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현지시간) 윌리엄 영국 왕세자가 런던 에어 앰뷸런스 자선 갈라 디너에 참석한 모습. [AP] |
[헤럴드경제=김영철 기자] 찰스 3세 영국 국왕이 왕위에 오른 지 1년 5개월 만에 암 진단을 받으면서 왕위 계승 1순위인 윌리엄 왕세자가 다시금 주목 받고 있다. 영국 왕실은 찰스 3세가 서류 업무 등 헌법상 주어진 임무를 계속 수행할 것이라고 밝혔지만 올해로 75세인 고령이고 그가 암 투병에 집중해야 하는 만큼 후계자인 윌리엄 왕세자가 국왕의 일부 업무를 대행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지난 6일(현지시간)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찰스 3세의 암 진단으로 윌리엄 왕세자에게 스포트라이트가 쏠리고 있다”면서 “윌리엄 왕세자가 이제 영국 왕실의 ‘얼굴’이 되는 임무를 맡게 됐다”고 보도했다.
지난해 11월 영국 왕실의 윌리엄 왕세자와 케이트 미들턴 왕세자빈이 영국 런던의 호스 가드 광장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부부의 국빈 방문 환영식에 참석한 모습. [AP] |
그동안 부인 케이트 미들턴 왕세자빈이 복부 수술을 받은 뒤 가족을 돌봐온 윌리엄 왕세자는 찰스 3세의 암 진단 발표 후 왕실 업무에 즉시 복귀했다.
윌리엄 왕세자는 이날 자선단체 연례 기금 모금 행사장도 찾았다. 다음날인 7일에는 왕실 공군 제복을 입고 국가와 지역사회를 위해 봉사한 사람들에게 상과 메달을 수여하는 행사에 참석했다.
WSJ은 “후계자인 윌리엄 왕세자의 복귀는 왕실에 의해 면밀하게 연출된 발표(찰스 3세 암 진단)의 일부”라고 분석했다.
영국 일간 데일리 텔레그래프에 따르면 찰스 3세는 지난해에만 425건의 왕실 행사에 참석했다.
지난 1991년 캐나다 나이아가라 폭포를 찾은 영국의 고(故) 다이애나와 윌리엄 왕세자(가운데), 해리 왕자. 다이애나 왕세자비는 윌리엄 왕세손이 15살이던 1997년 사망했다. [AP] |
어머니 고(故) 다이애나비의 장남인 윌리엄 왕세자는 일반인인 미들턴 왕세자빈과 결혼한 뒤 인기가 치솟았다. 여론조사에 따르면 윌리엄 왕세자는 왕실 가족 중 가장 인기 있는 인물로 꼽힌다. 왕실과 불화 끝에 미국으로 이주한 동생 해리 왕자와 달리 왕실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왕실 업무를 담당하는 왕실 구성원은 윌리엄 왕세자를 포함해 11명이다. 이들 중 절반 이상이 75세 이상 고령이다. 올해 41세인 윌리엄 왕세자는 이들 중 가장 나이가 어리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찰스 3세의 암 진단이 “사망(엘리자베스 2세 여왕과 남편 필립공), 스캔들(앤드루 왕자), 자진 망명(해리 왕자 부부), 다른 건강 문제(캐서린 왕세자빈)로 인해 위상이 약화된 왕실에 가해진 타격”이라면서 찰스 3세의 병환으로 “가장 큰 부담이 윌리엄 왕세자에게 돌아갈 것 같다”고 분석했다.
지난 2022년 9월 영국 윈저 성 밖에서 영국 윌리엄 왕세자와 해리 왕자가 고인이 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을 위한 헌화를 한 뒤 서로 바라보는 모습. [AP] |
찰스 3세의 차남인 해리 왕자의 역할에 대해서도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그는 미국 배우 출신 메건 마클과 결혼한 뒤 왕실과 결별하고 이후 자서전 출간 등을 통해 왕실에 대한 공격을 이어갔지만, 찰스 3세의 암 진단 소식을 듣고선 바로 영국으로 돌아왔다.
일각에선 이번 왕실의 위기를 계기로 가족 간의 화해 가능성을 점치기도 했지만 해리 왕자는 윌리엄 왕세자와 만나지 않고 런던을 방문한 지 약 24시간 만에 자신이 머물던 미국으로 돌아간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국왕의 런던 거처인 클래런스 하우스에서 약 30∼40분간 아버지를 만났고, 왕실 거처가 아닌 외부 호텔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이들 형제의 관계는 지난 2020년 해리 왕자가 부인 메건 마클과 함께 왕실을 떠나면서 악화됐다. 이후 해리 왕자는 2022년 넷플릭스 다큐멘터리에서 윌리엄 왕세자의 공보실이 메건에 대한 부정적인 이야기를 퍼뜨려 불화가 심화했다고 주장해 두 형제의 관계가 더욱 멀어졌다.
해리 왕자는 지난해 1월 아버지와 형을 비난하는 내용이 담긴 자서전 ‘스페어’를 발간하면서 형제의 관계는 골이 더욱 깊어졌다. 같은 해 5월 아버지의 대관식 참석 당시에 해리 왕자는 윌리엄 왕세자보다 두 줄 뒤에 앉도록 자리를 배정 받기도 했다.
왕실 전기 작가인 샐리 베델 스미스는 “찰스 3세는 가족(관계)을 회복하고 싶어하는 마음을 갖고 있는 듯 하다”면서도 왕실 내부의 균열이 치유되려면 일회성 방문 이상의 노력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AP는 “두 형제의 모습은 ‘의무를 다하는(dutiful) 윌리엄과 떠나버리는(flyaway) 해리’의 모습을 비추는 영국 대중매체의 소재거리가 됐다”며 “두 사람은 감정적·물리적으로 대양을 사이에 둔 거리만큼 멀고, 찰스 3세를 만나기 위한 해리 왕자의 방문은 윌리엄 왕세자와의 화해로 이어지지 못했다”고 전했다.
지난해 9월 영국 국왕 찰스 3세가 파리 개선문에서 열린 기념식에 참석한 모습. [AP] |
한편 국왕의 암 진단 사실을 공개한 방식을 두고도 논란이 일고 있다.
앞서 찰스 3세는 지난주 암 진단을 받은 뒤 윌리엄 왕세자 등 아들들과 형제들에게 먼저 이를 알렸다. 이후 왕실은 리시 수낵 영국 총리와 영연방 국가 원수들에게 국왕의 암 진단 사실을 전했고 대중에게도 공개했다.
왕실은 찰스 3세가 추측을 막기 위해 암 진단 사실을 공개하기로 했다고 전했지만, 암의 종류나 단계 등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다.
NYT는 암 진단 사실을 공개하기로 한 찰스 3세의 결정이 좋은 의도였을 수 있지만 일부 사실만 발표하고 나머지 정보는 공개하지 않기로 한 왕실의 결정은 ‘커튼을 반쯤 걷어낸 것’과 같아서 오히려 더 많은 의문과 추측을 불러일으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NYT는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나 다른 역대 영국 국왕보다 국왕의 건강 상태에 대한 정보를 더 많이 공개한 것이 역설적으로 갖은 추측에 불을 지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