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김태열 선임기자] “이강인의 부모님, 그리고 뻔히 알면서 방향과 길을 알리려 애쓰지 않은 저 역시 회초리를 맞아 마땅합니다.”
차범근 전 축구대표팀 감독은 29일 서울 종로구 HW컨벤션센터 크리스탈홀에서 열린 ‘제36회 차범근 축구상’ 시상식 축사자로 나서 축구 유망주와 학부모를 비롯해 한국 축구계를 향한 뼈있는 조언을 남겼다. 차 전 감독은 “축구를 잘하는 사람보다는 좋은 사람, 멋진 사람, 주변을 돌볼 줄 아는 큰 사람이 돼야 한다고 당부하고 이야기해왔다”며 2023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 기간 불거진 축구대표팀 내 갈등 사건을 언급했다.
한국 축구대표팀의 핵심 자원인 이강인(파리 생제르맹)을 비롯한 몇몇 어린 선수들이 요르단과의 준결승전 전날 저녁 식사 자리를 일찍 뜬 뒤 시끌벅적하게 탁구를 쳤고, 주장 손흥민(토트넘)이 이를 제지하는 과정에서 이강인과 몸싸움이 벌어져 손가락을 다쳤다. 차 전 감독은 “아시안컵을 마친 뒤 스물세 살의 이강인이 세상의 뭇매를 맞고 있다. 스페인이나 프랑스에서는 대수롭지 않던 일이 한국 팬을 이렇게까지 화나게 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차 전 감독은 “오늘 상을 받는 세대는 동양적인 겸손과 희생이, 혹은 대한민국 국가대표 선수로서의 책임감이 자칫 촌스럽고 쓸모없는 짓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앞으로 더욱 많아질 수도 있다”며 “동양적 인간관계야말로 우리가 자연스럽게 물려받은 무기이자 자산”이라고 강조했다.
이런 예절이 박지성 전북 현대 테크니컬 디렉터와 자신이 선수 생활을 성공적으로 마친 비결이라고 언급한 차 전 감독은 “설사 아이들이 소중함을 모르고 버리려고 해도, 아이들이 존경받는 성인으로 성장하도록 어른들이 다시 주워서 손에 꼭 쥐여줘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그러면서 “이걸 가르치지 못한 이강인의 부모님과, 뻔히 방향을 알면서 방향과 길을 알리려고 애쓰지 않은 저 역시 회초리를 맞아야 마땅하다”고 작심 발언한 뒤 “손흥민 같은 주장이 있어서 정말 다행”이라고 안도하기도 했다.
1970∼1980년대 독일 프로축구 분데스리가 시절 자신의 경험을 꺼내기도 한 차 전 감독은 세대 간, 문화 간 갈등 가능성을 언급하며 “선배와 후배, 어른이라는 개념이 없는 곳에서는 동료와 다투고 선수가 감독에게 거친 모양으로 대드는 것이 별로 이상하지 않다”고 말했다.
“다른 문화를 경험한 세대 간 마찰에 대해 적극적으로 고민하고 교육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 나는 이제 늙었고, 이제는 쉬어도 된다고 스스로 생각했다”는 차 전 감독은 “지금 생각하니 몹시 부끄럽다”고 자책하기도 했다.
차 전 감독은 수상자 학부모를 향해 “이 자리에 계시는 부모님들은 어른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품위 있고 진정한 성공을 위해 무엇이 중요할지 우선 생각해야 한다. 꼭 부탁드린다”고 당부했다.