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천 교수 “우리에게 필요한 건 공평에 양심 더한 ‘공정’”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가 14일 서울 중구 한 식당에서 ‘최재천의 곤충사회’출간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신소연 기자

“미국이 ‘재미없는 천국’이라면, 한국은 ‘재미있는 지옥’입니다. 어느 나라보다 공평을 주장하지만, 가진 자가 공평하게 살면 그런 사람들만 잘 살게 됩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공평에 양심이 가미된 ‘공정’입니다.”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는 14일 서울 광화문의 한 식당에서 ‘최재천의 곤충사회’ 출간 기자간담회를 열고, 공정과 기후변화 등에 대한 다양한 생각들을 풀어놨다.

책은 2013년부터 2021년까지 ‘곤충사회’를 비롯한 다양한 강연과 인터뷰를 토대로 작성된 에세집이다.

최 교수는 인간처럼 사회성을 가진 곤충을 주로 연구하는 생물학자로, ‘통섭(범 학문적 연구)학자’로 유명하다. 생물학을 전공하긴 했지만, 곤충의 사회성이 주요 연구 주제이다 보니 사회학, 경제학, 인문학 등 학문의 경계를 넘나든다. 특히 그의 주특기는 ‘자연 모방(Biomimicry)’이다. 자연 현상이 오랜 진화의 역사를 거치며 형성된 만큼 인간에게 도움이 되는 지혜가 많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그는 간담회에서 “매일 신발에 신을 때마다 쓰는 찍찍이(velcro)는 등산갈 때마다 옷에 씨가 붙는 도꼬마리 같은 식물을 베낀 것인데, 최근엔 심장병 수술에까지 쓰인다”며 “‘의생학’이라는 학문도 자연에서 모방하는 일을 체계적으로 진화적인 관점에서 해보자는 취지에서 만들었다”고 했다. 그는 이어 “사실 (연구비가) 가난한 자연과학자들이 자연에 나가서 연구비를 벌 거리를 마련해보자는 차원에서 구상했고, 이화여대로 자리를 옮긴 후 국내 최초로 ‘의생학 연구센터’를 열었다”면서 “일부 기업들이 찾아오긴 했지만, 계획처럼 되지 않았다”며 웃었다.

그는 개미나 꿀벌, 흰개미 등 사회성을 가진 곤충의 생태에서 인간과 비슷한 점이 많다고 봤다. 그는 저서에서 “개미는 나라를 건설할 때 여왕개미끼리 자주 동맹을 맺는다”며 “한 마리의 여왕개미는 일개미 5~6마리 밖에 못 키우지만, 대여섯 마리의 여왕개미가 함께 키우면 20~30마리의 일개미를 한꺼번에 키울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그 왕국이 자리를 잡게 되면 여왕개미끼리 우두머리 자리를 두고 경쟁하고, 그 과정에서 일개미들이 동원되기도 한다. 개미도 인간처럼 서로 조율하며 진화하는 동시에 치열한 경쟁도 벌이는 셈이다.

하지만 개미는 인간에 비해 이타적이라는 게 최 교수의 설명이다. 기꺼이 자기 희생을 하면서 조직 사회를 유지하는 게 개미들의 특성이다. 개미집에 불이 나면 우선은 불을 피해 도망가다가도 개미알을 구하려 다시 돌아오는 식이다. 그는 “자신을 ‘현명한 존재’라고 자찬하는 호모 사피엔스는 개미에 비해 매우 이기적”이라며 “‘6차 대멸종’ 시대를 맞게 된 것도 인간의 이기심과 무관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인류가 맞게 될 ‘6차 대멸종’과 관련해 어떤 멸종의 시대보다 최대 규모가 될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을 한다. 그는 “그간 5차례의 멸종은 동물에 국한돼 일어났지만, 이번엔 지구의 기반인 식물계가 무너지고, 곤충도 사라지기 시작했다”며 “학자들은 이번 세기가 끝나기 전에 지구의 식물다양성 절반 정도가 사라진다고 예측한다”고 했다.

최 교수는 하지만 아직 절망하기는 이르다고 말한다. 그는 “가장 존경하는 제인 구달 박사는 기후변화에 따른 생태 변화의 최전방에 있으면서도 항상 희망을 얘기한다”며 “인간이 갖고 있는 불굴의 정신을 믿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 역시도 “기후 우울증을 앓을 정도로 지구 생태가 되돌릴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고 있지만, 인간은 끝내 이를 벗어나는 방법을 찾아낼 것”이라며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 그는 이어 “호모 심비우스(Homo symbious)로서 다른 생명체들과 이 지구를 공유하겠다는 겸허한 마음으로 거듭나야 한다”며 “손잡지 않고 살아남은 생명은 (지구 상에) 없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신소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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