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파일럿은 지난해 6월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국제해양방위산업전에서 선박 엔진 관련 업체를 만나 함정용 엔진 개발 추이를 확인하고 국산화 가능성을 취재했다. 자료사진. MADEX2023에 전시된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LM2500 엔진 모형.[프로파일럿팀] |
[헤럴드경제=오상현 기자] 지난해 여름. 부산 벡스코 제1전시장에서는 국제해양방위산업전(MADEX) 2023이 열렸습니다.
해군과 부산광역시, 한국무역협회, 해군발전협회가 공동주최한 MADEX 2023에는 12개국 140여개 국내외 방산업체가 참여해 첨단 함정 무기체계와 함정·해양방위 시스템 등을 전시했는데요.
이 자리에 참석한 방산업체의 전시를 통해 함정용 엔진의 국산화 전망을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이종렬 롤스로이스 한국지사장은 자사의 MT30 엔진을 세계에서 가장 출력 밀도가 높은 함정용 가스터빈이라고 소개했다.[프로파일럿팀] |
롤스로이스 “MT30…기존 가스터빈 2대 몫 담당”
전 세계 함정용 엔진을 양분하고 있는 롤스로이스와 제너럴일렉트릭(GE)이 눈에 들어오는 건 당연했습니다.
롤스로이스 부스에서 만난 이종렬 롤스로이스 한국지사장은 “세계에서 가장 출력 밀도가 높은 함정용 가스터빈”이라며 자사의 MT30엔진을 소개했습니다.
이종렬 지사장은 “기존 전통적인 가스터빈의 경우 20~30㎿의 출력이고 최대 출력이 30㎿인데 MT30은 43㎿의 출력을 발휘한다”며 “기존 가스터빈 2대가 낼 힘을 롤스로이스는 1대로 가능하다”고 자랑했습니다.
이어 “2008년 미 해군의 프리덤 클래스 전투함에 탑재 된 것을 시작으로 줌왈트급과 영국의 퀸엘리자베스급 항공모함, 영국 해군의 Type26 구축함, 호주 해군과 캐나다 해군 등에서 이 엔진을 장착해 운용하고 있다”며 “아시아에서는 한국 해군이 처음으로 대구급 호위함에 주 추진기관으로 탑재됐다”고 말했습니다.
또 “군용함정은 고속으로 회전하는 엔진의 동력을 프로펠러로 전달하려면 저속으로 감속시키는 감속기어가 필요한데 함정의 소음이 대부분 감속기어에서 발생하는만큼 이를 없애는 것은 전투함의 생존성과 직결되는 문제”라며 “엔진의 성능만큼 동력전달체계도 중요하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한국의 경우 대구급 함정부터 적용한 하이브리드 추진체계나 완전전기추진체계를 이용해 소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며 “미국 줌왈트급 구축함과 영국의 퀸엘리자베스급 항공모함의 완전 전기추진체계에는 롤스로이스의 추진체계가 사용된다”고 설명했습니다.
설명을 듣다보니 슬슬 떠오르는 불안감이 있었습니다.
다 좋은 건 알겠는데 가격은 얼마일지, 또 수리나 정비 등 운용유지비용이 과도하게 많이 들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이 지사장은 총수명유지비용 측면에서 강점이 있냐는 질문에 “굉장히 중요한 포인트”라며 “처음 장비를 획득할 때 롤스로이스 장비가 싸다고 말 못 한다”고 솔직하게 얘기했습니다.
하지만 “전체적인 수명주기비용을 봤을 때 큰 이점이 있다”며 “엔진의 경우 10년은 정비할 필요 없이 운용할 수 있는 기술수준을 갖췄다”고 자신있게 대답했습니다.
그는 “한국 뿐 아니라 모든 선진국 해군들이 인력 운용을 최소화할 방안을 찾는다”며 “MT30 엔진의 경우 일주일에 2인시, 즉 2명이 1시간을 정비하거나 1명이 2시간을 정비하면 될 정도”라며 경쟁력 있는 제품이라고 소개했습니다.
영상에는 다 담지 못했지만 솔직히 잘 못 찾아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치 중형 세단을 구매하려고 전시장을 찾았다가 고급 스포츠카에게 마음이 빼앗겨버린 상황 같았습니다.
신재봉 GE파워컨버전 상무는 한국형차기구축함(KDDX)사업에 GE의 통합전기추진체계도 동참할 것이라고 밝혔다.[프로파일럿팀] |
GE “세계 최초 함정용 통합전기추진체계 개발”
마침 한국 해군에 친숙한 브랜드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제너럴일렉트릭, GE의 엔진이 보인겁니다.
한국 해군은 앞서 언급했던 대구급 함정의 롤스로이스를 제외한 대부분의 함정에 GE의 가스터빈이 장착돼 있습니다.
신재봉 GE파워컨버전 아시아태평양 시스템엔지니어링 총괄 상무는 “GE는 전 세계적으로 다양한 해군에서 다수의 함정용 추진체계를 납품하고 있다”며 “세계 최초로 전투함용 하이브리드 전기추진체계와 함정용 통합전기추진체계를 개발한 회사”라고 자랑했습니다.
이어 “영국의 Type23급 호위함에서 시작해 미 해군의 와스프급 LHD 8번 함정이 GE의 하이브리드 전기추진체계를 적용했고 2010년 영국 해군의 Type45형 구축함이 세계 최초로 전투 함정용 통합전기추진체계를 장착했다”며 “추진 전동기와 프로펠러 사이에 아무것도 없는 아주 단순한 구성으로 이뤄져 높은 효율성을 갖고 있고 추진 전동기를 구동하는 장치를 3개로 나눠 설치해 전투 중 하나가 피해를 입더라도 함정이 계속 움직일 수 있어 생존성을 높였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는 “한국 해군도 이같은 통합전기추진체계를 정보함정 2척과 국방과학연구소 연구선에도 적용했다”며 “한국 해군의 한국형차기구축함(KDDX)나 항공모함, 합동화력함 등 차기 사업에도 동참할 계획”이라고 덧붙였습니다.
박철 GE에어로스페이스 해군사업 북아시아 군용엔진사업부 이사는 “GE의 LM2500엔진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가스터빈”이라며 “39개국 해군 약 700척의 함정에서 운용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박 이사는 특히 “한국 해군의 경우 LM2500엔진은 전체 95척 함정에 약 160대의 가스터빈이 운용되고 있고 KDDX에는 출력을 높인 LM2500+G4가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며 “압축기가 열리는 구조로 설계해 터빈 블레이드에 손상이 났을 때 즉각 수리할 수 있다는 장점과 자체 개발한 인클로저로 함정의 정숙성을 기존 대비 60%정도 향상시키고 중량도 약 2.5t 경량화하는 등 높은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박철 GE에어로스페이스 이사는 “한국이 면허생산을 하면서 기술력을 높이고 있다”며 “한국은 엔진 창정비가 가능할 만큼 경쟁력이 있다”고 밝혔다. [프로파일럿팀] |
“엔진산업, 초고도의 기술과 큰 자본 투자해야”
박 이사에게 GE가 생각하는 한국의 엔진산업에 대해 물어봤습니다.
그는 “가스터빈이 초고도의 기술을 요구하고 인프라 측면에서도 큰 자본을 투자해야 되는 산업”이라며 겁을 줬습니다.
하지만 이내 “GE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와 협력하고 있고 한화와 협력하는 중소기업까지 협력을 확대하고 있다”며 면허생산을 통해 기술력을 높이고 있는 우리나라의 기술력을 언급했습니다.
특히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저압터빈 부분을 전량 국내 생산에서 수출까지 하고 있다”며 “이처럼 국내 생산하는 파트너를 보유한 나라가 많지 않다”고 언급했습니다.
그러면서 “GE에서 일하는 한국사람이라 가장 자랑스러운 것은 한국에 GE의 창정비 파트너가 있다는 점”이라며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다른 나라에 있는 파트너 대비, 충분히 경쟁력 있는 기업”이라고 치켜세웠습니다.
실제 MADEX 2023 GE 전시장에 창정비 가능한 파트너국가를 표시한 지도를 보니 태평양에서는 한국과 일본, 뉴질랜드가 있었고 나머지는 인도와 독일, 스페인, 이탈리아, 튀르키예, 그리고 미국에 포진해있었습니다.
미국을 제외하면 전 세계 8개 나라 안에 들 정도의 기술력을 갖췄다는 것을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아 내심 흐뭇했습니다.
황정록 STX엔진 특수해상팀장은 “엔진을 자체적으로 개발할 수 있는 기반기술은 축적돼 있다"며 “정부에서 엔진 국산화 정책이나 수출지원책을 보다 적극적으로 펼친다면 좋은 시너지를 낼 것"이라고 기대했다.[프로파일럿팀] |
한화·STX “점진적 영역확장…정책지원 뒤따라야”
이런 칭찬에 비해 한화에어로스페이스 관계자의 발언은 좀 조심스럽게 느껴졌습니다.
신광수 한화에어로스페이스 과장은 “기술은 충분히 많이 성숙되고 있다”며 “무인기 엔진이나 순항미사일 엔진은 이미 국내 개발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항공기나 함정용 엔진은 아직까지 GE나 롤스로이스가 신뢰성이 있기 때문에 선택되고 있다”며 “산업에 진입하기 어렵지만 작은 엔진부터 차근차근 로드맵에 따라 사업 영역을 확대해 나가고 있는 과정”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디젤엔진의 강자 STX엔진의 상황은 어떨까요?
황정록 STX엔진 특수사업본부 특수해상팀장은 “해상엔진의 경우 50% 정도의 국산화 수준을 유지하고 있고 육상엔진은 부품의 90% 이상을 국산화하고 있다”며 “특히 해상엔진은 기계가공과 조립, 시운전 기술, 창정비 능력 등은 원 제작사인 MTU 보다 더 뛰어난 기술수준”이라고 자부했습니다.
황 팀장은 “해군 함정용 디젤엔진은 1980년대부터 기술협력생산을 해왔고 209급 잠수함의 창정비 기술과 214급 잠수함 엔진을 일부 국산화해 납품했다”며 “엔진을 자체적으로 개발할 수 있는 기반기술은 축적돼 있다”고 자신있게 말했습니다.
다만 “엔진을 개발하는데 막대한 비용과 상당한 기간이 필요하다”며 “해상쪽 엔진은 시장의 불확실성이 큰 만큼 시장이 담보돼야 한다”는 단서를 달았습니다.
그러면서 “지금도 정부가 국산화 정책이나 수출 지원정책을 펼치고 있지만 보다 적극적인 지원과 기업의 축적된 기술이 만난다면 좋은 시너지효과를 예상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프로파일럿=기자/진행 오상현 / PD 박정은, 우원희, 김정률, 김성근 / 디자인·CG 이윤지 / 제작책임 민상식 / 운영책임 홍승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