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의사협회(의협) 등 일부 의사의 ‘선 넘는 발언’이 세간의 비난 여론을 자초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의협이 의대 증원 반대 이유를 설명하면 할수록 국민에게 ‘밥그릇 싸움’으로 비쳐지는 셈이다. 일부 의사의 과격한 발언은 의사 단체 내부의 ‘단결력’을 높일 수 있을지는 몰라도, 여론에선 의사의 입장에 되레 등을 돌리게 만드는 결과가 빚어지고 있다.
19일 서울 5대 대형병원 중 한 곳인 세브란스병원을 시작으로 전공의가 병원 근무 중단에 돌입했다. 이날 세브란스병원 소아청소년과 1∼3년 차 전공의는 오전 7시부터 파업에 들어갔다. 삼성서울병원도 18일부터 의료진이 개별적으로 환자에게 전화를 걸어 수술 연기 방침을 전달하고 있다. 전공의의 집단사직으로 당장 진료·입원·수술이 무기한 연기된 환자 가족은 “환자 생명을 담보로 밥그릇 싸움한다”, “히포크라테스 선서는 내팽개친거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당장 피해를 본 환자 및 당사자들을 제외하고도 국민 여론 전반이 의사 집단에 호의적이지 않게 흘러가는 모양새다. 의협은 18일 공식 성명서를 통해 “의사를 악마화하면서 마녀사냥하는 정부 행태”, “정부가 의대생, 전공의의 자유의사에 기반한 행동에 위헌적 프레임을 씌워 처벌하려 한다면 의료 대재앙을 맞이할 것”이라고 했다.
의협 핵심관계자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도 여론을 악화시키는 데 한 몫 했다. 노환규 전 의협 회장은 “정부는 의사들을 이길 수 없다”며 “(정부가) 의사들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한 것 자체가 어이없을 정도로 어리석은 발상이고, 문제는 그 재앙적 결과가 국민의 몫이라는 점”이라고 했다.
주수호 전 의협 회장도 SNS에 “의사 알기를 정부 노예로 아는 정부”, “정부는 (의협) 회원을 겁박하는 치졸한 짓을 즉각 중지하라”고 주장했다.
이런 발언을 접한 시민은 “의사들은 자기가 정말 천룡인(법 위에 있는 사람)인줄 안다”, “의사들 진짜 이기주의 집단이네”, “선민의식 엄청나다”는 등의 오만함을 지적하는 반응을 내놓고 있다.
한 시민은 온라인 커뮤니티에 “국민건강을 생각해 정원 늘리기가 안된다면서 결국 환자진료 거부하고 단체 불법파업하니 앞뒤가 안 맞는다”며 “간호조무사에 대리수술 시킬 때는 ‘의사 수가 부족해서’ 라고 변명하더니 왜 증원 반대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스스로를 의사라고 밝힌 한 커뮤니티 이용자도 “듣는 다수에게 거부감을 팍팍 주는 말로 하니 여론이 등 돌린 것 아니냐”며 의협의 미숙한 커뮤니케이션 방식을 나무랐다.
의사단체는 여러가지 논점으로 반박에 나선다. 우선, 의대 정원을 포함한 주요 의료정책을 정부와 의료계 간 구성된 ‘의정협의체’를 통해 논의하기로 2020년 9월 합의해 놓고, 정부가 일방적으로 2000명 증원을 밀어붙이는 것에 대해서 “일방적 합의 파기”라며 반발한다.
또 의대 정원을 2000명 늘린다고 지방의료와 필수과 기피 현상이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한 전공의는 “갑상선암에 걸려도 서울로 가는 와중에 의사 좀 늘린다고 지방의료가 살아나겠느냐”며 증원 무용론을 제기했다. 또 내과 전문의보다 피부과 일반의(GP)가 월 수입이 더 많은 현실을 그대로 둔 채 증원을 강행하면 피부과 의사만 더 늘리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는 예견도 나온다.
보건복지부는 예고한 대로 전공의 집단 사직에 대해 ‘업무개시명령’을 내리고, 이에 불응할 경우 최종적으로 면허를 박탈한다는 방침을 고수하고 있다. 각 병원에 전공의의 사직서를 수리하지 말 것을 공문으로 내려보냈다.
의료법 59조에 따르면 복지부는 의료인이 정당한 사유없이 집단으로 진료를 거부하면 업무 개시를 명령할 수 있는데, 여기에 따르지 않은 의료인은 1년 이하의 자격 정지뿐만 아니라 3년 이하의 징역, 3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질 수 있다. 특히 개정된 의료법은 어떤 범죄든 ‘금고 이상의 실형·선고유예·집행유예’를 선고받았을 때 의사 면허를 취소할 수 있게 했다.
정부는 2020년에는 의대정원 확대에 반발해 파업 후 업무개시명령을 어긴 10명의 의사를 고발했지만 결국 소를 취하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끝장 대응 의지를 밝힌 바 있다. ‘과거와는 다르다’는 것이 현 정부의 기조다. 교육부 역시 의대생의 동맹 휴학에 대해서 각 학교에 동맹휴학이 휴학 요건에 해당하지 않으므로 승인되지 않도록 해달라고 요청한 상태다. 이민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