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의동(가운데)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이 1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고금리 위기 극복과 신산업 전환을 위한 맞춤형 기업금융 지원방안 민당정협의회’에 참석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이상섭 기자 |
[헤럴드경제=강승연 기자] 고금리와 산업구조 전환으로 애로를 겪는 중소·중견기업에 민관 합동으로 76조원을 지원하기로 한 이번 대책은 성장의 불씨를 되살릴 ‘골든타임’을 놓쳐선 안 된다는 판단이 깔려있다.
정부와 정책금융기관을 중심으로 이뤄지던 기업금융 지원이 민간으로 확산될 수 있도록 제도적 기반을 마련해 은행의 지속적 참여를 유도하는 것도 핵심 포인트다.
금융위원회가 15일 발표한 ‘맞춤형 기업금융 지원방안’은 중소·중견기업에 ‘75조9000억원+α’를 지원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대상별로 첨단산업기업 20조원, 중견기업 15조원, 중소기업 40조6000억원을 투입하며, 1~1.5%포인트의 대출금리 인하 효과를 유도한다. 고금리·고물가 등 어려운 거시 경제상황에 대응하면서 미래 먹거리 확보 지원을 통해 글로벌 경쟁력을 유지하겠다는 복안이다.
실제 중소·중견기업들은 2022년 이후 지속된 금리상승으로 자금상황이 어려워졌다. 제조업 기업 대출 증가액 중 대출 원리금 상환을 위한 운영자금 대출 비중이 2021년 14.6%에서 지난해 1~3분기 65.3%까지 치솟은 것은 기업들의 금융애로를 보여주는 한 예다.
우리 경제의 ‘허리’인 중견기업의 중요성도 고려됐다. 중견기업 수는 5576개로 1.3%에 불과하지만, 전체 매출의 14.4%, 고용의 12.9%, 수출의 18.2%를 차지한다. 제조 중견기업 중 소재·부품·장비기업의 비중은 86%에 이르며, 신사업 투자 수요가 연간 7조원에 달하는 상황이다.
전체 기업의 98%를 차지하는 중소기업의 활력을 제고하는 것도 경기회복 체감에 직결된다는 판단이다. 중소기업 대출 연체율은 2021년 말 0.27%까지 낮아졌다가 지난해 10월 말 0.55%로 반등했고, 영업해 번 돈으로 이자도 못 갚는 이자보상비율 1미만 기업 비중이 2022년 말 28.7%에서 지난해 말 38.4%로 늘었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우리 기업의 경쟁력이 곧 대한민국 경제의 미래”라며 “우리 기업들이 급변하는 경영환경 속에서 성장을 계속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변화를 통한 경쟁력 확보 노력이 필요하고 이 과정에서 적극적인 금융의 뒷받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번 대책에는 자금조달 애로를 겪는 중견기업의 숨통을 틔우는 방안들이 여럿 담겼다. 중견기업의 평균 차입이자율이 4.56%(2022년 기준)로 중소기업(3.52%)·대기업(3.25%)보다 높지만, 중견기업은 정책자금 지원의 사각지대에 놓인 데다 회사채 발행도 여의치 않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우선 은행권 공동의 ‘중견기업전용펀드’가 처음 도입된다. 5대 시중은행이 3분기 중 1차로 5000억원을 조성하고, 향후 최대 5조원 규모로 확대한다. 투자대상은 사업재편 및 스케일업, 인수·합병(M&A)을 추진하는 (예비) 중견기업이다.
남동우 금융위 산업금융과장은 “한국성장금융에서 모펀드를 운용하고, 자펀드는 민간 운용사에 맡긴다”며 “시장에서 수익성이 있다고 판단한 중견기업을 발굴해 지원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시스템반도체 등 신성장 분야로 진출·투자하는 중견기업을 위해 최초로 민간은행 중심의 중견기업 전용 저금리 대출프로그램도 출시된다. 산업은행과 5대 은행이 각각 1조원씩 총 6조원을 마련해, 당장 4월부터 업체당 최대 1500억원까지 금리 1%포인트를 우대해 대출을 지원한다.
중견기업이 첨단·전략산업 관련 자금조달을 원활하게 할 수 있도록 사모사채(P-CBO) 발행을 지원하는 데 산은과 신용보증기금이 1조8000억원을 제공한다. 매출채권 유동화(팩토링) 지원대상을 중견기업으로 확대하고, 외부 증권사를 통하지 않고 신보가 직접 유동화증권을 발행하게 해 연간 0.5%포인트 가량의 발행금리를 인하하는 방안도 추진된다.
신산업 진출 중소기업에 대해서는 5대 은행이 최대 1.0%포인트의 우대금리를 적용해주는 저리 대출프로그램을 5조원 규모로 운영한다. 정책금융기관은 전략산업 확장 및 기술력 우수 중소기업 대상으로 최대 1.5%포인트의 우대금리, 보증료 감면 등에 16조3000억원을 지원한다. 중소기업에서 중견기업으로 성장 사다리를 지원하기 위한 보증지원 프로그램엔 5대 은행과 신보가 2조3000억원을 투입한다.
중소기업의 고금리 애로 해소 및 재기를 위해 19조4000억원이 지원된다. 정상 경영 중이거나 매출이 일부 하락한 기업 대상으로 은행권 공동 금리인하 특별프로그램이 총 5조원 규모로 가동된다. 일시적 유동성 부족에 처하거나 일시적 위험이 예상되는 기업엔 1년간 가산금리를 면제해준다. 조달금리만 갚게 되면 대출금리는 현재 7~8%대에서 3%대로 내려갈 수 있다. 성실경영 후 실패를 경험한 기업인의 재창업을 위해 3000억원을 지원한다.
초격차 주력산업 지원도 지속된다. 반도체·2차전지·바이오·원전·디스플레이 등 5대 첨단산업을 영위하는 대기업과 중소·중견기업에 대출금리를 최대 1.2%포인트 인하하는 데 산업은행이 15조원을 투입한다. 첨단전략산업 기업의 대규모 자금수요에 대해서는 수요기업이 특수목적법인(SPC)을 설립하면 정책금융기관, 민간금융사 등으로 구성된 대주단이 자금을 공급하는 프로젝트파이낸싱(PF) 방식 자금지원을 검토 중이다.
이번 대책은 은행이 자발적으로 20조원 규모로 지원에 참여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금융위는 은행의 기업금융 지원이 단발성 지원에 그치지 않고 지속적으로 확대될 수 있도록 제도개선을 추진하기로 했다.
은행이 정책성 펀드 등에 출자하는 경우 BIS비율 부담을 경감할 수 있는 위험가중치 하향 적용 요건 활용을 활성화하고, 보증부 분할실행대출 중 미실행금액에 대한 위험가중치를 최대 150%에서 0%로 인하한다. 구조조정회생기업 등에 대한 차주 신용등급 결정에 있어서도 개별은행의 자율성을 보장한다.
신용정보원에 집중된 기업재무 정보·기술력·매출 등 정보를 기존 ‘산업별’ 수준에서 ‘품목별·기업별’로 세분화해 은행에 제공함으로써 여신심사 효율성을 제고한다. 사업재편지원제도의 효율적 운영을 위해 은행이 추천한 사업재편기업 명단을 주기적으로 공유한다.
남 과장은 “지난해 중소기업 대출로 순수 지원한 33조원은 정책금융기관을 통한 보증 또는 대출이었다”며 “이번엔 주거래은행으로 이용하던 기업들에 편의를 제공하고 가계대출 위주로 늘려오던 대출을 기업대출 중심으로 바꿔 경제 성장을 지원하자는 취지에서 은행들이 직접 참여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