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부통제 압박에도 사외이사 변동 ‘찔끔’…당국·금융지주 이사회 ‘동상이몽’

4대 금융지주

[헤럴드경제=홍승희·김광우 기자] “이사회는 ‘경영’을 하는 게 아니다. 사외이사가 영업상 생긴 일까지 어떻게 책임을 질 수 있겠나”(금융권 관계자)

금융당국이 지난해부터 금융지주·은행 이사회와 면담을 진행하는 등 내부통제의 주축으로 이사회를 지목하며 ‘대규모 물갈이’가 전망됐지만, 실제 금융지주 이사회는 소폭 변동에 그치고 있다. 항셍중국기업지수(홍콩H지수) 편입 주가연계증권(ELS)의 대규모 손실 및 해외부동산 투자 사태 등이 내부통제 미흡에서 비롯됐다며 금융당국이 칼을 들이댈 거란 전망이 나왔던 것과 달리 금융지주 이사회는 큰 타격이 없는 모습이다.

30명 중 22명 임기 만료지만…교체보단 ‘연장’ 택하는 금융지주

23일 금융권에 따르면 4대 금융지주(KB·신한·하나·우리)의 사외이사는 총 30명으로 이들 중 올 3월 주주총회까지 임기 만료를 맞는 이들은 22명(73%)에 달한다. 금융지주는 사외이사 기본 임기를 2년으로 두고 최장 임기인 5~6년이 될 때까지 1년씩 연장하고 있는데, 임기를 연장해나가던 사외이사들의 만료시기가 겹친 것이다.

이들 중 5~6년을 모두 채워 연임이 아예 불가능한 사외이사 수는 5명이다. KB금융지주의 이사회 의장 김경호 이사가 5년이 모두 만료됐으며, 신한금융지주의 성재호 이사, 그리고 하나금융지주의 김홍진·양동훈·허윤 이사가 최장 임기인 6년을 모두 끝마쳤다.

10명 중 7명 꼴로 3월 임기가 끝나지만, 실제 명단에서 빠지는 사외이사 수는 더 이상 연장이 불가능한 5명을 크게 웃돌지 못할 거란 예측이 나온다. 실제 앞서 KB금융지주는 김경호 이사를 이명활 신임 사외이사로 대체하는 데 그쳤다. 이 외에도 권선주·오규택·최재홍 이사도 올해 임기가 만료됐지만 사외이사 교체보단 ‘연장’을 택했다.

9명의 사외이사가 전원 임기 만료를 맞는 신한금융지주의 경우에도 자진 사퇴의사를 밝힌 이윤재 의장과 더 이상 임기 연장이 불가능한 성재호 의사만 교체되는 안이 유력하다. 나머지 사외이사들은 전부 2020~2022년 선임된 이들로, 아직 2~4년까지 임기가 남아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나마 임기 연장이 불가능한 사외이사가 3명에 달하는 하나금융지주의 변동폭이 가장 클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금융지주의 사외이사는 6명 중 4명이 임기 만료를 맞을 예정인데, 아직 1~4년간의 연장이 가능해 큰 폭의 변화는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지주·은행 이사회 줄줄이 만난 금감원…지주 “이사회 연속성·효율성 고려해야”

앞서 금융감독원은 지난해부터 금융지주·은행 이사회와 면담을 진행하는 등 내부통제에 대한 이사회 역할을 강조해왔다. 상반기 9개 금융지주·은행 이사회와의 간담회가 실시됐으며 여름에도 이준수 금감원 부원장이 은행 이사회 의장과의 간담회를 가졌다. 금감원은 이사회와의 면담에서 금융지주·은행별로 각기 다른 지배구조상의 문제점과 내부통제 강화 방안을 설명하며 경영진에 대한 상시 감시를 거듭 강조했다.

특히 최근 홍콩H지수 ELS사태, 대규모 횡령 등 금융권의 각종 사건·사고가 이어지며 이사회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문제제기가 나오고 있다. 이사회가 사실상 ‘거수기’ 역할을 수행할 뿐, 경영진 견제가 이루어지지 않아 각종 사고를 예방하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연합]

이복현 금감원장은 지난해 12월 은행지주 이사회 의장들과 간담회를 하고 “이사회는 지주그룹의 경영전략과 리스크관리 정책을 결정하는 그 어떤 기구보다 중요한 곳”이라며 “지배구조의 운영 및 개선의 주체도 이사회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은행지주의 내부통제 및 지배구조 확립을 위해 이사회가 적극적인 역할에 나서 줄 것을 주문한 것이다.

하지만 금융지주는 사외이사 대폭 교체가 전혀 경영진 감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되레 사외이사 교체가 이사회 연속성과 효율성을 떨어트릴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한 금융지주 관계자는 “그룹 전체 사외이사가 매번 바뀌게 되면 깊게 들여다보지 못하는 이슈가 생길 수 있다”면서 “회사 발전을 위해 법정 임기인 5~6년을 채우는 게 좋겠다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모든 사건·사고의 책임을 경영진이 아닌 이사회에까지 묻는 게 과도하다는 목소리도 있다. 특히 영업 현장에서 발생한 ELS 사태를 구조적인 문제로 볼 것인가에 대해 의견이 분분하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지배구조법에 보면 이사회는 회사를 경영하는 게 아니라고 돼 있다”면서 “경영진과 이사회가 영업상 생긴 ELS 사태에서 구조적인 문제가 있는 걸 알고도 무시했다면 문제가 있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그 이상으로 책임을 묻기는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일각에선 감독·정책당국이 은행지주 이사회 제도에 있어 보다 시장친화적인 시각에서 재검토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우진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국내 은행지주 이사회의 집합적 정합성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완전자회사의 이사회를 사외이사 없이 최소로 운영하고 지주회사와 자회사 이사회의 기존 사외이사 풀을 통합하는 방안을 고려할 수 있다”며 “이는 지주회사 집중을 통한 인적자원의 확보 및 비용 합리화, 지주 중심의 경영 지배구조 정립 등 지주회사의 설립 취지에 부합하는 조치로 판단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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