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개 지방은행 사옥 전경.[각 사 제공] |
[헤럴드경제=김광우 기자] 총 20조원이 넘는 대규모 홍콩 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손실 사태의 여파에서 지방은행들이 빗겨난 가운데, 은행 내부에서는 되레 ‘자산관리(WM) 역량이 부족한 것일 뿐’이라는 자조 섞인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WM사업으로 비이자이익 활로를 찾아야 하는 상황서, 수수료이익이 연일 감소세를 기록 중인 탓이다. 일각에서는 지방 거점 영업이라는 한계에 부닥쳐 수익 성장이 더 뒤처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2일 금융권에 따르면 5개 지방은행(대구·부산·경남·광주·전북)이 지난해 거둔 수수료이익은 총 2200억원으로 전년(2499억원)과 비교해 299억원(11.9%)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2년 전인 2021년(3340억원)과 비교하면 1140억원(34.1%)가량 감소한 수치다. 은행 수수료이익은 신탁, 펀드 판매, 방카슈랑스 등 WM 부문과 신용카드 업무대행 부문, 외화수수료 등 기타부문으로 구성된다.
지방은행들이 거둔 전체 비이자이익은 963억원으로 적자를 기록한 전년(-732억원)과 비교해 큰 폭 늘었다. 하지만 은행들이 보유한 자산 평가이익 증가분의 영향이 컸다. 2023년 지방은행이 거둔 유가증권이익은 1469억원으로 전년(465억원)과 비교해 215%(1004억원)가량 늘었다. 신탁 등 WM관련 수수료이익은 줄어들고, 대외적 요인에 따른 보유 자산 평가이익이 늘어난 영향이라는 얘기다.
서울 중구 하나은행 위변조대응센터에서 직원이 5만원권을 정리하고 있다.[연합] |
반면 4대 시중은행의 수수료이익은 2023년 기준 3조8378억원으로 전년(3조7505억원)과 비교해 873억원(2.33%) 증가하는 등 꾸준한 성장세를 기록하고 있다. 선제적인 자산관리 역량 강화를 통해 신탁자산을 늘리고 투자상품 판매를 강화하는 등, WM분야 수수료이익을 다각화한 영향이다. 주요 시중은행들서 ELS 손실이 집중된 것 또한 이같은 영업방침과 무관하지 않다.
실제 고금리 상황 ‘이자장사’에 대한 정부·여론의 압박이 계속되는 가운데, 은행권에서는 비이자이익 확보를 가장 중요한 과제 중 하나로 삼고 있다. 특히 여타 수수료이익 확보가 어려워진 가운데 WM은 미래 비이자이익 확보를 위한 주 수익원으로 꼽힌다. 다만 최근 홍콩 ELS 사태가 발생하며, 관련 수수료이익 위축이 우려되고 있다.
다만 이같은 논란에서 한 발 빗겨난 은행들에는 또 다른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실제 홍콩H지수 ELS 판매액이 타 주요 시중은행 대비 현저히 적은 우리은행의 경우 최근 WM분야 강화에 한층 더 힘을 싣고 있다. 우리은행은 최근 부산에 자산관리 특화 영업점 ‘투체어스 W’를 개점하며 자산관리 기반을 지역으로 넓혔다. 아울러 자산관리 브랜드 모델을 섭외하는 등 홍보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서울 한 시중은행 영업점에서 고객들이 창구 업무를 기다리고 있다.[연합] |
하지만 지방은행들의 경우 이마저도 어렵다는 입장이다. 주된 요인으로는 지방 거점 영업의 한계점이 꼽힌다. 수도권에 자산가들이 집중된 탓에, 고액 투자상품 등을 소비할 수 있는 고객의 비중이 현저히 적다는 것이다. 고객군이 한정돼 있다 보니, 자산관리 분야에 대한 투자 대비 효율이 적어, 관련 사업 발전이 더디다는 해석도 나온다.
실제 KB경영연구소가 지난해말 발표한 ‘2023 한국 부자 보고서’에 따르면 금융자산 10억원 이상을 보유한 ‘부자’ 중 70.6%는 서울·경기·인천 등 수도권에 몰린 것으로 나타났다. 인천을 제외한 나머지 5대 광역시에 거주하는 비율은 15.7%, 기타 지역의 거주 비율은 13.6% 등으로 집계됐다. 지방은행 중 가장 이익 규모가 큰 부산은행이 거점해 있는 부산에 거주하는 부자 또한 전체 6.25%에 불과했다.
서울 한 아파트 단지 풍경.[연합] |
지방은행 관계자는 “심지어 거점 지역에서조차 시중은행 영업점들과 경쟁해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얼마 안 되는 자산가 및 투자 자금을 확보하는 것조차 치열한 상황”이라며 “WM분야의 경우 아직 대면 영업의 비중이 크기 때문에, 고객 확보에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지방은행들은 유가증권 운용 수익 등을 대안으로 삼아 수수료이익을 늘리겠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이 경우 대내외적 경제 상황에 따라 수익 변화가 클 수 있어, 근본적인 체질 전환에는 부적합하다는 지적이 뒤따른다. 은행권 관계자는 “당장 2022년과 2023년 은행권 수익을 보면, 시장 변화에 따라 유가증권 수익 격차가 크다”면서 “안정적인 비이자이익 창출이 관건인 상황에서는 다소 부적절한 전략”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