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텔이 21일(현지시간) 첫 파운드리 행사를 열고 시스템즈 파운드리 사업 출범을 정식 선언했다. 이미 마이크로소프트로부터 1.8나노 제품 수주를 받고, 연내 양산에 들어가겠다는 방침이다. 사진은 인텔 반도체 생산 현장 [인텔 홈페이지] |
팻 겔싱어 인텔 최고경영자(CEO)가 21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새너제이 맥에너리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인텔 파운드리 서비스(IFS) 다이렉트 커넥트’에서 키노트를 하고 있다. [연합] |
[헤럴드경제=김민지 기자] “2030년까지 삼성 제치겠다는 인텔…믿는 구석은 미국 기업이란 점?”
인텔이 전 세계에 삼성을 제치고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2위로 올라서겠다고 공식 선언했습니다. 핵심 무기는 3나노 이하 초미세 공정입니다. 올 연말 1.8나노(18A) 공정 양산과 함께 3년 내 1.4나노 공정까지 로드맵을 밝히면서 ‘TSMC-삼성-인텔’의 최첨단 파운드리 3파전이 갈수록 격화되는 모습입니다.
인텔은 파운드리 시장 후발 주자이지만, 종합반도체기업(IDM) 매출 1위 기업인 만큼 빠른 속도로 삼성을 추격할 전망입니다. 특히, ‘미국 기업’이라는 점에서 AI 반도체 팹리스(반도체 설계) 기업들의 일감을 따내는데 유리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옵니다.
앞서 삼성 역시 2030년 시스템반도체 1위 목표를 세웠습니다. 하지만 파운드리 1위 TSMC와의 격차가 크고 인텔의 공세가 거세지고 있어 ‘초격차’ 기술·인재 중요성이 한층 커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인텔은 21일(현지 시간) 미국 캘리포니아 새너제이 컨벤션센터에서 ‘IFS(인텔파운드리서비스) 다이렉트 커넥트 2024’를 열고 ‘시스템즈 파운드리(systems foundry)’ 사업 출범을 정식 선언했습니다. 인텔이 파운드리 관련 행사를 연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이날 인텔 파운드리 행사에는 반도체 업계 거물들이 지나 러몬도 미국 상무부 장관, 르네 하스 암(Arm) CEO, 사티아 나델라 MS CEO, 샘 알트만 오픈AI CEO 등 대거 출동했습니다.
인텔은 “14A(1.4나노급) 공정을 2027년 내 양산할 것이며 이를 바탕으로 2030년까지 업계 2위 파운드리로 발돋움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현재 파운드리 시장 2위인 삼성을 6년 안에 제치겠다고 ‘선전포고’한 셈입니다.
이와 함께 올해 안에 2나노급 공정인 ‘인텔 20A’와 1.8나노급 공정인 ‘인텔 18A’을 도입하겠다고 밝혔습니다. 18A 고객사로는 MS(마이크로소프트) 포함 4곳을 이미 고객사로 확보했다고도 강조했습니다.
펫 겔싱어 인텔 CEO는 “MS를 포함해 150억 달러의 수주를 확보하며 인텔이 AI 시대 가장 최적화한 파운드리임을 증명했다”고 말했는데, 인텔이 MS로부터 수주받은 제품은 MS가 지난해 발표한 ‘마이아’라는 AI 칩으로 추정됩니다.
인텔이 연내 1.8나노 공정을 기반으로 MS의 AI 반도체를 양산하는데 성공하면, 삼성전자와 TSMC를 한 발 앞지르게 됩니다. 삼성전자와 TSMC는 2025년부터 2나노 이하 공정을 도입하겠다는 계획입니다. 인텔은 지난해 말 네덜란드 EUV 전문 업체 ASML로부터 업계 최초로 ‘하이 극자외선(NA EUV)’ 장비 6대를 도입했습니다. ‘하이 NA’는 2나노 이하 초미세 공정에 필수장비인데, 인텔은 이를 활용해 1.8나노·1.4나노 공정 개발에 주력하겠다는 방침입니다.
ASML이 인텔에 납품한 첫 하이 NA EUV. [ASML 트위터] |
인텔이 본격적으로 야심을 드러낸 이유는 AI 반도체 부흥과 함께 이를 제조해줄 파운드리 수요가 폭발적으로 성장할 전망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3나노 이하 파운드리 시장은 2026년까지 330억7000만 달러, 한화로 약 44조원 이상까지 커질 것으로 보입니다. 무려 연평균 64.8%의 성장률입니다.
일각에서는 인텔이 양산 경험이 부족해 단기간에 삼성을 따라잡을 수 없을 것이라고 봅니다. 그러나 한때 반도체 왕좌에 올랐던 인텔의 저력과 인텔이 뼛속까지 ‘미국 기업’이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미국 정부의 지지와 탄탄한 ‘미국 안방’ 연합군을 기반으로 ‘일감 몰아주기’ 수혜를 받을 수 있다는 분석입니다. 엔비디아, 오픈AI 뿐 아니라 MS, 아마존, 구글, 메타 등 직접 AI 반도체 설계에 나선 글로벌 빅테크 기업 대다수가 미국 기업입니다. 이들이 인텔과 손잡고 대량 수주를 맡기면, 인텔의 파운드리 역량이 단기간에 커질 수 있습니다. 자국 반도체 산업 부흥에 사활을 건 미국 정부에게도 인텔의 성장은 호재입니다.
인텔은 반도체의 역사를 이끌어온 기업으로, 수십년에 걸친 노하우와 탄탄한 고객사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습니다. 지난해 연간 매출 542억달러(한화 약 72조원)를 기록, 2년 만에 삼성전자(매출 66조5900억원)를 제치고 반도체 업계 매출 1위를 기록했습니다.
세계 최대 규모의 반도체 공장인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전경.[삼성전자 제공] |
인텔이 본격적으로 야심을 드러냄에 따라 ‘1위 TSMC-2위 삼성전자’로 굳혀져있던 파운드리 시장도 격변기를 맞을 전망입니다. 특히, TSMC를 쫓아가는 동시에 인텔의 추격에도 대비해야 하는 삼성의 전략에도 이목이 집중됩니다.
황철성 서울대학교 교수는 “인텔은 오랜 기간 CPU 등 프로세서를 만들어온 회사이기 때문에, 파운드리 측면에서도 기술력이 높다”며 “삼성이 파운드리 시장에서 경쟁력을 지키기 위해서는 부지런히 기술을 개발하고, 꾸준히 인력을 양성하는 방안 뿐”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일각에서는 삼성전자가 파운드리 전략을 다시 짜야 한다는 제언도 나옵니다. 삼성은 앞서 2030년까지 시스템반도체 1위 목표를 세웠는데, 이를 수정하고 2위 자리를 지키는데 현실적 목표에 집중해야 한다는 겁니다.
익명을 요구한 반도체 업계 전문가는 “삼성이 도전적 목표를 던지는 것은 좋지만, ‘2030년 시스템반도체 1위’ 달성 선언에 대한 현실성은 고민해봐야 할 시점”이라며 “TSMC와의 격차는 벌어지고 인텔은 쫓아오는 상황인데, 미국을 업은 인텔의 추격을 따돌리고 2위 자리를 지키는 것도 쉽지 않을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