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RA, 미국 자동차 산업에 짐…한국엔 기회될수도”

지난해 11월 8일 남아공 프레토리아에서 열린 포드 100주년 기념식에서 공개된 포드 머스탱 마하-E[로이터]

[헤럴드경제=원호연 기자]미국의 전기차 및 배터리 산업 육성을 위해 조 바이든 행정부가 도입한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이 오히려 미국 자동차 업계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중국산 배터리 소재를 배제하기 위한 제약 조건을 도저히 충족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자동차 업체들이 중국 바깥에서 공급망을 구축하기 위해 노력하는 가운데 한국의 배터리 및 소재 업체들이 반사이익을 누릴 것으로 전망됐다.

최근 미국 주요 자동차 업체 중 하나인 포드는 전기차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머스탱 마아-E 2023년형 가격을 최대 8100달러(1081만원) 인하했다. 블룸버그는 전기차 시장 전반의 수요 둔화 속에 지난달 포드의 전기차 판매가 11% 감소함에 따라 회사 측이 큰 폭의 가격 인하를 단행한 것으로 분석했다.

머스탱 마하-E의 경우 지난달부터 적용된 IRA 세부 요건에 따라 3750달러(약500만원)의 세금 공제를 받지 못하게 되자 미국 내 판매 실적이 51% 급감했다.

올해부터 IRA 세부 규정에 따라 배터리 주요 광물 중 50% 이상을 미국 또는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한 국가에서 조달해야 세금 혜택을 받을 수 있다. 게다가 중국에 있는 모든 기업이 ‘외국 우려 단체(FEOC)’로 지정돼 여기서 배터리 부품을 조달한 전기차는 올해부터, 핵심 광물을 조달한 배터리를 장착한 전기차는 내년부터 세금혜택에서 제외된다.

IRA 세금 공제 대상에서 탈락한 것은 마하-E 만이 아니다. 제너럴모터스(GM)의 경우 에퀴녹스EV, 실버라도, 리릭이 세금 공제 대상에서 제외됐다. 테슬라의 경우 모델 3의 일부 세부모델이 세금 혜택을 받지 못하게 됐다.

세계 경기 침체로 전기차 시장 전망이 어두워지는 판국에 최대 7500달러의 세금 보조 혜택을 받지 못한 모델은 판매에 어려움을 겪을 수 밖에 없다.

이에 테슬라와 포드는 중국 CATL과의 합작 등을 통해 FEOC 규정을 우회하려고 시도했지만 미국정부가 이를 인정하지 않으면서 IRA 가이드 라인에 따라 세금 우대 혜택에서 제외됐다. 테슬라는 모델 3의 가장 저렴한 버전에 CATL의 리튬인산철(LFP) 배터리를 사용하고 포드 역시 마하-E와 F-150 라이트닝에 CATL의 LFP 배터리를 공급받을 계획이다.

짐 팔리 포드 최고경영책임자는 “지금까지 자체 비용을 낮추기 위해 중국의 기술, 원자재 및 부품에 크게 의존해왔다”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중국은 리튬부터 망간, 코발트 등 배터리 핵심원료의 공급망 대부분을 틀어쥐고 있다. 그동안 미국 자동차 업체들은 한국과 칠레, 호주 등에서 최대한 원자재를 수급해 IRA 규정을 맞춰왔지만 이를 통한 원자재 공급량은 올해부터 강화된 IRA 가이드라인을 준수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블룸버그 통신은 “배터리 음극재로 쓰이는 흑연 같은 경우 중국 외에는 생산 능력이 제한적이고 코발트와 니켈은 전세계 공급량 절반 이상이 각각 콩고민주공화국과 인도네시아처럼 미국과 FTA를 체결하지 않은 국가에서 나온다”며 “IRA 규정을 준수하는 원자재를 구입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라고 설명했다.

유럽과 북미 배터리 공급망에 투자하는 그린 메탈 펀드를 운영하는 마티아스 그로마크 아틀란트폰데르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배터리 소재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은 석유에 대한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영향력보다 크다”며 “유럽과 북미의 배터리 산업은 공급망을 다각화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미국에서 전기차를 판매하는 대다수 자동차 업체와 배터리 업체는 미국 정부에 IRA 규정을 완화해야 한다고 촉구하고 나섰다. 지난달 22일 미국 관보에 따 이들르면 업체는 전체 배터리 가치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미미한 경우 FEOC 규정 적용 기준을 완화해 달라고 요청했다.

GM은 “광물의 근원을 추적하는 것은 자동차 제조업체에 규제 부담을 지나치게 지운다”며 “추적할 수 없는 재료도 있는데 (법이) 업계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다”고 꼬집었다.

배터리와 그 소재의 높은 중국 의존도를 탈피하려는 미국 자동차 업계에 한국 업체들이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블룸버그는 “한국은 중국 배터리 업체의 가장 큰 라이벌인 삼성SDI, LG에너지솔루션, SK온이 있고 미국과 FTA를 체결하고 있어 서방 자동차 업체에 매력적”이라며 “한국은 배터리 소재가 유의미하게 매장돼 있지 않지만 포스코그룹과 LS M&M 등의 투자를 통해 세계 최대의 배터리 소재 가공허브로 거듭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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