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홍콩에서 시민들이 춘절을 앞두고 거리로 나온 모습. [로이터] |
[헤럴드경제=김빛나 기자] 중국이 부동산 위기 대처 카드로 정부가 직접 주택 임대와 판매에 나서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지난16일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중국이 부동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회주의 해법’을 만지작거리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는 지난달 29일 홍콩법원의 청산 명령으로 중국 거대 부동산개발기업인 헝다(恒大·에버그란데) 해체 작업이 시작된 데다 헝다 급(級)의 비구이위안(컨트리가든), 그리고 돈을 댄 자산관리회사 중즈(中植)그룹 등 금융기업들의 위기가 현실화하는 가운데 부각된 카드라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WSJ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무너지는 부동산 시장을 회생시킬 책임을 국가에 맡기고 싶어 한다면서 이는 부동산 사유화와 역행하는 사회주의 사상의 부활을 의미한다고 짚었다.
이 신문은 시 주석이 최근 몇 년 새 민간 경제 부문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고 공산당 통제를 확대하면서 알리바바 등 빅테크(거대 정보기술기업)에 대한 단속의 고삐를 죄어온 데 이어 정부의 주택 임대·판매로 부동산 사유화에 역행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도 있다고 덧붙였다.
이런 시도가 시 주석이 기회가 있을 때마다 강조해온 “전체 인민의 정신과 물질생활이 모두 부유한” 공동부유 정책과도 연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WSJ은 중국 당국이 확인하지 않고 있으나, 국유기업 등을 통한 정부의 저비용 임대·판매 주택을 현재 주택 재고량의 5% 수준에서 최소 30%로 늘리는 방안이 검토된다고 전했다.
시 주석의 최측근인 허리펑 국무원 부총리가 이런 사회주의 해법의 실무작업을 주도하는 가운데 문제는 이와 관련해 향후 5년간 매년 2천800억달러(약 373조원)씩 모두 1조4천억달러(약 1천863조원) 규모의 재원을 어떻게 마련하느냐라고 이 신문은 강조했다.
특히 중국 내 31개 성(省)·시·자치구 정부가 부채로 신음하는 가운데 재원 확보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실제 중국 재정부는 작년 말 현재 지방정부의 부채 잔액은 40조7천373억위안(약 7천539조원)으로 파악됐다고 밝혔으나, 연초 WSJ은 자금 조달용 특수법인(LGFV·local government financing vehicles) 부채를 포함해 중국에서 공식 통계에 잡히지 않는 ‘숨겨진 부채’가 7조∼11조달러(약 9천100조∼1경4천400조원)로 추산된다고 보도한 바 있다.
LGFV를 이용해 자금 조달을 해온 중국 지방정부들은 자체 상환이 어려울 수준의 빚더미에 올랐으며, 이 중 일부는 중앙 정부의 도움 없이는 채무불이행(디폴트) 상태가 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WSJ은 작년 12월 11∼12일 베이징에서 시 주석 주재로 열린 중앙경제공작회의에서 정부의 주택 임대·판매 방안이 논의됐다면서 그 대상이 인구 300만명 이상인 35개 도시의 600만채가량인 것으로 알려졌다고 전했다.
그러나 어느 도시의 어떤 지역이 대상이 될지는 전혀 공개되지 않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럼에도 인민은행은 이와 관련해 5천억위안(약 92조2천억원)을 중국개발은행, 중국수출입은행, 중국농업개발은행 등에 할당해 각 지방정부가 사업에 나서도록 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 주석은 유동성 위기에 처한 부동산 개발기업에는 자금 지원을 하지 않으면서 정부가 싼 가격으로 주택 임대·판매에 나서는 방식으로 경기 부양도 하고 빈부격차도 해소하는 ‘두 마리 토끼 잡기’를 시도한다는 평가도 나온다.
중국에서 부동산 민영화는 1998년부터 시작됐다. 시장경제 시스템을 받아들인 중국 특색사회주의화의 결과였다.
당시 소액의 월세만 내고 국유기업 등이 보유하던 주택에 거주하던 중국인들은 시장 가격보다 훨씬 낮은 수준으로 살던 주택을 샀다. 중국 정부는 보조금과 무이자 대출까지 해줬다.
2000년대 중국 경제의 급성장과 더불어 대도시 주민은 주택가격 폭등으로 대규모 자산을 보유하게 됐다. 공산당과 연줄을 가진 대도시 주민은 수십 채의 주택을 가진 부호가 됐다.
이와는 달리 소도시와 농촌 주민, 그리고 대도시로 일하러 온 농민공들은 이 특혜에서 배제됐으며 그로 인해 중국의 두 자릿수 경제 발전 속에서도 빈부격차는 심해졌다.
이 때문에 시 주석은 줄곧 빈부격차 해소를 공동부유 정책 시행의 이유로 거론해왔으며, 주택 임대·판매 사업 역시 이런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는 게 중국 내 대체적인 여론이다.
그러나 문제는 시 주석의 이런 좌클릭 성향의 공동부유 정책이 중국 안팎의 반발을 사고 있다는 점이다.
부동산 위기로 인해 수년간 주택가격 폭락으로 대규모 자산 손실을 겪은 중국의 도시 거주민들은 정부의 저가 주택 임대·판매가 본격화하면 집값이 더 내려갈 것으로 우려한다. 이로써 그동안 집값 폭락으로 지갑을 닫아온 중국인들의 소비가 더 움츠러들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사정이 이렇게 되면 중국 당국으로서는 민심 이반 현상을 걱정할 수밖에 없다. 아울러 중국 당국의 이런 정책이 외국기업들의 ‘탈(脫)중국’을 부추길 것으로 보인다. 이미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과 방첩법 강화 조치로 외국 자본의 중국 이탈은 심각한 수준이다.
국제통화기금(IMF) 등은 중국 당국이 위기에 처한 부동산개발기업들은 물론 금융기관에 경기부양 자금을 투입할 것을 권하고 있으나, 시 주석은 이를 통해 다시 부동산 거품이 생길 걸 우려하면서 거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