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상하이 [EPA] |
[헤럴드경제=정목희 기자] 중국 당국이 정책적으로 국영기업을 밀어주면서 상대적으로 중국에 진출한 외국기업들의 경쟁력이 약화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15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최근 몇 년 간 중국 경제에서 외국 기업들의 비중과 관련성, 수익성이 줄어들었고 중소 규모 외국기업을 중심으로 중국 사업 지속 여부에 대한 고민이 커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러면서 중국 당국의 국영기업 위주의 지원책이 외국기업들과의 격차를 벌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이전 미·중 간 무역갈등 등 지정학적 분쟁이 시작되면서 이같은 불균형의 조짐은 이미 나타난 것으로 분석된다. 2018년 외국 기업의 생산량이 4.8% 증가한 가운데 국영기업의 생산량은 6.2% 증가해 2013년 이후 처음으로 국영기업이 외국기업을 따라잡았다.
지난해 중국은 5.2%의 경제 성장률을 달성했지만 주중 외국 기업들의 산업 생산은 전년 대비 1.4% 증가하는 데 그쳤다. 반면 국영기업은 5% 성장했다.
중국에서 외국인 투자 수혜 지역 중 하나인 장쑤성에서 작년 외국기업의 산업 생산은 전년보다 0.8% 늘어나는 데 그쳤지만, 현지 국영기업은 6.4% 증가했다.
심지어 ‘경제 수도’ 상하이에서는 작년 외국 기업의 산업 생산이 5.4% 감소했는데, 반대로 이 지역 국영기업의 산업 생산은 5.3% 늘어 대조를 이뤘다. 또 ‘제조 허브’ 광둥성에서는 작년 1∼11월 외국 기업의 산업 생산이 1.7% 줄었으나 이 지역 국영기업은 7.3% 증가했다.
SCMP는 “기술과 경영 노하우 전수를 통해 중국의 개발 붐에 없어서는 안 됐던 외국 기업들이 이제는 중국 경제 주변부에서 점점 더 중요하지 않은 분야가 돼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신문은 “오늘날 많은 외국기업은 국영기업들에 비해 중국 경제 회복에서 상대적으로 뒤처지고 있다”며 “외국기업들이 중국 당국의 국가안보에 대한 통제 강화에 더욱 취약해진 가운데 국영기업들은 더욱 경쟁력을 키웠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이런 상황에서 외국 기업들은 국영기업의 성장 속 자신들이 얼마나 더 소외될지 뿐만 아니라 근본적으로 더욱 내향적으로 변한 중국이 과연 여전히 자신들의 투자를 환영하거나 필요로 하는지 의문을 품게 됐다”고 지적했다.
상하이 중국유럽국제공상학원(CEIBS)의 주톈 교수는 SCMP에 “외국기업이 국영기업에 밀리는 것은 엄청나게 다른 정책 효과 탓일 수 있다”며 “일부 정책은 다른 이들을 해치며 국영기업에 혜택을 준다”고 짚었다.
특히 작년 한 해 동안 중소 규모의 외국 기업들이 중국 경제의 부진한 회복과 지정학적 복잡성 속에서 성장이 둔화했다.
미국에 본사를 둔 사이버보안 회사 트렌드 마이크로는 작년 11월 중국 사업을 철수하기로 하면서 70명의 직원을 정리해고했다. 이 회사의 한 직원은 중국 소셜미디어 웨이보에 “대기업과 정부 기구들이 중국산 제품과 안티바이러스 소프트웨어를 선호하면서 매출이 떨어지자 우리는 나가라는 말을 들었다”고 썼다.
베이징대 알렉스 마 부교수는 SCMP에 “코로나19 팬데믹과 그 여파, 중국을 궁지로 몰아넣으려는 서방의 기술 전쟁 속에서 성장을 강화해야 하는 중국은 국가안보 위협을 물리치고 통제를 공고히 하기 위해 국영기업에 더 투자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최근 몇 년간 논란이 되고 있는 ‘국영 분야 발전과 민간 경제 후퇴’는 외국기업들에 강력한 파급 효과를 가져왔다”고 덧붙였다.
글로벌 물류회사 JAS의 마크로 시바르디 중국 CEO는 코로나19 이전보다 최근 몇 년간 주중 외국기업들이 훨씬 더 많은 도전과 복잡한 비즈니스 환경을 경험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중국을 기회라고 여기는 전략에 계속해서 재평가가 이뤄지고 있다”며 “중국의 성장률은 여전히 상대적으로 높지만 과거보다는 낮은 뉴노멀로 진입했다. 소비, 부동산 시장, 주식 시장, 무역의 역풍은 줄어들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SCMP는 “주중 외국 상공회의소들에 따르면 지난 수년간 중국 당국은 고상한 약속에도 불구하고 외국 기업들이 직면한 고질적인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별 진전을 이루지 못했다”며 “외국 기업들은 국가보안법, 데이터보안법, 국경 간 데이터 이동, 시장접근 장벽, 정책 예측 불가능성, 법률 집행 및 해석의 지역적 편차 등에 시달려왔다”고 전했다.
이어 “반면 중국의 첨단기술 자립 노력, 더욱 더 내향적인 정책 톤, 국가안보 강조 등은 외국 기업들의 정서를 약화시켰다”고 덧붙였다.
주중 유럽상공회의소는 SCMP에 “대기업을 중심으로 외국 기업들은 여전히 중국에 투자할 것”이라면서도 “그러나 중소 규모 외국 기업은 좀 더 위험을 피하려 하고 다각화가 더 나은지 고려하고 있다. 여러 중소기업이 중국을 떠났지만 들어오는 기업은 많지 않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