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22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에서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연합] |
[헤럴드경제=홍태화 기자]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가 주요국 인플레이션이 목표수준으로 안정되기까지는 상당한 기간이 소요될 것이라며 앞으로도 장기간 통화긴축 기조를 지속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사실상 동결이 더 길어질 것을 예고한 셈이다.
한은은 22일 금통위가 다음 통화정책방향 결정시까지 한국은행 기준금리를 현 수준(3.50%)에서 유지키로 했다며 이같이 밝혔다.
금통위는 “주요국의 인플레이션은 낮아지고 있지만 목표수준으로 안정되기까지 상당한 기간이 소요될 것”이라며 “물가상승률이 목표수준으로 수렴할 것이라는 확신이 들 때까지 통화긴축 기조를 충분히 장기간 지속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은은 지난해 2·4·5·7·8·10·11월과 올해 1월에 이어 이날에도 기준금리를 다시 3.50%로 묶었다. 아홉 차례 연속이자 약 1년째 동결이다. 통화정책의 목표인 물가가 충분히 떨어지지 않은 데다가 가계대출 증가세도 확실히 꺾였다고 보기 어려운 만큼 일단 금리를 묶어둔 것이다.
실제로 시차를 두고 소비자물가에 반영되는 생산자물가지수는 두 달 연속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 생산자물가지수는 작년 12월 121.19(2015년=100)로 석 달 만에 오름세(0.1%)로 돌아선 데 이어 지난달(121.80)에도 한 달 만에 0.5% 상승했다. 1년 전과 비교하면 1.3% 높은 수준으로, 6개월 연속 상승세를 이어갔다.
먹거리 물가가 쉽게 잡히지 않으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품목별 전월 대비 등락률을 보면 농림수산품이 3.8% 상승했다. 특히 사과(7.5%), 감귤(48.8%) 등이 크게 올랐다. 이에 신선식품은 지난해 12월(13.9%)에 이어 지난달(10.0%)에도 전월 대비 두 자릿수 상승률을 나타냈다.
가계 빚도 고금리가 무색하게 늘어나고 있다. 지난해 4분기 전체 가계 신용(빚)은 전 분기보다 8조원 불어 또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2023년 4분기 가계신용(잠정)’ 통계에 따르면 작년 12월 말 기준 가계신용 잔액은 1886조4000억원을 기록했다. 높은 금리에도 주택담보대출이 15조원 이상 늘었다.
금통위는 “향후 물가경로는 지정학적 리스크의 전개양상, 국제유가 및 국내 농산물가격 움직임, 국내외 경기 흐름 등에 영향받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국 금리도 긴축기조를 유지할 수밖에 없는 이유 중 하나다. 미국 기준금리에서 한국 기준금리를 차감한 역전 폭은 지난해 7월부터 이달까지 사상 최대인 2.00%포인트로 유지되고 있다. 미국이 금리를 인하하지 않으면 우리나라가 금리를 인하할 ‘공간(룸)’이 없다.
그런데 미국 물가가 쉽사리 잡히고 있지 않다. 1월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전년 동월 대비 3.1% 상승했다.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집계한 전문가 예상치(2.9%)를 상회했다. 미국이 금리를 조기 인하할 가능성이 약화된 것이다.
금통위는 “국제금융시장에서는 미 연준의 조기 금리인하에 대한 기대 약화 등으로 국채금리가 상승하고 미 달러화는 강세를 나타냈다”며 “앞으로 세계경제와 국제금융시장은 국제유가 및 글로벌 인플레이션의 흐름, 주요국의 통화정책 운용 및 파급효과, 지정학적 리스크의 전개양상 등에 영향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