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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 |
[헤럴드경제=안세연 기자] 문서파쇄와 운송을 담당하던 지입차주(본인 소유 차량으로 운송 업무를 하는 자)도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1심과 2심은 근로자가 아니라며 업무상 재해를 인정하지 않았지만 대법원은 3년 2개월간 심리한 끝에 근로자가 맞다고 판시했다.
22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3부(주심 대법관 이흥구)는 문서파쇄업체 지입차주 50대 A씨가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업무상재해를 인정해달라”며 낸 소송에서 A씨 승소 취지로 판결했다. 대법원은 “원심(2심)에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있다”며 판결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
A씨는 2012년, 8톤 트럭을 사들여 문서파쇄업체와 위탁계약을 체결한 B사에서 문서파쇄, 운송을 담당했다. 그는 용역비 명목으로 매달 400여만원을 지급받았다. 그러다 5년 뒤인 2017년, 서울 강남의 사무실에서 문서를 파쇄하던 중 파쇄기에 손이 빨려 들어가 부상을 입었다. 손가락 일부가 절단됐다.
근로복지공단은 A씨의 업무상 재해를 인정하지 않았다. 공단은 “A씨를 B사에 소속된 근로자로 볼 수 없다”는 이유로 A씨의 요양급여 신청을 거부했다. 결국 A씨는 2019년 1월, 소송을 냈다.
1심과 2심은 A씨 패소 취지로 판결했다. 위탁계약에 따라 용역비를 받았을 뿐이므로 임금을 목적으로 근로를 제공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는 이유였다.
1심을 맡은 서울행정법원 행정2단독 남기용 판사는 2020년 6월, “A씨는 B사와 근로계약은 물론 어떠한 형태의 계약도 명시적으로 체결하지 않았다”며 “취업규칙, 복무규정, 인사규정 등의 적용까지 받지 않았던 것으로 보이고 A씨도 별도의 사업자등록을 통해 부가가치세 등을 신고·납부했다”고 근거를 들었다.
이어 “회사 입장에선 차량을 직접 보유하는 등의 비용을 절감하고 유동적인 경영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직영기사를 고용하는 대신 위탹계약을 통해 지입차주에게 업무를 위탁하는 계약형태를 선택한 것”이라며 “A씨가 회사에 종송적인 관계에서 노무를 제공했다고 단정하긴 어렵다”고 했다.
2심의 판단도 같았다. 2심을 맡은 서울고등법원 6행정부(부장 이창형)는 2020년 11월, A씨의 항소를 기각했다. 2심 재판부는 “회사의 직영기사엔 임금이 지급됐지만 지입차주에겐 위탁사를 거치는 것을 생략하는 형태로 요금이 지급돼 지급 명목이 다르다”며 A씨의 근로자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A씨와 B사가 직접 계약을 체결하진 않았으나 이러한 사정은 노무제공의 실질에 부합하지 않는 사항”이라고 전제했다. 계약의 형식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근로를 제공했는지 여부를 중심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취지다.
이어 “A씨는 주5일 근무를 원칙으로 했지만 출퇴근 시간이 B사의 필요에 따라 변경될 수 있었고, 휴무일도 B사가 지정하는 날짜에 실시했다”고 봤다. 이어 “매일 퇴근 전 B사 측으로부터 다음날 업무내용을 배정받았고, 매일 거래처·작업량 등을 기재한 작업일지를 작성해 매월 말 확인받았다”고 판단했다.
이러한 사정으로 볼 때 대법원은 “B사가 직영기사와 동일하게 A씨에게 상당한 업무 지휘·감독을 했다고 볼 수 있다”며 “그런데도 원심(2심)은 A씨를 근로자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해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있다”고 결론 내렸다.
대법원 판결 취지에 따라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A씨는 4번째 재판에서 업무상 재해를 인정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