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점 내려놓고 책만 100권 읽었죠” KAIST 화제의 졸업생

KAIST 융합인재학부 1호 졸업생인 고경빈(왼쪽) 씨와 김백호 씨 [KAIST 제공]

“100권의 책을 탐독하며 쌓은 지식은 과학이 사회·세상·인류와 어떻게 얽혀있는지를 넓은 시야로 이해하게 도와주는 큰 자산이 됐습니다.”(KAIST 융합인재학부 1호 졸업생 고경빈 씨)

KAIST 학생이라고 하면 으레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 복잡한 기기가 가득한 연구실에서 실험에 몰두하고 있는 모습이 상상된다. 요즘 유행하는 MBTI(성격 유행 지표)로 치면, F(감성적)보다는 T(이성적)의 성격, 문학보단 수학이 어울릴 것이라는 막연한 이미지다.

이런 편견을 깨고 책만 100권을 읽은 KAIST 졸업생들이 화제다. KAIST가 2020년 신설해 첫 졸업생을 배출한 융합인재학부(학부장 정재승 뇌인지과학과 교수) 학생들이다.

KAIST는 16일 대전 유성구 본원 류근철스포츠컴플렉스에서 2024년도 학위수여식을 개최한다. 올해 학위수여식에서는 융합인재학부가 첫 졸업생을 배출한다. 융합인재학부는 학생이 교과과정을 직접 선택해 이수하고 등급으로 나뉘는 학점 대신 P/NR 방식으로 성적을 표기하는 혁신적인 교육 제도를 운영하는 학과다.

P/NR 방식이란 일정 등급 이상 성적 충족 시 P(Pass)로, 기준 미만 성적에 대해서는 NR(No Record)로 처리해 표기하지 않는 방식이다.

15일 KAIST에 따르면 융합인재학부의 1호 졸업생인 고경빈(24) 씨와 김백호(23) 씨는 각각 화학생물학과 정서과학을 중점분야로 전공해 이학사 학위를 받는다. 이는 개인 맞춤형으로 설계된 전공 명칭이다. 고씨는 기초 학문인 생명과학과 화학을 중심으로, 김씨는 뇌과학·심리행동과학·인간공학을 중심으로 교육과정을 구성한 결과다.

고씨는 2019년 KAIST에 입학해 이듬해 생명과학과에 진학했지만, 융합인재학부가 개설된 첫해에 소속 학과를 옮겼다.

그는 “학문 분야를 다양하게 경험하고 진로를 결정하고 싶었는데, 통과 여부만 기록에 남는 제도 덕분에 학점에 연연하지 않는 과감한 자세로 도전하고 탐구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의료분야 난제를 해결할 유기화합물 디자인에 관심을 두고 화학과 생물학 관련 분야를 전공한 고씨는 올해 3월 KAIST 과학기술정책대학원에 진학한다.

이런 결정에는 융합인재학부만의 전공 필수인 ‘지성과 문명 강독’ 과목이 영향을 미쳤다. 인간·사회·우주·생명·예술·기술을 주제로 다루는 지정 도서를 매주 한 권씩 읽고 토론과 서평을 병행하는 수업이다. 학기마다 개설되는 이 수업을 모두 이수하면 졸업 무렵엔 100권의 책을 읽게 된다.

함께 졸업하는 김씨는 “인간의 마음이 어떻게 구성되는지를 과학적으로 배우고 싶었다. 세부 전공을 깊게 배우는 기존 학과보다는 KAIST 내의 모든 전공은 물론 대학원 수업까지 다양하게 수강하고 졸업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신생 학과로 진학하는 모험을 결정했다”고 말했다.

김씨도 올해 3월부터 KAIST 뇌인지과학과·데이터사이언스 대학원에 진학할 예정이다. 인간의 다양한 감정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구조를 발견하고, 개인이 감정을 세분화해 다스리는 능력이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 탐구할 계획이다.

정재승 학부장은 “융합인재학부의 첫 졸업생들은 다른 학과에서는 배출될 수 없는 ‘대체 불가능한 인재’라고 자신한다”며 “성적을 매기지 않는 제도 속에서 자신의 능력과 존재가치를 다양하고 독창적인 방식으로 증명하고 학점 이상의 역량을 보여준 점을 격려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광형 KAIST 총장은 “꿈꾸는 삶을 이어가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도전하며, 실패를 만나더라도 포기하지 않길 바란다”며 “성공에 대한 부담은 내려놓고, 어제와는 다른 생각, 남과는 다른, 나만의 고유한 색으로 빛나기 바란다”고 했다.

이번 학위수여식에서는 박사 756명·석사 1564명·학사 694명, 총 3014명이 학위를 받는다. 이로써 KAIST는 1971년 설립 이래 박사 1만6528명을 포함, 석사 3만9924명, 학사 2만1561명까지 총 7만8013명의 고급 과학기술 인력을 배출하게 된다.

학사과정 수석 졸업 영광은 유장목(24·화학과) 씨가 차지해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상을 받는다. KAIST 이사장상은 정우진(23·원자력및양자공학과) 씨, 총장상은 민소영(25·산업디자인학과) 씨, 동문회장상과 발전재단 이사장상은 각각 이한빛(23·산업및시스템공학과) 씨와 홍유승(22·생명화학공학과) 씨가 수상한다. 구본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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