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약품그룹(이하 한미그룹)과 OCI그룹 통합에 맞서 고(故) 임성기 한미그룹 창업주의 장·차남이 돌연 경영복귀를 선언하며 제동에 나선 가운데, 한미그룹은 “사익을 위해 한미를 이용하지 말라”고 공개적으로 반박했다. 특히 장남이 개인 사업에 따른 부채 위기 및 이자 부담에 몰린 상황에서 갑자기 한미그룹 경영에 나서겠다고 밝혀 그 저의가 의심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지난 13일 임종윤 한미약품 사장과 임종훈 한미정밀화학 대표는 한미사이언스에 내달 개최 예정인 정기주주총회에서 자신들을 포함한 새 이사 후보 6명의 선임안건을 상정하는 내용을 담은 주주제안권을 행사했다고 밝혔다. 지주사인 한미사이언스 이사회를 장악해 그룹 통합을 막고 경영에 복귀하겠다는 의도다.
이에 대해 한미그룹-OCI 통합 관련 딜에 정통한 관계자는 14일 헤럴드경제에 “(장·차남의) ‘경영 복귀’는 의미가 없다”며 “그간 못나오게 막은 적도 없는데 몇 년간 본인이 나오지 않다가 갑자기 경영에 복귀하겠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이 분들이 지금까지 회사에 나오지도 않다가 갑자기 본인들이 경영을 하겠다고 하면 누가 납득을 하겠나”며 “‘경영권 분쟁’이라는 표현도 사실은 성립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한미그룹 역시 입장 자료에서 “(임종윤 사장이) 지난 10년간 한미에 거의 출근하지 않았고, 본인이 사내이사로 재임하는 한미약품 이사회에도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앞서 한미그룹은 5407억원의 상속세 재원을 마련하고 신약개발 등 미래 투자 등을 위해 OCI그룹과 통합을 결정했다. 통합지주사를 만들어 각자 대표 체제로 공동경영을 하는 그림이다. 이를 위해 OCI홀딩스가 한미사이언스 지분 27.0%(구주 및 현물출자 18.6%, 신주발행 8.4%)를, 창업주의 장녀 임주현 한미약품 사장 등 한미사이언스 주요 주주가 OCI홀딩스의 지분 10.4%를 취득키로 했다. 이에 장·차남이 반발하며 신주발행금지 가처분소송을 신청한 상태다.
한미그룹은 임종윤 사장이 이번 딜을 반대하는 이유가 분쟁 상황을 만들어 인위적으로 주가를 끌어올리고 이를 통해 본인의 다중채무를 해결하기 위한 것으로 보고 있다.
한미그룹에 따르면, 임종윤 사장은 창업주 가족들에게 부과된 5407억원의 상속세 중 가장 적은 금액인 352억원만 납부한 상태다. 또, 현재 임종윤 사장이 보유한 한미사이언스 주식 693만5029주 대부분이 주식 담보 대출에 사용됐으며, 임종윤 사장의 직계 가족들이 보유한 154만3578주 역시 추가 담보로 활용하고 있다. 이에 따른 금융권 차입금만 1730억원에 달해 연간 이자 비용만 100억원에 육박한다는 지적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실질적으로 장남의 자금 상황이 매우 좋지 않은 것으로 안다”며 “그간 대주주 일가가 주식을 팔지 못한 이유 중 하나도 주가가 떨어지면 주식 대부분이 담보 대출로 잡혀있는 장남을 걱정해왔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임종윤 사장이 통합에 반대하며 상속세 재원마련을 위해 본인이 최대 주주인 DX&VX와 본인의 개인회사인 코리그룹을 활용해야 한다고 제안했지만 이 역시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평가가 우세하다. 업계에서는 코리그룹의 경우 상당수의 계열사가 자본잠식 상태인 것으로 보고 있다. 가족 중 임 사장이 상속세를 가장 적게 낸 것도 코리그룹의 부실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다.
한미그룹 역시 DX&VX에 대해 “사실상 내부거래를 통한 착시 매출이 많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며 “2022년 DX&VX 매출액 322억원 중 상당 부분이 코리컴퍼니 등 임 사장 개인 회사를 통해 발생시킨 실적”이라고 지적했다. 차남이 이끌어온 한미헬스케어 역시 지난 2022년 한미사이언스 합병 당시 부채가 1300억원대에 달했다.
장·차남이 제기한 가처분소송의 인용 가능성도 낮게 전망되지만, 가처분이 인용되더라도 OCI홀딩스와의 통합은 결국은 수순대로 진행될 것이라는 데 무게가 실린다. 이번 통합 딜에 정통한 관계자는 “만약에 가처분이 인용되면 구주를 매각하고 일반 주주 배정을 하게 되는데, 현재 송영숙 회장 등 대주주와 재단 측은 동원 가능한 자금이 없고 일반 주주들이 들어올 수도 없는 만큼 OCI가 송 회장의 지분을 사면 된다”며 “결론은 똑같은데 시간만 길어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창업주의 부인인 송 회장은 본인이 손해를 보더라도 남편이 일군 회사를 해외기업 등에 빼앗기지 않고 지키겠다는 의지가 워낙 강하다”며 “상속세 해결 외에도 회사를 위해 오래 일해 온 능력있는 R&D 인력을 뺏기지 않고 신약 개발에 집중하기 위해서는 규모의 경제 달성이 필요한데 그런 면에서 OCI그룹이 최적의 파트너”라고 말했다. 이를 통해 국내 제약 기업을 대기업 반열에 올려 경쟁력을 더욱 강화하겠다는 복안이다.
이우현 OCI홀딩스 회장 역시 지난 7일 실적발표 컨퍼런스콜에서 “OCI는 매출의 80%가 해외에서 나오는 회사”라며 “한미사이언스의 좋은 포트폴리오가 해외시장에 적극 진출할 수 있도록 길잡이 노릇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윤희·손인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