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도심 오피스 밀집 지역. [헤럴드DB] |
[헤럴드경제=김은희·한영대 기자] #. 2021년 말 카카오페이 임원 8명은 주식매수선택권(스톡옵션)을 통해 취득한 주식 약 900억원어치를 한꺼번에 매도했다. 상장 한 달여 만에 경영진이 주식을 내다 판 소식이 알려지자 주가는 폭락했다. 상장사 임원의 이른바 ‘먹튀(먹고 튀다)’ 패턴은 드문 일이 아니다. 경제개혁연구소가 2013년부터 2022년 8월까지 국내 상장기업 임원의 스톡옵션 행사 동향을 분석한 결과 상장 6개월 내 스톡옵션을 행사한 후 매각한 사례는 33건, 1년 이내 행사 후 매각한 경우는 70건이었고 스톡옵션 행사 후 한 달 내 3만주 이상을 전량 매각한 사례도 20건에 달했다.
스톡옵션의 먹튀 부작용을 막기 위한 대안으로 성과급을 수년 후 주식으로 지급하는 양도제한조건부주식(RSU) 도입이 확대되고 있다. RSU는 임직원 성과를 미래의 주식으로 보상하는 제도다. 일각에선 RSU가 대주주의 경영권 승계 도구로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를 내놓지만 주식 보상 과정과 결과에 대한 투명한 공시가 뒷받침된다면 기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하는 촉매 역할을 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6일 재계에 따르면 2020년 한화그룹을 시작으로 포스코, 두산, 네이버, LS, CJ 등 주요 대기업은 물론 쿠팡, 토스, 위메프, 크래프톤 등이 RSU를 도입해 운영하고 있다. 현재 국내 기업의 RSU 도입률은 약 2%로 미미한 수준이지만 인재 유치와 장기근속, 단기 성과주의 극복 등에서 효용성이 높다는 점이 부각되면서 주요 기업으로 속속 확산되고 있다.
RSU는 정해진 가격에 회사 주식을 살 수 있는 권리를 주는 스톡옵션과 달리 회사가 보유한 자사주를 직접 주는 방식이다. 다만 일정 기간 양도할 수 없기에 즉각적인 수익 실현은 불가능하다. RSU를 받더라도 적게는 3년, 길게는 10년간 주식의 권리를 갖지 못하는 것은 물론 배당금도 받을 수 없다.
RSU의 가치는 주가가 오르면 늘어나고 주가가 내리면 줄어든다. 주가가 내려도 최소한의 보상이 보장되겠지만 주가가 올라야 보상 규모가 커지는 만큼 회사의 장기적인 성장에 기여하도록 하는 동력이 되는 셈이다. 여기에 신주를 발행해 지급하는 것이 아니기에 주주가치가 희석될 우려가 없고 자사주 매입을 통한 주가 안정화까지 기대할 수 있다. 주가 측면에서 보면 회사와 주주, 임직원 모두에게 긍정적인 효과를 줄 수 있는 것이다.
아울러 현금 흐름에 제약이 있는 기업으로서는 재정적 부담 없이 핵심 인재를 확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일정 기간 근속 등의 조건이 붙기 때문에 임직원의 장기근속도 유도할 수 있다.
이처럼 RSU는 혁신적인 장기 보상 제도로 평가되지만 일부에서 대기업 오너 일가의 경영승계 수단으로 전용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일부에서는 RSU가 현행법상 대주주에게 부여할 수 없는 스톡옵션과 달리 대주주에게도 지급할 수 있기 때문에 지배력 강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재계는 이사회의 책임경영 아래 적절한 임직원 보상 체계를 갖추려는 노력을 지배력 강화 수단으로 해석하는 것은 과도하다는 입장이다. RSU 도입 1호 기업인 한화그룹을 보더라도 매년 이사회, 주주총회를 거쳐 RSU 지급을 결정하고 선제적으로 법에 따라 투명하게 공시하고 있다
김승연 한화 회장의 아들 김동관 부회장의 경우 10년 후부터 매년 지급받는 RSU보다 당장 현금 성과급을 받아 지주사격인 ㈜한화의 주식을 매입하는 것이 지분 확보에 유리하다고 업계 관계자들은 설명한다. 실제 김 부회장이 지난 4년간 ㈜한화로부터 받은 RSU는 전체의 0.35% 수준으로 10년을 받아도 1% 정도다.
2020년 ㈜한화와 한화솔루션을 시작으로 현재 한화그룹 상장사 및 비상장사 12곳이 RSU를 운영하고 있다. RSU를 받는 주요 임직원의 경우에는 기존 시행하던 현금 성과급을 받지 못한다. RSU를 부여 받게 되면 대표이사급 핵심임원은 이상은 10년, 전무급은 7년, 기타 주요 임직원은 5년간 의무 보유(vesting) 기간을 거쳐야 한다. 성과급 대신 RSU를 부여 받긴 했지만 적게는 5년 길게는 10년간 본인 소유의 주식도 아니고, 급여 계좌에 추가 입금되지 않는다. 현금 대신 미래 주식으로 받는 만큼 주가가 올라야 5~10년 후 받을 수 있는 보상의 규모가 커지게 된다. 그 기간 동안 회사 가치를 제고하는 데 집중 하라는 얘기다.
RSU는 세제 혜택이 없어 약 50%에 달하는 소득세를 내야 한다. RSU의 가치를 환산해 봐도 ‘10년 뒤 1억’보다는 ‘현재의 1억’이 더 가치 있다. 미래의 주가가 지금과 비슷하다면 물가상승률을 고려할 때 오히려 손해를 볼 수도 있다. 임직원 개인으로서도 현금 성과급이 RSU보다 이득일 수도 있다.
기업들은 RSU 제도 본연의 취지에 주목해 달라고 입을 모은다. RSU가 회사 구성원이 장기 목표에 따라 전략을 수립하고 최선의 의사 결정을 내릴 수 있는 동기를 북돋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세간의 우려를 피하려 다른 임직원과 달리 대주주만 현금 성과급을 지급한다면 역차별 논란이 일어 RSU 취지가 퇴색되고 제도 정착이 어려워질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10년이라는 긴 의무 보유 기간을 제시하고 있다면 지속가능한 사업을 이룩하는 것을 RSU의 제1원칙으로 삼고 있다는 의미로 읽힌다. 이는 장기 보상 제도를 활발하게 활용하는 미국의 기업이 의무 보유 기간을 3년 정도로 규정하고 있다는 점과 비교된다.
경영컨설팅업체 FW쿡에 따르면 미국 시가총액 상위 250개 기업의 69%는 의무 보유 기간을 3년으로 지정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5%가 4년, 4%가 5년이었으며 5년을 초과하는 의무 보유 기간을 가진 기업은 1%에 불과했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대주주가 RSU를 활용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사회 과정을 거쳐야 한다”며 “이사회 의결 사안은 사업 보고서 등을 통해 투명하게 공개되는 만큼 대주주가 RSU를 남용할 수 있다는 일각의 우려는 지나친 해석”이라고 지적했다.
주요 글로벌 빅테크 기업 사이에서 양도제한조건부주식(RSU)이 적극 활용되고 있다. 2022년 기준 미국 S&P 500에 속한 기업 중 70%는 RSU와 같은 조건부 주식 보상 제도를 시행할 정도로 RSU가 해외에서는 이미 검증된 보상 제도라는 평가다.
RSU는 현금 성과급 대신 일정 기간 이후에 주식으로 전환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는 임직원 보상 제도이다. 단기 성과보다 임직원의 책임 경영과 장기 성과 창출을 위해 도입됐다.
미국에서는 마이크로소프트가 2003년 RSU를 처음으로 도입했다. 애플과 구글, 메타, 아마존, 테슬라 등 주요 빅테크 기업들도 RSU를 활용하고 있다. 애플 최고경영자(CEO)인 팀 쿡이 지난해 받은 주식보상 4000만달러(533억원) 중 1000만달러(133억원)는 RSU이다.
201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미국에서는 임직원 보상 제도로 RSU가 아닌 ‘스톡옵션’을 주목했다. 스톡옵션은 성과를 달성한 직원에게 특정 가격에 기업 주식을 취득할 수 있는 제도이다. 주가에 따라 스톡옵션을 아예 행사할 수 없는 등 시간이 흘러 스톡옵션에 대한 단점이 두드러지자 RSU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RSU는 주가에 상관없이 회사 자금으로 자사주를 취득해 임직원에게 나눠준다.
RSU는 일본에서도 주목받고 있다. 상장사 중 RSU 도입 비율이 2021년 기준 31.3%(352개사)에 달한다. 일반적으로 고위 경영진에게 제공되고 최대 5년간 매각을 금지하는 조건을 두고 있다. 박태윤 성균관대 경영대학 교수는 “기존 현금성 위주의 성과급 체계에서는 직원들이 단기 성과만 고려할 수 있다”며 “문제점을 해결하고자 장기적인 성장 동력을 이끌어낼 수 있는 RSU 도입을 고려하는 기업들이 많아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우리나라에서도 RSU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2020년 한화를 시작으로 LS, 두산, 네이버 등이 RSU를 도입하고 있다. 우리나라 기업들은 임원들을 대상으로 RSU를 우선 적용하고 있다. 적용 방식은 기업에 따라 상이하다. LS, 두산, 네이버 등의 임원 성과 보상이 기존 체제에 RSU가 추가됐다면, 한화는 RSU만을 택하고 있다.
지급 시점의 경우 LS, 두산이 ‘3년 후’, 한화는 ‘최대 10년 후’이다.
전문가들은 RSU가 기업의 장기적인 성장에 이바지할 뿐만 아니라 인재 확보에도 도움을 준다고 입을 모은다. 김광현 고려대 경영대학 교수는 지난해 12월 국회에서 열린 ‘주식보상제도 활성화 방안’ 토론회에서 “RSU는 일반적으로 일정 기간이 지나야만 완전히 소유권이 이전되는 만큼 직원들의 장기 재직을 장려하는 효과를 가져다 준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