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는 환자곁으로…정부, 권위적 방식 내려놔야” 의대 증원 갈등에 의료계 4인 제언

[헤럴드경제=이민경·박혜원·안효정 기자] 26일 정부의 의대 정원 2000명 증원에 반발한 전공의들이 대거 병원을 떠난지 일주일이 되면서 의료공백이 해소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정부 또한 2000명 증원 계획서 한치도 물러날 뜻이 없다고 못 박으면서 의·정 갈등의 수위는 점점 높아지는 중이다. 의료계 중진들 사이에서도 찬성, 반대, 중립의 여러 의견이 백가쟁명식으로 쏟아지고 있다.

현직 의사들 가운데서도 기존 의대 정원인 3058명은 의료 수요에 비해 현저히 부족하다는 문제의식에 동의하는 인사들이 다수 존재한다.

한희철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이사장 겸 의학한림원 부원장(고려대 의대 생리학교실 교수)은 “베이비붐 세대의 고령화로 의료 이용량이 늘어날 것이므로 의사 수는 늘려야 한다”고 밝혔다.

한 이사장은 “내년부터 당장 입학정원 2000명을 늘리기 보다는 첫 해에는 350명 정도 늘리는 것으로 시작하면 현재 의학 교육 시스템에서는 문제가 없다”며 “추후 좀 더 연구해서 부족한 의사 수가 몇 명인지를 정밀하게 추계하고 우리 사회가 수용할 만한 숫자를 정한 뒤 증원 규모를 점차 늘려가는 식으로 준비하는 게 맞다”고 주장했다. 국가 보건의료정책 자문 역할을 수행하는 의학한림원은 지난 7일 입장문을 내고 의대 증원은 첫 해 350~500명 정도로 시작한 뒤 효과를 모니터링하면서 규모를 결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공의 집단 사직과 의대생 동맹 휴학 등 집단행동에 대해선 우려를 표했다. 한 이사장은 “전공의나 의대생 입장에서는 그들의 미래가 달린 일이니 무작정 돌아오라고 말하기도 쉽지 않다”며 “더욱이 의사를 나쁜 사람으로 몰아가는 듯한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의대생과 전공의 모두 회의에 빠진 것 같다”고 말했다.

권용진 서울대병원 공공진료센터 교수는 환자 곁을 떠난 전공의들을 향해 “일단 병원으로 돌아오라”고 주문했다.

권 교수는 “진정으로 의업을 그만두고 싶다면 병원으로 돌아와 일을 마무리하고 정상적인 퇴직절차를 밟고 병원을 떠나길 바란다”면서 “투쟁을 하고 싶다면, 병원으로 돌아와 내용을 심도 깊게 파악하고 정부가 고민하고 있는 국가의 문제들에 대한 더 나은 정책 대안을 갖고 정부와 대화해야 한다. 그것이 급속성장의 부작용에 직면해 있는 현재 대한민국의 전문가가 해야 할 역할이고 행동”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의사로서 전문성에 대한 법적·사회적 처우는 면허를 받은 개인의 행동을 무한적으로 인정할 수 없다”며 “전공의들이 사직서를 제출하자마자 병원을 떠난 것은 ‘숭고한 사명의 수행을 삶의 본분으로 삼고 있는 행동’으로 보기 어렵고, 중증 환자들의 수술이 지연되고 있는 이상, 정치적인 이유로 병원을 떠났건 개인적인 이유로 병원을 떠났건 떠날 당시 여러분이 의사였다는 점에서 그런 이유가 ‘나쁜 결과를 용인할 수 있는 충분한 이유’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권 교수는 정부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쏟았다. 말로는 ‘원칙대응’을 한다고 하지만 실상은 권위적으로 ‘강경대응’을 할 뿐이라는 것이다. 그는 “‘업무개시명령-출국금지-법정최고형-경찰의 감시’ 등 일련의 조치에 대해 다수의 MZ세대 전공의들은 강압적이라고 느꼈을 것”이라며 “전공의 집단 안에도 온도차가 있는데 갑자기 며칠 사이에 분위기가 급격하게 이탈로 쏠린 데에는 분명히 정부의 권위적인 태도가 자극을 줬을 것”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권 교수는 2000명 규모의 절반인 1000명 증원을 주장했는데, “지금 40개 의과대학중에 49명 이하 정원을 가진 대학들이 지방 및 경기·인천에 다수 있다. 이 학교들의 정원을 80명 수준으로 올리고, 서울 소재 대학은 정원을 10% 늘린다면 1000명을 살짝 웃돌 것”이라고 설명했다. 권 교수는 “이 정도가 추가적으로 건물을 세우지 않고 기존 인프라로 감당가능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반면, 이종태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 정책연구소장(인제대 의대 교수)은 “정부가 의대 증원을 밀어붙이면 교육 여건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는다면 기존에 있는 의대 교수들도 이탈할 수 있다”며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이 소장은 또 “2000명 증원은 대학 입시 문제까지 고려해야하는 굉장히 복잡하고 큰 문제”라며 “의대 정원이 늘어나 이공계 지원하는 학생 수가 급감할 수 있다는 부작용도 우려된다”라고 덧붙였다.

또 앞으로 필요한 의사 수를 추계하고 논의하는 방식에도 문제가 있었다고 강조했다. 이 소장은 “의사 인력이 향후에 부족할지, 남을지 등을 추계하는 것은 고도의 전문가적 영역인데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 내 의료계 전문가는 과반수 이하에 불과하다”며 “의료계 전문가 구성원을 늘려 미래 필요 의사 인력에 대해 과학적 추계를 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정부와 의료계 양측이 인정하는 결론을 이끌어내려고 해야한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 소장은 지금과 같은 의료공백 사태가 장기화되면 정부는 그 책임을 느껴야 할 것이라고 경고해다. 그는 “정부가 ‘의대 증원 2000명’을 계속 고집하면 정부와 의료계 간 강대강 대치가 계속될 수밖에 없다”며 “갈등이 심화할수록 국민에게 가는 피해만 늘게 되는데, 그렇게 되면 궁극적으로 져야 할 책임의 크기는 정부가 (의료계보다) 더 크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정부와 강대강 대치로 타협점을 못 찾는 대한의사협회(의협)를 대신해 전공의와 의대생들이 속한 대학병원 및 의대 교수들이 중재자 역할을 하기 위해 전면에 나서겠다는 선언도 나왔다.

정진행 서울대 의대 교수협의회 비상대책위원장(분당 서울대병원 병리과 교수)은 대표적인 중립 인사다. 정 위원장은 전날 호소문을 내고 정부에 “의대 입학정원 조정 및 대학병원 중심일 수밖에 없는 필수의료체계 유지와 관련해 수반돼야 하는 제반 사항들을 정부가 교수들과 함께 협의할 수 있는 모임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정 위원장은 지난 23일 박민수 보건복지부 제2차관과의 면담 이후 “과연 어느 정도의 의사가 더 필요할 것인지, 그리고 그렇게 배출된 의사들이 필수의료와 의료취약지역에 근무하도록 어떻게 유인할 것인지 등 함께 생각해야 할 광범위한 주제가 있다”며 “본격적인 협의는 4월 총선 이후에 시작하고, 지금 당장은 협의의 주체 및 협의사항, 향후 계획 정도만 합의하더라도 이 사태의 해결을 가능하게 할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정 위원장은 전공의 대거 사직에 따른 의료공백 피해는 최소화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의료계 집단행동이 이날로 2주차에 접어든 가운데 이번주에는 전임의(펠로)까지 병원 이탈에 가세할 가능성이 있다. 정 위원장은 “저희에게 가장 시급한 것은 바로 제자들을 지키면서 필수의료체계가 파국으로 떨어지지 않게 하는 것이며 다른 이슈들은 그 이후에 살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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