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함영훈 기자] 제례의 전통을 지켜가던 종가들도 현대적 생활패턴과 직장인들의 노동력 재생산에 기여하기 위해 제사 시간을 합리적으로 변경하는 등 변화를 시도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10일 한국국학진흥원에 따르면, 설 명절 연휴를 앞두고 조상 제사의 변화 양상을 살펴보기 위해 안동지역 40개 종가에 대한 조사를 실시한 결과 제사 지내는 시간대를 밤 11~12시에 지내다, 40개 종가 모두 저녁 7~9시로 변경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른 저녁으로 시간을 변경하자 사람들의 부담감이 훨씬 줄어들었다는 의견이 대다수였다. 또 해가 늦게 지는 여름에는 저녁 8시 이후가 적합하고, 해가 일찍 지는 겨울철이라면 저녁 7시 전후가 무난하다는 의견도 있었다.
상 차림도 크게 간소해졌다. 물론 상 차림은 조선시대에도 퇴계이황 종가들에서 간소하게했고, 오늘날, 경건함과 존경심, 건강성을 저해하지 않는 범위내에서 다양한 음식들이 첨삭되었다.
종가 설 차례상 [노송정 종택, 한국국학진흥원 제공] |
제사시간의 변화 뿐 만 아니라, 부부의 기제사를 합쳐서 지내는 합사(合祀) 방식도 등장했다. 기제사는 고인이 돌아가신 날을 기준으로 각각 지내는데, 남편의 기일에 부부를 함께 모시고 부인의 제사는 생략하는 방식이다.
이는 잦은 제사로 인한 경제적·시간적 부담을 줄이기 위한 것으로, 조사 결과 40개 종가 가운데 약 90%에 달하는 35개 종가에서 합사 형태로 바꾼 것으로 밝혀졌다.
다만 합사를 할때 어머니 기일을 기준할지, 아버지를 기준할지는 후손들이 협의해 결정한다면 양성평등이라는 시대정신 흐름에 맞겠다.
4대봉사(고조부모까지 제사 지냄)를 3대봉사, 2대봉사로 바꾼 사례도 11개 종가인데, 이 가운데 10개 종가가 조부모까지의 2대봉사로 변경했다.
이에 대해 종손들은 ”조부모는 생전에 뵌 적이 있어 친밀감이 깊다“며, 변화 내용을 결정할 때 대면 여부를 기준으로 삼았다고 했다. 한편 특정 공휴일을 정해 4대조까지 여덟 분의 조상을 함께 모시고 제사를 올리는 종가도 3곳으로 나타났다.
‘시례(時禮)’라는 말이 있다. ‘시대 상황에 적합한 예법’이라는 뜻이다. 조상 제사의 지침을 마련한 ‘주자가례’와 조선의 예학자들도 제사는 주어진 상황에 맞게 수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했다.
한국국학진흥원은 “조상 제사의 본질은 조상을 기억하고 추모하는 마음”이라며 “환경에 따라 변화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고, 바람직한 조상 제사는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정성을 다하는 것에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