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지난해 11월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부당합병·회계부정 관련 1심 결심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 |
[헤럴드경제=박지영 기자]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을 둘러싼 법원의 첫번째 판결이 5일 나온다. 2020년 9월 1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재판에 넘겨진 뒤 1252일, 2020년 10월 22일 첫번째 공판준비기일이 진행된지 1201일 만이다.
3년 3개월의 재판동안 검찰과 삼성은 치열한 법정 공방을 벌였다. 총 106회 공판이 열렸으며 이 회장의 출석 횟수만 95회에 달한다. 삼성측의 주장은 일관됐다.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은 철저히 경영상 목적으로 이 회장의 경영권 승계와는 무관하다는 것이다.
5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25-2부(부장 박정제 지귀연 박정길)는 이날 오후 2시께부터 자본시장과금융투자업에관한법률위반(자본시장법), 주식회사의외부감사에관한법률위반(외부감사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이 회장 등 전·현직 삼성 관계자와 삼정 회계법인 관계자 14명에 대한 1심 선고공판을 진행한다.
재판의 쟁점은 3가지다. ▷삼성물산 주가의 인위적 억제 ▷제일모직 주가 부풀리기 ▷이 회장 경영권 승계를 위한 합병이었는지 여부에 대한 판단이다. 검찰은 삼성그룹이 이 회장 경영 승계를 목적으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시세를 조종하고(자본시장법 위반) 이 과정에서 제일모직 계열사인 삼성바이오로직스의 계열사 삼성바이오에픽스의 회계를 부적절하게 조작(외부감사법 위반)했다고 보고 있다. 제일모직에게 유리한 비율(제일모직 1 : 삼성물산 0.3)로 합병이 진행돼 삼성물산 주주들에게 피해를 입혔다고 판단해 기소했다.
반면 삼성전자는 2015년 삼성물산은 건설경기 침체, 낮은 그룹 지분율로 인한 취약한 경영권으로 성장 동력이 저하된 상황이었다고 주장한다. 오히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은 삼성물산 주주들에게 이득이었다는 뜻이다.
삼성측은 합병으로 삼성물산의 사업 포트폴리오가 다각화되면서 활력을 되찾았다는 입장이다. 2015년 기준 삼성물산은 영업이익의 80% 이상을 건설부문이 차지할 만큼 건설분야에 집중된 기업이었다. 2012년부터 이어진 건설 경기 하락, 국제 유가 하락 등 거시적 환경 변화로 주가는 내리막길을 걷고 있었다. 실제 2014년 말 삼성물산의 미청구 공사금은 2조원에 달했다.
지난해 11월 열린 결심공판에서 삼성전자측은 “삼성물산은 제일모직과 합병할 동기가 분명했다”며 “합병 이후 물산은 패션, 식음, 레저, 바이오까지 사업 포트폴리오를 다각화한 회사로 거듭났다. 특히 바이오 사업은 영업이익률이 2.5배 늘었고 부채비율은 크게 감소했다”고 지적했다.
제일모직의 계열사로 ‘부풀리기’ 의혹의 중심에 있는 삼성바이오로직스(삼성바이오로직스)와 삼성바이오에피스에 대해서도 삼성은 정반대의 입장이다. 이 회장은 삼성그룹의 미래 먹거리로 일찌감치 바이오를 점찍었다. 2011년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설립됐고 이듬해인 2012년 삼성바이오로직스와 미국 바이오젠과 합작한 삼성바이오에피스가 만들어졌다.
검찰은 두곳의 바이오 계열사 기업 가치를 부풀려 제일모직에게 유리한 합병 비율을 산출했다고 주장한다. 특히 바이오젠이 삼성바이오에피스를 절반 가까이 지배할 수 있는 내용의 콜옵션을 숨겼고, 합병 후 종속회사에서 관계회사로 변경해 4조원에 달하는 회계 상 이익을 봤다는 취지다.
반면 삼성은 2015년 들어 삼성바이오에피스의 사업 성과가 가시화하면서 나타난 자연스러운 결과라고 맞선다. 당시 삼성바이오에피스가 개발한 바이오시밀러 2종이 판매승인을 받는 등 수익화가 뚜렷해지면서 바이오젠의 콜옵션 행사 가능성이 높아졌고, 이를 반영해 회계기준을 변경했다는 입장이다. 삼성바이오에피스 나스닥 상장 또한 2014년 6월부터 2015년 12월까지 실제 논의돼 제출 서류, 증권신고서까지 작성했으나 바이오젠의 입장 변화로 무산됐다고 주장한다.
삼성측은 “콜옵션은 바이오 합작회사를 만들 때 기존 기업의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해 다반사로 활용되는 전략이다. 사업 성공 가능성이 객관적으로 확인되면 콜옵션을 행사하고 실패하면 행사하지 않는 것”이라며 “(2015년) 삼성바이오에피스가 수익화 궤도에 오르면서 콜옵션 권리가 실현될 가능성이 높아져 회계 기준을 바꾼 것”이라고 결심공판에서 말했다.
실제 삼성바이오로직스와 삼성바이오에피스는 급성장하고 있다. 삼성바이오에피스는 지난해 연매출 1조 203억원, 영업이익 2054억원을 기록하며 국내 제약·바이오업계에서 9번째로 매출 1조원 클럽에 가입했다. 창립 12년 만에 1조원을 달성한 것도 신기록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 또한 2015년 매출은 913억원에 불과했지만 지난해에는 연결 기준 매출 3조6946억원, 영업이익 1조1137억원을 기록했다.
한편 검찰은 이 회장에 대해 징역 5년 실형과 벌금 5억원을 구형했다. 1심 판결에 따라 삼성그룹의 사법 리스크가 다소 해소되겠지만 대법원까지 재판이 이어질 가능성이 높은만큼, 완전히 리스크가 사라지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