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영양제만 12개 ‘꿀꺽’”…영양제 털어넣는 현대인[과유불급 메가도스]

[헤럴드경제=이민경·김용재 기자] 11년차 IT회사 개발자인 30대 후반 민모 씨는 회사 책상에 루테인, 지아잔틴, 아스타잔틴을 비롯해 각종 영양제통을 놓고 다닌다. 수 년간 영양제에 쓴 돈은 1000만원을 너끈하게 넘는다. 회사에서 민씨는 ‘그 약 많이 먹는 분’으로 통한다. 두꺼운 뿔테 안경을 쓴 그는 인공눈물도 수시로 점안한다. 민씨는 “하루 종일 모니터를 보고, 또 집에 가서도 유튜브로 영상을 보니까 눈이 침침하다”며 “하지만 일을 그만둘 수는 없으니 조금이나마 천천히 나빠지길 바라면서 영양제를 먹는것”이라고 말했다.

5년차 직장인 김모(32)씨는 입사 후 진행한 건강검진 결과에서 간 수치가 높다는 진단을 받았다. 곧장 간에 좋다는 영양제를 구매했다. 약을 먹자 피로감이 조금씩 해소되는 것 같았다. 그때부터였다. 혈액순환, 시력보호, 골다공증 예방 등에 좋다는 영양제를 하나씩 늘리면서 현재 김씨가 하루에 먹는 영양제의 종류는 12가지에 이른다. 다이소에서 구매한 약통에 하루치 약을 챙겨 출근한다. 스스로도 약을 너무 많이 먹는 것 같다는 생각에 한때 6가지 정도로 줄여보기도 하고, 이틀에 한 번 먹는 것으로 바꿔봤지만, 유튜브에서 약사들이 추천하는 영양제를 보면 또다시 충동구매를 하는 자신을 발견했다.

최근 젊은층을 중심으로 영양제, 보충제를 ‘메가도스’(Megadose·기준 하루 권장 섭취량을 넘어 과도하게 섭취하는 방식. 크다는 뜻의 mega와 복용의 dose가 합쳐진 것)하는 복약 습관이 유행하고 있다.

13일 헤럴드경제가 20대 후반~40대 초반 직장인 32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 기본적으로 종합비타민을 기본으로 그 외 영양제를 2~3개 더 먹는 경향(57.6%)을 확인할 수 있었다. 5~7개 가량을 매일 먹는다고 답한 비율 또한 15.2%에 달했다. 또한 앞으로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영양제의 갯수를 ‘늘리겠다’고 답한 이들이 39.4%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 ‘유지하겠다’ 역시 33.3%에 이른데 반해, ‘줄이겠다’는 단 2명(6.1%)에 불과했다.

주목되는 점은 영양제에 대한 의존증이 오히려 50대 이상 장년층보다 더 젊고 건강한 2030 청년층에서 더욱 보편적으로 퍼져있다는 것이다.

김초일 서울대 식품영양학과 객원교수는 “젊은 사람들, 특히 미혼 청년층의 식생활이 전연령대를 통틀어 가장 불안정하다”면서 “하지만 이들은 동시에 미디어를 통해서 많은 정보를 받아들이고 스스로의 균형이 깨진 식단을 보상하기 위해 어떤 영양제를 먹어야 하는지 잘 아는 상태”라고 설명했다.

반면, 장년층과 노년층의 경우 영양제 구매에 덜 적극적인 편인데, 이에 대해 김 교수는 “노인세대는 살아온 생활방식에 근거해볼 때 영양제 구입에 쉽게 돈을 쓰는 사람이 상대적으로 적다”며 “그보다 젊은 5060은 혼자 사는 청년보다 오히려 더 식생활이 균형 잡혀 있어 크게 영양제를 찾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고 언급했다.

최근 몇년간 청년층의 영양제 구매를 부추기는 동인 중 하나는 ‘면역력 감소’ 및 그에 따른 ‘전염병 감염’의 공포심인 것으로 해석된다.

‘현재 가장 걱정되는 질환이 무엇인가’를 묻는 본지 설문 항목에서 84.4%(1위·복수응답 가능)가 ‘면역력 감소’를, 34.4%(2위)가 ‘감기 등 계절성 질환’을 선택했다. 3위는 업무 환경과 여가시간에도 스마트폰을 자주 사용하는 생활습관을 반영해 ‘시력감퇴’(31.3%)가 선택됐다.

부실한 식단을 보상해주기에 영양제의 가격이 합리적이라는 점도 주효한 것으로 보인다. 설문에서 응답자의 절반(48.8%)은 영양제 한 통(30일분) 당 2만원대 금액을 지불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4만원대 이상을 지불하고 있다는 응답은 15.2%에 불과했다.

연예인과 인플루언서가 유튜브 등을 통해 다양한 종류의 영양제를 먹고, 직접 효과가 어떠했는지 설명하는 미디어 콘텐츠가 범람하면서 과섭취에 대한 심리적 저항감도 낮은 편이다.

대표적으로 가수 다비치의 강민경 씨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공복에 콜라겐, 밀크시슬, 징크(아연), 레노메티오닌, 글루타치온 다섯 가지를 먹고, 오후 식후에는 감마리놀렌산, 미네랄, 비오틴, 비타민B군, 오메가3, 칼슘·마그네슘, 종합비타민, SAT 간 영양제, 비타민E 아홉 가지를 한꺼번에 섭취하는 모습을 보여준 장면은 크게 화제가 됐다. 이후 강씨는 해외 영양제 직구 사이트 ‘아이허브’의 광고도 찍었다.

아이허브와 쿠팡의 로켓직구 등 직구 시장과 영양제 메가도스 현상은 ‘닭과 달걀의 관계’로 분석된다. 윤지현 서울대 식품영양학과 교수는 “(영양제)직구 시장이 커져서 (영양제를)많이 먹게 된 걸 수도 있고, 많이 먹어서 시장이 커진 걸 수도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11월 윤 교수 연구팀이 관세청 자료를 활용해 분석한 학내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건강식품의 해외직구 건수는 2019~2021년 매년 증가했으며, 2021년에는 1500만여 건을 돌파했다.

건강식품을 해외직구한 주요 연령층은 30대(32.7%), 40대(29.4%), 50대(16.9%), 20대 이하(11.6%), 60대 이상(9.5%) 순으로, 역시 30대와 40대가 가장 많이, 전체의 과반(52.1%)을 차지한 것이 나타났다.

윤 교수는 “영양제 구입이 손쉽고, 값싸진데다 많은 사람들이 건강에 대한 관심이 증가한 것이 맞물려 오늘날의 현상이 빚어진 것 같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영양제 섭취가 당장의 영양 불균형을 해소해줄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 균형잡힌 식단을 대체할 수 없다고 경고한다.

조미숙 이화여대 식품영양학과 교수는 “영양제로 결핍된 부분이 보충이 되기는 하지만 특정 영양소를 과잉으로 섭취할 수도 있고, 본인 몸 상태에 필요 없는것을 먹을 수도 있다”며 “대표적인 것이 유행하고 있는 비타민C 메가도스인데, 아무리 수용성 비타민이라고 해도 기준치의 200배 이상 고농도로 섭취하면 신장 결석이 생길 수 있고, 임산부의 경우엔 비타민C의존성 태아를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조 교수는 “과거 김치와 동치미 등이 포함된 전통적 한식 식단에서는 유산균을 굳이 찾아 먹을 이유가 없었다”며 “근본적으로 균형된 식사를 통해서 해결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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