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우 박사의 호르몬 미술관] 자꾸 울리는 몸속의 노화 사이렌

파블로 피카소, ‘게르니카’(1937) [헤럴드DB]

1937년 파리에서 열린 만국박람회의 스페인관을 위해 제작된 파블로 피카소의 대작인 ‘게르니카’는 1937년 프랑코 장군과 동맹군인 나치가 바스크 지방에서 투하한 폭격이 낳은 참상을 고발하는 주제를 다룬 기념비적인 작품입니다. 그림은 알고 있지만, 이 그림에 얽혀 있는 역사적 비극은 잘 모르는 사람이 많지요. 20세기 초에 벌어진 일입니다. 당시 스페인은 내전을 치르고 있었습니다. 반란을 일으킨 프랑코 장군은 나치 독일에 지원을 요청하지요. 나치 독일은 폭격기를 이끌고 스페인 북부의 작은 마을 게르니카 위에 엄청난 양의 폭탄을 떨어뜨립니다. 이로 인해 도시는 폐허가 되었고 민간인은 학살당했습니다.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은 사건이었습니다. 게르니카는 군사적으로나 전략적으로 중요한 도시가 아니었거든요. 그렇다면 나치 독일은 왜 그런 만행을 저질렀던 걸까요? 이유는 무기 성능 테스트 때문이었습니다. 폭격기와 신형 폭탄의 성능을 테스트하기 위해서 게르니카를 쑥대밭으로 만든 거죠.

피카소는 ‘게르니카’를 통해 나치 독일을 고발하고, 전쟁에 대한 반감과 강렬한 분노를 표현하고자 했던 것 같습니다. 사물의 모습은 뒤틀렸고, 인물의 모습은 극히 변형되었죠. 소리를 내지르고 몸을 뒤트는 형상들은 전쟁의 폭력성을 연상케 합니다. 위의 부분도를 보면 한 어머니가 하늘을 향해 소리를 내지르고 있습니다.

어쩌면 전쟁의 비극은 이 모습 하나로 요약될 수 있을 듯합니다. 어머니의 울음은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어머니의 뒤편에는 큰 소 한 마리도 서서 울고 있습니다. 갈고리처럼 뾰족하게 굽은 뿔로 보아 투우 경기에 참가하는 황소인 것 같습니다.

가뜩이나 우울하고 스트레스 받는데, 이런 작품들을 보여드리는 것이 죄송스럽습니다. 하지만 우리 몸속에 온전히 사랑과 기쁨의 호르몬만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니까요. 스트레스 호르몬도 우리에게 필요하고 알아야 할 호르몬이니까요.

코르티솔에 대해 조금 설명해볼게요. 부신피질에서 주로 분비되는 코르티솔은 스트레스 호르몬이라고 해서, 원래는 스트레스에 대항하여 나오는 호르몬입니다. 하지만 지나치게 많이, 그리고 오래 분비되면 문제가 생길 수 있고, 반대로 너무 분비가 안 되어도 스트레스에 대항하지 못해서 피로감뿐만 아니라 기본적인 생체방어 능력까지 떨어뜨리게 됩니다.

코르티솔과 알도스테론 모두 부신피질에서 생성되는 코르티코이드 호르몬의 일종입니다. 우리에게는 ‘스테로이드’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져 있지요. 알도스테론은 무기질 코르티코이드로, 수분과 전해질의 흡수에 관여하여 혈압 및 혈액량을 조절하는 기능을 합니다. 코르티솔은 무기질이 아닌 당질 코르티코이드입니다. 스트레스나 자극에 대한 우리 몸의 대사와 면역 반응을 조절하고, 급성 스트레스에 대항할 수 있도록 에너지를 공급해줍니다.

한편 부신수질에서 나오는 도파민, 에피네프린(아드레날린)과 노르에피네프린을 총칭해서 카테콜아민이라고 하는데, 혈압 조절, 스트레스 대응, 그리고 혈당 상승을 일으켜서 위기에 대처하는 호르몬입니다. 카테콜아민은 코르티솔처럼 인체가 위험에 처했을 때 가장 즉각적인 방어 상태에 들어가도록 하는 기능을 지니고 있습니다.

코르티솔을 스트레스 호르몬이라 하여 무조건 부정적인 호르몬으로 보면 안 됩니다. 다만 과해도 문제, 부족해도 문제인 것처럼, 이 코르티솔이 오랫동안 분비되면 우리 몸 이곳저곳에 빨간 신호등이 켜지는 것은 자명한 일이겠지요. 스트레스로 인한 코르티솔이 많아지면 신체 대사가 불균형해지고 쉽게 배가 고파집니다. 이럴 땐 건강에 안 좋은 자극적인 음식들을 먹기보다 우울하고 불안한 마음을 가라앉힐 수 있는 음식들을 먹는 게 도움이 됩니다.

스테로이드 약물 치료를 받거나, 뇌하수체 혹은 부신의 문제로 인해 스테로이드 호르몬이 체내에 과도하게 작용할 경우, ‘쿠싱병’이라고 하는 질병이 생길 수 있습니다. 쿠싱병은 체중 증가, 달덩이 같은 얼굴, 혈당 증가, 피부 얇아짐, 골다공증 등의 증상을 일으키는 무시무시한 질병입니다. 조기 진단하여 신속하게 치료하지 않으면 성인병으로 이어질 수 있고요.

제 진료실을 방문했던 한 환자분은 고혈압과 당뇨병 때문에 걱정이셨는데, 얼굴이나 체형이 전형적인 쿠싱병 환자였습니다. 호르몬 검사를 권해드렸고, 그제야 코르티솔 분비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지요.

간혹 운동선수가 도핑 검사에서 스테로이드 약물 사용이 적발되었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으실 겁니다. 이 스테로이드는 오남용해서는 결코 안 되는 약물입니다. 이 약물을 장기 복용하면 부신 본연의 기능이 점차 약해지기 때문이지요. 그러면 나중에는 부신 호르몬이 잘 나오지 않으면서 세상만사가 다 귀찮은 만성피로 증후군, 심각한 쇼크 등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

모든 호르몬은 신체 내 내분비 시스템에서 만들어지는 화학물질입니다. 따라서 코르티솔 호르몬도 그만큼 노력하면 다시 균형을 찾을 수 있습니다. 평소에 식사, 운동, 수면, 명상, 반신욕과 같이 호르몬의 밸런스를 스스로 꾸준히 잘 유지하여야 정상적인 호르몬 체계를 회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안철우 강남세브란스병원 내분비내과 교수

Print Friend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