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전공의들이 정부의 의과대학 입학 정원 증원 방침에 반발하며 집단사직한 가운데 21일 밤 서울 시내 한 대형병원 응급실에 과밀화로 진료가 지연되고 있다는 내용의 안내배너가 설치돼 있다. [연합] |
[헤럴드경제=나은정 기자] 정부의 의대 증원에 반발한 전공의들의 병원 이탈이 사흘째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자신을 이른바 '바이탈'과 전공의라고 밝힌 누리꾼이 파업에 반대한다는 익명글을 올려 눈길을 끌고 있다. 바이탈과는 사람의 생명을 직접적으로 다루는 흉부외과·산부인과·응급의학과 등을 말한다.
21일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에는 '전공의 파업에 반대하는 전공의의 글'이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익명의 글쓴이 A씨는 자신을 바이탈과 전공의라고 소개하며 전공의 파업에 참여 중이라고 밝혔다. A씨는 "사실 전공의 파업에 반대하고 있지만 도저히 말할 분위기가 아니라 여기서라도 글을 써보려고 처음 가입했다"며 "근무 병원 공개되면 혹시 날 찾아낼까 해서 비공개로 하겠다"고 운을 뗐다.
지난 2020년 의료 파업 당시에는 정부 정책에 반대해 파업에 적극 찬성했었다는 A씨는 이번에는 정부의 의대 증원과 필수의료 패키지 관련 정책에 찬성하기 때문에 파업에 반대한다고 소신을 밝혔다.
그는 정부의 정책에 찬성하는 이유로 최근 의료 현장의 위기를 꼽았다. A씨는 "가장 문제는 종합병원 의사(대학병원 교수)가 없다는 것"이라며 "현재 개원의와 교수 페이가 3배 이상으로 벌어졌다. 더 많은 공부를 하고 더 많은 책임을 지고 더 힘든 일을 하는 교수는 더 이상 젊은 의사들에게 매력적인 직업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이어 "페이 차이가 나는 이유는 '실비보험'이 보편화되면서 비급여 시장이 커졌기 때문"이라며 "비급여 끼워팔기, 생눈 백내장, 도수치료, 이상한 주사(백옥, 마늘, 줄기세포 등 미용주사)들로 인해 개원가는 역대급 호황을 맞이했다. 이런 행태는 환자를 속이는 것이며 굉장히 추악한 모습으로 근절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른바 '바이탈'과 전공의라고 밝힌 누리꾼이 현재 파업에 반대한다며 올린 글. [블라인드 캡처] |
또 현재 파업 중인 전공의들이 혼합진료 금지 등을 담은 정부의 '필수의료 패키지'에 반감을 드러내고 있는 것과 달리 A씨는 "필수의료 패키지를 통해 필수의료의 수가 개선 및 불균형을 바로 잡고, 강제로 기피과를 시키는 것이 아닌 2000명 증원을 통해 의료시장을 바로잡아 보겠다(개원의 페이를 줄이고, 필수의료 페이를 올리겠다)는 뜻이 보인다"면서 찬성한다고 했다.
A씨는 필요의료 패키지야말로 "의료계의 추악한 모습을 근절하는 목적이자, 개원의의 페이를 줄일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정책"이라며 "공공의료수가를 통한 필수의료에 대한 지원과 대학병원 교수 수 증원, 전공의 위주의 인력구조를 전문의 채용을 통한 구조로 바꾼다는 내용까지 있어 개인적으로는 의료계의 현실을 정확히 알고 고심해서 만든 정책"이라고 평가했다.
다만 "이 정책들이 어느 정도 수준으로 어떻게 시행하는 지를 전공의, 의사, 정부가 함께 협의해가는 것이 맞다고 보는데, 이렇게 강대강의 분위기로 가는 것이 매우 유감"이라고 아쉬움을 내비쳤다.
A씨는 자신이 파업에 반대하면서 동참하고 있는 이유에 대해 "혼자 반대하면 엄청 욕먹을 분위기"라며 "의사 커뮤니티에서 반대 의견을 말하면 공무원이 염탐하러 왔다는 둥, 공무꾼, 프락치 등으로 낙인찍고 별 욕을 다 먹는다. 물론 커뮤니티라 초강경파들이 훨씬 많겠지만 오프라인에서도 말하기 쉽지 않다"고 전했다.
한편 22일 정부에 따르면 전체 전공의 대부분이 근무하는 주요 100개 수련병원을 점검한 결과 20일 밤까지 전공의 8816명이 사직서를 제출했다. 전체 전공의 1만3000여명의 70% 가까이 차지하는 수치다. 특히 7813명은 실제로 가운을 벗어 던지고 결근한 것으로 집계됐다.
보건복지부는 지금까지 전공의 6228명에게 업무개시명령을 내렸고, 3377명은 소속 수련병원으로부터 명령 불이행 확인서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