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원 찬성하는 의사에 비난…의사·간호사 갈등도 증폭

정부가 전공의 집단 이탈에 따른 의료공백을 막기 위해 군 병원과 공공의료기관을 민간에 개방했다. 22일 오전 서울 송파구 경찰병원을 찾은 시민들이 진료를 기다리고 있다. 임세준 기자

정부의 의과대학 정원 증원 방침 발표로 의료계 내분 양상도 점입 가경이다. 정원 증원에 찬성하는 소수 의사는 증원에 반대하는 다수 의사로부터 ‘집단 린치’ 수준의 공세를 당하고 있다. 의료계 내 오래된 갈등 관계였던 의사와 간호사 간의 갈등 역시 이번 ‘의료파업’으로 재확산 양상이다. 법무부와 행정안전부는 ‘구속 수사 원칙’을 강조했다. 경찰청장이 ‘구속 검토’ 언급에서 보다 강경하게 대응하겠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대한의사협회는 21일 국내 한 일간지 1면에 대형 광고를 게재했다. 이 광고에서 의협은 “교수님! 제자들이 왜 그러는지는 아십니까?”라고 물은 뒤 “전공의는 전문의가 되면 개원할 수 있다는 희망으로 중노동을 견뎌왔지만, 현실을 처참하다”고 주장했다. 여기서 ‘교수님!’이라고 지목된 인사는 서울대 의대 김윤 교수로, 김 교수는 최근 한 TV토론에서 “의사가 부족해서 연봉이 과도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한 반박 차원에서 의협이 ‘제자들’을 화자로 선택해 교수에게 조언하는 형태의 광고가 게재 된 것이다.

의협은 광고에서 “상급종합병원의 의사와 환자가 증가한 반면 지난 20년 동안 의원급 외래 환자는 35% 줄었으며, 자기 전문과목 환자가 없어서 전문과 간판을 뗀 의원이 6277곳”이라며 “정부가 매년 5000여명의 신규 의사를 배출해 의사를 죽이고, 급여와 비급여의 혼합진료를 금지해 개원가의 씨를 말리겠다고 한다”고 주장했다. 주수호 의협 비상대책위원회 홍보위원장은 “해당 광고에 대해 논의할 때 의대 증원에 찬성하는 김윤 교수의 이름이 거론됐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정진행 서울의대교수협의회 비상대책위원장도 김 교수 저격에 나섰다. 정 위원장은 헤럴드경제와 통화에서 “서울대 소속으로 발언을 하면 서울대 의대 교수들의 의견으로 (대중이) 알게 되는데 실상은 1%도 김 교수의 의견에 찬성하는 사람이 없다”며 “이제부터 서울대 이름은 떼고 ‘보건의료학자 김윤’으로만 발언하라고 말할 것”이라고 했다. 이어 “파국을 부르는 발언을 신중하지 않게 했다는 것이 유감”이라고 덧붙였다. 김 교수는 토론에서 “의료계 파업이 6개월 이상 길어질 수 있다”고 말을 했는데, 이에 대해 정 위원장이 공개 저격에 나선 셈이다.

정부 정책인 의대 증원에 찬성하는 의사들은 김 교수와 같은 ‘집단 린치’를 피하기 위해서라도 익명으로 언론에 등장하기도 한다. 한 지방병원장은 익명으로 최근 언론에 “의대 증원 확대, 사실상 증원 아닌 복원”이라는 제목의 글을 게재했다. 해당 병원장은 2000년대 의약 분업에 따라 의대 정원이 줄어들었고 이 때문에 2000명을 확대하는 것은 10여년간 줄어들었던 의사 수를 원상 복구 시키는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이 병원장은 “의사 증원은 국민 생존과 직결된다. 의사로서 사명감을 가지고 국민을 위해 서로가 병립할 수 있는 길을 찾자”고 제언하기도 했다.

‘동맹휴학’을 추진 중인 전국 의대생은 휴학계를 제출하지 않은 학생을 찾는 데 혈안이다. 의대 재학생이 모인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교수는 증원 수혜자이니 논외지만, 휴학했다가 사단이 나면 책임져줄 거냐”, “1년 늦게 나가면 못해도 1억이 손해인데 그걸 강요하는 건 아닌 것 같다. 휴학을 안 해도 강요할 방법은 없는 거 맞냐”는 등의 글이 올라왔다. 또 “자기 혼자만 이득 보겠다고 동맹휴학을 짼(안한) 사람은 선배 자격이 없다”며 휴학계 제출 참여를 요구하는 글도 올라왔다.

전공의가 병원을 비우자 이번엔 간호사의 의사 비판 수위가 높아지고 있다. 가뜩이나 PA(진료보조)간호사는 의사가 하던 역할을 대신하면서 병원을 지켰었는데 전공의 등 의사가 자리를 비우면서 간호사의 업무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는 호소다. 일부 대형병원에선 전공의가 자리를 비워 생긴 의료 공백 탓에 치료와 진료가 지체되자 환자가 간호사에게 화를 내는 일이 많아졌다. 한 간호사는 “의사가 자신의 이익 때문에 환자를 외면하는 것이 히포크라테스 선서에 부합하는 것이냐”고 비판하기도 했다.

간호사는 업무 외의 일에 시달리고 있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보건의료노조)에 따르면, 여러 병원에서 간호부에 드레싱 업무와 도뇨관 삽입, 위관 삽입, 항암포트 삽입을 포함해 전공의 업무 일부를 PA가 시행해달라는 지침을 시행 중이다. 일반 간호사를 제대로 된 교육이나 훈련 없이 PA 간호사로 배치해 업무를 시키는 병원도 일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집단 행동에 대해 ‘구속수사 원칙’을 꺼내들었다. 법무부·행안부·대검찰청·경찰청은 21일 ‘의료계 집단행동 대책 회의’를 열고 업무개시명령에도 복귀하지 않고 집단행동을 주도하는 주동자와 배후 세력에 대해 ‘구속수사’를 원칙으로 하고, 정상 진료나 진료 복귀를 방해하는 행위도 엄중히 처벌하기로 했다.

이상민 행안부 장관은 “집단적인 진료 거부 행위가 지속되는 경우 의료법 등 관련 규정에 따라 엄중히 수사할 예정”이라며 “필요한 경우 체포영장 발부 등 강제수사 방식을 활용해 신속하게 수사하겠다. 특히 집단행동을 주도하는 단체·인사에 대해서는 경찰과 검찰이 협의해 구속 수사 등 엄중조치할 것”이라고 했다. 박성재 법무부 장관도 “불법 집단행동에 가담한 의료인은 물론 배후에서 조종하거나 부추기는 사람, 의료시스템 공백을 방지할 책무를 다하지 않은 의료기관 운영자에게도 법적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말했다.

검경은 휴업, 사직 등 방식으로 업무를 중단했더라도 비교적 빠른 시기에 복귀할 경우 선처할 계획이라고 했다. 신자용 대검찰청 차장검사는 “조기 복귀자에 대해서는 처벌을 감면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며 “형사 입건된 후 유죄가 인정된다고 해도 적극적으로 기소유예 제도를 활용하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홍석희·박혜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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