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가톨릭 신부도 동성 커플에 축복 기도

명동성당 미사 장면 [천주교 서울대교구 제공]

[헤럴드경제=신소연 기자]프란치스코 교황이 최근 동성 커플에 대한 '축복'을 공식 승인한 가운데 한국에서도 동성 커플을 위한 가톨릭 사제의 축복 기도가 이뤄진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주목된다.

13일 성소수자 인권 증진이 목표인 비영리단체 ‘가톨릭 앨라이 아르쿠스(이하 아르쿠스)’에 따르면, 글라렛 선교 수도회 소속 이승복 신부는 지난달 20일 국내에서 여성으로 이뤄진 커플 두 쌍을 위한 축복 기도를 올렸다.

축복 기도를 받은 이들은 2013년 캐나다에서 동성 결혼한 크리스(활동명, 이하 동일)·아리 씨와 내년 미국에서 결혼할 계획인 커플 유연·윤해 씨다. 크리스 씨는 아르쿠스의 공동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이 신부는 성소수자를 돌보는 것으로 유명한 미국 예수회 소속 제임스 마틴 신부가 동성 커플을 축복할 때 사용한 기도문을 인용해 "주님께서는 이들에게 당신 얼굴을 비추시고 이들에게 은총을 베푸소서"라고 이들의 행복을 기원했다.

이승복 신부는 "성소수자들을 비롯해 우리 모두가 하느님의 사랑받는 자녀"라며 "하느님께서는 모든 존재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시며, 주님의 축복에서 그 어떤 이도 배제되지 않는다"는 입장을 아르쿠스를 통해 밝혔다.

앞서 교황청 신앙교리성은 지난해 12월 18일(현지시간) '간청하는 믿음(Fiducia supplicans)'이라는 제목의 교리 선언문에서 동성 커플이 원한다면 가톨릭 사제가 이들을 축복해도 된다고 밝혔고,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 선언문을 공식 승인했다.

당초 교황청은 동성 결합은 이성간 결혼만을 인정하는 교회의 교리를 훼손하기 때문에 축복할 수 없다고 지난 2021년 밝힌 바 있다. 하지만 2년 만에 입장을 변경했다.

다만 새로운 선언문은 "(동성커플) 축복의 형식이 혼인성사의 정식 축복과 혼동을 유발하지 않도록 교회가 이를 의식으로 규정하지 말아야 한다"고 선을 그었다. 교황청은 수 세기 동안 "결혼은 남녀 간 불가분의 결합"이라며 동성 결혼에 반대해 왔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역시 교황청의 선언에 대해 "성과 결혼에 대한 교회의 전통적인 가르침을 변경하거나 완화하는 것이 아니라, 그동안 '가톨릭 전례 행위'의 맥락에서 이해되어 온 '축복' 행위의 개념을 더 확장하는 선언"이라고 해석했다.

이 신부의 축복 기도에 대해선 "커플 자체에 대한 축복이 아니라, 동성 결합을 이루고 있는 이들 개개인에게 하느님께서 복을 내려주시기를 청하는 사제 한 개인의 사목적 축복 행위"라고 일축했다.

Print Friend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