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2023년 10월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노동조합 회계 공시 시스템 개통 관련 브리핑에서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 |
[헤럴드경제=김용훈 기자] 정부가 노동개혁 성과로 내세웠던 ‘노동조합 회계공시제’가 시행 2년차에 고비를 맞았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산업별 노조 중 두 번째로 규모가 큰 금속노조가 회계공시를 거부키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이 결정이 우리나라 노조 지형을 양분하고 있는 민주노총 전체로 확산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게 됐다.
29일 노동계에 따르면 금속노조는 전날 충북 단양군 교육연수원에서 58차 정기대의원대회를 열고 4월 말까지 해야 하는 회계 공시를 거부하는 안을 만장일치로 결정했다. 지난해 회계장부를 공개했던 금속노조는 방침을 바꾼 이유에 대해 “정권이 강제한 회계 공시 제도는 노조법에 근거한 정당한 요구가 아니며 노조 탄압의 수단일 뿐”이라고 말했다.
고용노동부는 조합원 1000명 이상인 대형 노조를 대상으로 지난해 10월부터 노조 회계공시 제도를 시행했다. 개별 노조, 총연맹이나 산별노조 등은 정부가 만든 노조 회계 공시 시스템에 회계 결산 결과를 입력해야 한다. 개별 노조 또는 상급단체 중 한 곳이라도 노조 회계를 공시하지 않으면 소속된 조합원은 15%의 세액공제 혜택을 받을 수 없다.
금속노조는 2022년 조합비 수입 595억원으로 민주노총 산하 노조 중 가장 많았다. 조합원 수는 18만3000여명으로 민주노총 산업별 노조 가운데 전국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조에 이어 두 번째로 규모가 크다. 금속노조가 회계장부를 공개하지 않겠다고 밝히면서 금속노조 산하 18만30000여명의 조합원은 조합비 세액공제를 받지 못하게 됐다.
특히 지난해 공시에 불참했던 금속노조 기아차지부는 올해엔 참여키로 했지만, 의미가 사라졌다. 개별 노조가 공시에 참여해도 상급단체가 공시를 거부하면 세액공제를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탓에 금속노조 내부의 반발도 예상된다. 제도 도입 초기 반발했던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이 공시에 참여한 이유도 이 때문이었다.
또, 금속노조의 상급단체인 민주노총 입장에도 관심이 쏠린다. 민주노총은 내달 18일 임시대의원대회에서 안건을 다시 논의한다. 금속노조는 이 자리에서 민주노총 전체의 공시 불참을 요구할 것으로 예상된다. 고용부에 따르면 민주노총 전체 조합원은 110만명으로 한국노총(112만2000명)에 이어 두 번째로 규모가 크다. 이 탓에 노조 회계공시제도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
한편, 지난해에는 양대노총이 모두 회계공시 참여를 결정함에 따라 조합원 1000명 이상의 노조·산하조직 739개 중 91.3%(675개)가 결산결과를 공개했다. 단체별로 참여율을 보면 한국노총은 94.0%, 민주노총은 94.3%, 그 외 미가맹 노조는 77.2%로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