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이 한국 기업이었다면 벤처 발굴 꿈도 못 꿔” 힌국에만 있는 ‘지주사 옥죄기’

미국 캘리포니아 산호세에 위치한 구글 캠퍼스 전경. [게티이미지]

[헤럴드경제=김현일 기자] 미국 구글의 지주회사인 알파벳은 벤처투자사인 구글벤처스와 금융계열사인 구글캐피탈을 통해 그룹 내 신산업 발굴 및 투자를 적극 지원하고 있다.

프랑스 완성차 업체 르노 역시 지주회사가 자동차 부품 자회사는 물론 자동차 금융사까지 보유해 사업 간 시너지를 내고 있다.

이처럼 해외에선 지주회사가 금융사를 보유하는 것이 허용된 반면 우리나라는 금융·보험사 보유가 금지돼 글로벌 스탠다드에서 벗어난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는 이 같은 내용을 포함해 ‘2024년 공정거래 분야 20대 정책과제’를 공정거래위원회에 6일 건의했다고 밝혔다.

한경협에 따르면 회원사들은 지주회사 규제 개선을 시급한 과제로 꼽았다. 현행 공정거래법에선 고객 자금으로 대주주의 지배력을 확장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지주회사의 금융회사 보유’를 금지하고 있다. 한경협은 고객 자금을 수신하지 않는 여신금융사(카드사·캐피탈 등)까지 보유금지 대상에 포함하는 것은 규제 목적성에 배치된다고 지적했다.

구글 지주회사 알파벳은 벤처투자사인 구글벤처스와 금융계열사인 구글캐피탈을 통해 그룹 내 신산업 발굴 및 투자를 지원하고 있다. [한국경제인협회 자료]

해외에선 지주회사가 모든 형태의 금융사를 보유하는 것을 허용하고 있다. 일본의 유통 지주회사 세븐&아이(Seven & I) 홀딩스 산하 세븐뱅크는 계열사 세븐일레븐의 ATM을 은행 점포망처럼 이용해 사용자 편의성을 높이고 인프라 비용을 감축해 전략적 시너지를 내고 있다.

미국 제너럴 일렉트릭(GE) 역시 GE 캐피탈을, 독일 지멘스는 지멘스 파이낸셜 서비스를 계열 여신금융회사로 보유하고 있다. 이를 제품 할부·리스에 활용해 경쟁력을 강화하고 리스·렌탈 등의 서비스 부문으로 진출했다.

한경협은 우리나라 역시 단기적으로는 지주회사가 고객 자금을 수신하지 않는 여신전문금융사를 보유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장기적으로는 글로벌 트렌드에 따라 지주회사의 금융사 보유 금지 원칙을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업집단을 지배하는 회사 또는 총수(자연인)를 ‘동일인’으로 지정하는 동일인 지정제도 역시 기업이 가장 크게 애로를 호소하는 규제다. 동일인 지정제도는 고도 성장정책에 따른 경제력 집중과 시장경쟁 저해 등의 부작용을 방지하기 위해 1986년 도입됐다.

일본 유통 지주회사 세븐&아이(Seven & I) 홀딩스와 프랑스 완성차 업체 르노는 금융사를 통해 계열사 간 시너지를 내고 있다. [한국경제인협회 자료]

경제계는 국가 경제규모가 커지고 글로벌 경쟁이 격화된 현재 기업 경영환경을 고려할 때 한국에만 있는 동일인 지정제도는 이미 도입 취지를 상실했다고 보고 있다.

동일인에게 과도한 책임을 지우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한다. 가령 공정거래법상 기업집단은 매년 계열사를 신고해야 하는데, 단순 자료 누락이나 오기만으로도 동일인(자연인 한정)이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다.

한경협은 “자연인을 동일인으로 지정하는 제도는 폐지하고, 기업집단의 핵심 기업을 동일인으로 지정해달라”고 건의했다.

또한 기업들은 지주회사 등이 아닌 계열사의 투자 제한 규제도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재 일반 지주회사의 기업주도형 벤처 캐피탈(CVC) 투자조합이 투자한 벤처회사의 주식·채권을 지주회사 등이 아닌 계열사가 취득·소유하는 것이 금지된다.

이로 인해 지주회사 등이 아닌 계열사는 사업 시너지가 예상되는 벤처기업이 있더라도 추후 인수가 불가능한 탓에 CVC에 출자를 꺼리게 된다는 것이다. 이는 대기업 자금을 벤처업계로 유도하기 위한 CVC 제도 도입의 취지에도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한경협은 대기업 계열사의 투자 장벽을 제거하기 위해 ‘지주회사 등이 아닌 계열사’도 CVC가 투자한 벤처기업의 인수를 허용할 것을 제안했다.

한국경제인협회는 대기업 공익법인의 계열사 주식에 대한 의결권 제한 규제 개선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사진은 서울 을지로 전경. [헤럴드DB]

기업집단 소속 금융회사 및 공익법인에 대한 의결권 제한 규제 역시 개선 필요성이 제기됐다. 현행 공정거래법은 대기업 소속 금융보험사가 보유한 국내 계열사 주식에 대해 의결권 행사를 금지하고 있다.

대기업집단 소속 금융사들은 핀테크 회사를 인수해도 의결권 행사가 불가능하므로 핀테크 회사 투자를 통한 기술혁신 유인이 크게 떨어진다. 대기업 공익법인도 대주주 지배력을 확장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국내 계열사 주식에 대한 의결권 행사가 원칙적으로 금지됐다.

그러나 공정위 발표에 따르면 공익법인 이사회 구성원 중 특수관계인 비중은 2018년 19.2%에서 2020년 17.1%로 감소했다. 계열사와 내부거래하는 공익법인 수도 같은 기간 100개에서 83개로 줄었다.

미국·일본·캐나다 등 해외 주요 국가에선 공익법인이 보유하고 있는 주식에 대해 의결권을 제한하고 있지 않다. 한경협은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지 않는 공익법인 의결권 제한 규제는 대기업의 사회공헌 활동을 저해하는 장애물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상호 한경협 경제산업본부장은 “그동안 공정거래법은 경쟁 촉진보다 대기업 규제에 치중하면서 우리 기업의 국제 경쟁력을 약화시킨 측면이 있다”며 “경제활력 촉진을 위해 40년이 다 돼가는 대기업집단 규제를 현실과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게 재조정해야 할 때”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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