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삿포로시 오도리공원에서 열린 삿포로 눈축제에서 다양한 눈 조각이 관광객의 시선을 사로잡고 있다. [연합] |
[헤럴드경제=김영철 기자]기록적인 엔저 현상에 일본이 ‘인바운드(방일 관광객)’ 소비 호황을 누리고 있다. 하지만 치솟은 관광지 물가가 확산하면서 일본인들은 “일상을 살아야 하는 우리가 바가지요금까지 감당해야 하냐”며 불만이 커지고 있다. 외국인 이중가격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마저 나오고 있다.
이중가격제란 같은 재화나 서비스에 두 가지 가격을 매기는 것이다. 지금도 인도나 태국, 요르단 등은 관광지 입장료 등에서 내외국인 차등 가격을 운영하고 있다. 주로 자국민의 구매력이 상대적으로 낮거나 빈부격차가 큰 나라에서 시행됐다. 중국도 한때 내외국인 이중가격제로 악명 높았으나 1997년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을 앞두고 철폐했다.
부자 나라인 일본이 이중가격제 도입을 고민하는 것은 수퍼엔저로 관광객의 씀씀이는 커진 반면 자국민의 부담이 커졌다는 여론이 비등하면서다.
나가야마 히스노리 일본 료칸협회 부회장은 “이중가격제를 지지한다”면서 “싱가포르에선 테마파크나 슈퍼마켓, 레스토랑 등에서 거주자에게 할인 혜택을 주는 방법으로 이중가격제를 운영한다”고 소개했다. 일본의 한 여행사도 니혼게이자이신문에 “일단 가격을 인상하고 내국인에겐 할인 혜택을 제공하면 된다”고 제안했다.
코트라(KOTRA) 도쿄무역관에 따르면 연간 평균 환율로 환산했을 때 1달러가 140엔이었던 2023년 방일 관광객의 소비액은 총 377억달러로 2019년(1달러=109엔) 441억달러에 미치지 못했다. 일본 엔화의 구매력을 측정하는 대표적인 지표인 ‘실질실효환율’로 보면 현재 일본 엔화의 구매력은 1970년대 초반과 거의 비슷하다. 외국인 관광객에게는 체감물가가 그만큼 저렴한 셈이다. 엔·달러 환율은 27일 오전 현재 1달러당 150.50엔이다.
엔저에 힘입어 지난해 방일 관광객의 소비액은 5조2923억엔(약 46조7900억원)로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1인당 소비액도 21만2000엔(약 187만원)에 달한다. 일본 정부가 지난해 3월 외국인 여행객들의 소비액을 연중 5조엔, 1인당 소비액을 2025년까지 20만엔으로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를 모두 앞당겨 달성한 셈이다.
반면 일본의 개인 소비 지출은 지난해 2분기부터 3분기 연속으로 전 분기 대비 감소세가 이어졌다.
내국인이 상대적으로 피해를 보고 있다는 판단에 일본 최대 철도회사인 JR 그룹은 외국인 관광객에게 판매하는 JR철도패스(7일권) 가격을 지난해 10월 2만9650엔(약 26만2000원)에서 5만엔(약 44만2000원)으로 69% 인상했다. 기존에는 외국인이라면 무제한 탈 수 있었던 철도 패스다.
같은 달 일본 정부는 ‘오버투어리즘’ 현상을 해결하고자 대책 패키지를 발표하기도 했다. 오버투어리즘은 관광객들이 수용 가능한 범위를 넘어설 정도로 관광지에 몰려들면서 현지 주민들의 삶을 침범하는 현상을 뜻한다. 대책 패기지에는 교통수단 확충, 혼잡 요금제 도입 등 여러 방면의 내용이 담겼다.
인바운드 소비 활황은 물가 상승이라는 부작용을 낳았지만 일본 경제에는 상품 수출과 맞먹는 효자다.
2023년 일본 경제산업성 통상백서에 따르면 인바운드 소비(4.6조엔)는 반도체 등 전자부품(4조엔)을 넘어 자동차(12조엔)에 이어 수출산업으로 성장하고 있으며, 일본 경제를 견인하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코트라는 “일본에서 인바운드 여행객의 소비는 5조엔을 초과해 국내총생산(GDP)의 1%에 육박할 정도”라고 설명했다. 일본 언론은 지난해 일본의 실질 GDP 증가율은 1.9%지만 이 중 3분의 1 정도가 인바운드 소비에 의한 상승효과였다고 분석했다.
니혼게이자이 등 일본 매체의 최근 보도에 따르면 일본정부관광국(JNTO)은 1월 방일 관광객수가 268만1000명이라고 발표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전인 2019년 1월과 같은 수준이다. 지난달 1일 노토반도 지진으로 일부 여행이 취소됐음에도 코로나 이전 수준을 회복한 것이다.
국가별로는 한국인이 전체 외국인 관광객의 32%인 85만7000명으로 가장 많았다. 한국인은 2019년 1월에 비해 10% 늘었다. 대만인이 49만2300명으로 2위였고, 중국인이 41만5900명으로 그 뒤를 이었다.
일본 도쿄의 아메요코 상점가에 있는 이자카야 펍 식당에서 손님들이 음식을 먹고 있다. [로이터] |
라면값을 내국인들에겐 1000엔에 팔고 외국인들에게는 2000엔에 팔아야한다는 내용이 담긴 문구. 최근 일본에서 외국인 관광객을 상대로 가격을 더 높게 책정하는 이중가격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엔저 장기화로 일본인들은 ‘저비용 관광객’이 끌어올린 수요가 자극한 물가를 감내해야 한다는 불만이 나오고 있다.[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