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이 국가를 상대로 한 민사소송 2심 선고가 열린 6일 오후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이정일(왼쪽부터), 송기호 변호사가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 |
[헤럴드경제=박지영 기자]가습기살균제에 대한 국가의 배상 책임을 인정하는 첫 판결이 나왔다. 화학물질을 허가받은 용도 외로 변경해 사용할 때 국가가 유해성 검증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취지다.
서울고등법원 민사9부(부장 성지용 백숙종 유동균)는 6일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등 5명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국가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던 1심을 뒤집었다. 다만 원고 5명 중 3명에 대해서만 300만~5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사건 화학물질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HMG)이나 염화에톡시에틸구아니딘(PGH)에 대한 ▷역학조사 미실시 ▷사건 가습기살균제에 대한 의약외품 미지정 ▷사건 화학물질 유해성 심사 중 ‘사건 화학물질 유해성 심사’에 대해 국가 책임이 있다고 봤다.
PHMG와 PGH 모두 화학물질 모두 유해성 심사에서 사람이 공기를 통해 ‘흡입’해도 된다고 인정받은 것은 아니다. PHMG가 95% 이상인 신규화학물질은 1996년, PGH는 2003년 정부로부터 유해성 심사를 받았다. PHMG 화학물질 제조 신고서에는 용도로 ‘항균카펫 등에 첨가하는 항균제’가 적혀있다. 취급 시 주의 사항으로 노출 최소화가 언급돼있기도 하다. 하지만 환경부는 관보에 PHMG가 유독물이 해당되지 않는다고 공고했고, PGH에 대해서도 유독물이 아니라고 고시했다.
2심 재판부는 이를 두고 “사건 화학물질에 대해 불충분하게 유해성 심사를 하고 결과를 성급하게 ‘유독물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고시한 다음 이를 10년 가까이 방치했다”며 “현저하게 합리성을 잃어 위법하다”고 했다. 앞선 1심에서는 2003년 PGH 유해성 심사가 법령에 따라 진행됐기 때문에 유해물질로 지정해 관리하지 않은 것이 위법(주의의무 소홀)이라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환경부가 제한된 사용 목적을 기준으로 유해성 심사를 진행하고도 마치 화학물질 자체에 유독성이 없는 것처럼 공고·고시해 혼란을 초래했다고 봤다. 재판부는 “환경부는 음식물 포장재 등 용도로 사용될 것으로 전제로 유독물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심사·평가한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심사된 용도 외로 사용되거나 최종제품에 다량 첨가되는 경우에 대한 심사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해당 물질 자체의 유해성이 충분히 심사·평가된 것도 아니었다”고 지적했다.
이어 “환경부 장관 등은 사건 화학물질에 대해 용도·사용방법 제한 없이 ‘유독물 등에 해당하지 않는다’라고 공표하는 경우 국민 건강에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예견할 가능성이 있었다”고 했다.
다만 원고 5명 중 가습기살균제피해구제법상 구제급여조정금을 상당 액수 지급받은 2명에 대해서는 원고 기각 판결을 내렸다. 나머지 3명에 대한 위자료는 이미 받은 지원금, 구제급여 등을 고려해 정했다고 밝혔다.
피해자를 대리하는 송기호 변호사는 “국가가 단순히 피해자들을 시혜적으로 돕는 것이 아니라 배상해야 하는 법적 책임을 확인했다는 의미가 큰 판결”이라며 “클로로메틸아이소티아졸리논(CMIT) 등 다른 화학성분에 대한 국가 관리·감독 책임이 있는지에 대한 소송도 계속 진행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