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 조선소 ‘임금체불 주의보’…갈 길 먼 ‘상생협약’

민주노총 전국 금속노조 조선하청노조지부 노조원들이 조선소에서 일하고 있는 하청노동자의 임금 인상 등 근로 조건 개선을 촉구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연합]

[헤럴드경제=김용훈 기자] 정부가 원·하청 격차 해소를 위한 조선업 상생협약을 체결한 지 1년이 지났지만, 국내 조선소들이 모여 있는 경남 거제는 또 다시 하청업체 ‘임금체불’로 몸살을 앓고 있다.

28일 고용노동부와 조선업계에 따르면 거제도 삼성중공업과 한화오션에서 확인된 임금체불 규모는 약 45억원에 달한다. 삼성중공업의 경우 숙련공들로 꾸려진 소위 ‘물량팀’을 중심으로 한 선각부문 12개 업체에서 약 40억원대 임금체불이 발생했다. 한화오션은 탑재공정 하청업체인 탑플랜트, 천향플랜트, 공두산업, 태산기업 등 4곳에서 총 5억2000만원 규모의 임금체불이 발생했다. 공식적으로 확인되지 않은 임금체불을 감안하면 거제 조선소 하청업체 임금체불 규모는 이를 크게 웃돈다는 게 거제 조선업계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여전히 활개치는 ‘물량팀’…상생협약 ‘무색’

고용부는 작년 2월 조선업 원하청의 상생 협약을 체결했다. 원청은 적정 수준의 기성금(공사금액)을 지급하고, 하청은 임금인상률을 높이는 한편 재하도급(물량팀) 사용을 최소화 하는 등 원하청이 자율적으로 상생을 위한 구체적인 협력 방안을 마련한 것이다. 또, 하청 근로자들에 대한 임금체불을 예방하기 위해 원청이 하청 기성금을 지급할 때 인건비를 따로 떼어 은행 등 제3자에게 입금하는 에스크로 결제 제도를 적극적으로 활용키로 했다. 〈본지 2023년 2월 23일자 단독기사 참조〉

그러나 삼성중공업에서 발생한 40억원 대의 임금체불은 물량팀을 양성화해 프로젝트 협력사로 원청이 직접 계약토록 한 협약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조선 원하청은 통상 ‘물량’ 단위로 계약을 체결하는데, 하청업체들은 공사 기일을 맞추기 위해 숙련도가 높은 이들로 구성된 물량팀과 재하청 계약을 체결한다. 이러다보니 물량팀의 고임금을 감당하지 못한 1차 하청이 늘었다. 실제 삼성 하청업체에서 발생한 40억원 대의 임금체불 중 물량팀 비중이 대다수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삼성중공업이 지난해 기존 물량팀을 직접 프로젝트 협력사로 계약한 건은 11건에 그쳤다.

에스크로에도 ‘임금체불’…"일방적 기성금 책정 지속시 체불↑"

한화오션 사례에선 ‘에스크로’ 제도의 허점이 드러난다. 에스크로는 원청이 하청 근로자 인건비를 제3자에게 입금토록 해 하청근로자가 임금을 떼이지 않도록 한 장치지만, 이 제도를 가장 선도적으로 시행한 한화오션 하청업체 4곳에서 5억2000만원 규모의 체불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실제 한화오션 측은 “인건비는 이미 에스크로 계좌에 입금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임금체불이 발생한 건, 저숙련 근로자들로 물량을 소화하려다 보니 초과근무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몰렸고 하청업체가 떠안아야 할 추가임금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결국 원청이 적정기성금을 주지 않아 발생한 문제라고 설명했다. 올해 정부가 고용허가제 비전문 취업비자(E-9)로 외국인 근로자 5000명을 조선업에 들여오기로 한 만큼 이런 문제가 개선되지 않는다면 하청 임금체불은 크게 늘어날 것으로 봤다. 조선업 상생협의체 좌장인 정흥준 서울과기대 교수는 “원청과 하청의 기성금에 대한 기준이 다르다 보니 ‘능률(숙련도)’을 감안한 ‘시수(時數)’에 대해서도 입장이 다르다”며 “결국 교섭력이 강한 원청 주도로 기성금 협상이 진행되면 하청 입장에선 울며 겨자먹기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어 구조적인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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