도 회담을 가질 용의가 있다”고 언명했다. 이에 따라 94년 6월 이홍구 당시 통일부총리(그해 12월 국무총리)와 북한의 대남정책 총책인 김용순 노동당 비서가 판문점에서 만나 ‘남북정상회담 개최를 위한 합의서’를 채택했다. 그러다 그 한달 뒤인 7월 김 주석이 갑자기 사망하는 바람에 YS와의 정상회담은 무산되고 말았다.
YS 이전에 노태우 대통령은 1988년 이홍구 통일원 장관이 입안하고 당시 국회 원내의 여야 정당 대표들인 YS와 DJ가 동의한 한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을 공식 정책으로 정립했다. 그에 앞서 전두환 정부의 대북정책은 정치적 정통성이 취약한 열등감을 반영이라도 하듯 과잉행동으로 비쳐졌다. 실제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는 82년 1월 그 대북정책들에 대해 “어떤 긍정적인 의의를 부여할만한 것이라고 볼 수 없다”고 일축했다.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하고 핵실험을 강행하는 가운데 추진된 2007년 10·4 노무현-김정일 정상선언은 6.25전쟁의 종전선언과 평화협정 논의를 명시했다. 2017년 촛불정부로 출범한 문재인 대통령은 이듬해 4월과 5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연거푸 판문점 정상회담을 가졌다. 그해 9월엔 평양에서 세번째 정상회담을 가졌으며 남한 지도자로는 처음으로 능라도 5·1경기장에서 평양시민 15만여명이 여러차례 기립 박수로 환호하는 가운데 7분에 걸쳐 연설했다. 김정은 위원장은 다음날 백두산 천지에 동행해 간 문 대통령과 남쪽 기자들에게 “제가 사진을 찍어드리면 어떻겠습니까”라고 스스럼 없이 카메라에 손을 내밀었다. 뉴스 속의 이 동영상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잠시 충격을 금치 못했다.
북한의 통일정책 변화는 남한 정부의 정치적 정통성 및 민주화 수준에 따른 민심 동향과 상관관계가 강하다는 것이 전문가 연구결과다. 남쪽 정부와 정상회담을 했거나 추진하기로 합의한 대상은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대통령이었다. 전두환 등 국민 지지가 낮은 정부들과는 일절 정상회담을 추진하지도 않았다.
김정은 위원장은 최근 헌법에 대한민국을 ‘불변의 주적’으로 명기하고 “자주, 평화, 민족대단결이라는 표현을 삭제해야 한다”고 지시했다. 한국은 적대적 교전국이라고 극언했다. 지금 정부의 대북 강경정책 때문이지만 또다른 배경으로 국정 지지율 29%대(자세한 내용은 2월 2일 한국갤럽이나 중앙선관위 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조)가 그들의 오판에 일조한 것 아닌가 크게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한반도 평화의 적은 내부 균열도 그 하나며 국민을 단합시킬 책임은 정부에 있음을 잊어선 안된다.
김재홍 서울미디어대학원대 석좌교수 전 서울디지털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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